아주 평범한 사람들 (증보판) - 101예비경찰대대와 유대인 학살
크리스토퍼 R. 브라우닝 지음, 이진모 옮김 / 책과함께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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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두에  

[[ 2차 세계대전 시기의 끔찍한 비극인 홀로코스트를 실제로 수행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유대인 집단학살의 가해자가 되었을까? 홀로코스트 연구의 선구적이고 기념비적인 현대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 책은 101예비경찰대대 소속 210명에 대한 전후(戰後) 취조 기록 등을 바탕으로 ‘수행자’들의 학살 과정과 동기를 심층 분석했다.


특히 두 가지가 핵심이다. 첫째, 이들은 특별히 악인이었거나 그렇게 훈련받은 자들이 아니라, 대다수가 군 복무 경험조차 없던 하층 노동자 출신의 중년 남성, 즉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둘째, 이들은 처음 학살 임무를 하달받았을 때에도, 그리고 수행 중에도 언제든 별다른 처벌 없이 학살 임무 수행을 거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 대다수는 왜, 어떻게 점차 망설임 없이 학살 작전을 수행한 ‘전문 살인자’가 되었는가?


지은이 브라우닝은 말한다. “설명은 변명이 아니며 이해는 결코 용서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의 행동과 집단 동력을 어째서 이해해야 하는 걸까? 브라우닝은 이렇게 반문한다. “만약 101예비경찰대대 대원들이 당시의 조건 아래서 학살자가 될 수 있었다면, 오늘날 유사한 조건이 주어질 때 어떤 집단이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선 이책을 읽기 전에 아래의 숫자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 홀로코스트 중에 발생한 사람들의 행동 패턴으로서 혹은 역사적인 사료로서도 중요한 자료 이지만 , 일개 민간 경잘대대에서 실행된 잔혹한 학살 희생자 숫자 이고 다른 우측은 이송에 성공 시킨 유대인 숫자이다. ( 이또한 나중에 이송중 혹은 도착지 수용소에서 마지막 죽음을 맞이 하였을 숫자 이기도 하다. ) 


사살 38,000    /  이송   45,200명  

더욱 놀라운것은 이 시기가 1942.7월 부터 ~ 이듬해인 1943.11월 약 1년 조금 넘는 시간안에 매우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라는 점이다..  101경찰 대대 병력이면 약 500명에 해당 하는 민간 경찰조직이라는 이야기 이다. 아래의 지도로 보면 당시 1942년 폴란드는 좌 우측 점령 지역이 독일군 치하와 민간 경찰대 조직으로 이뤄져 있고 그중 많은 희생자를 발생 시킨 지역은 민간 경찰 조직이 운영하는 수용소 제도 이다.  




    역사가들이 분석에 의하면 , 홀로코스트의 절정기는 1943년 2월 중 순 이루부터 약 1년여간의 기간이다 사실 이전/가지는 100중 70-80%가 생존해 있었지만 이후 시점부터는 거의 전멸 되다 시피 한다. 이시기는 독일의 대 러시아 전선이 위기에 빠진 시기와도 일치 하는대 크림 반도와 캅카스 바연 대공세 재개 부터 , 스탈린 그라드의 비참한 패배를 당할 때 까지의 시기 이다.  1942년 독일군의 공세는 결국 실패로 마감 되었지만 유대인 ,특히 폴란드내 유대인에 대한 전격전 즉 게도 소멸 작전은 더욱 가파르게 상승 하였는데 이시기 독일군 병력 차원에서도 열세인 상황에서 어떻게 광범위한 범위의 폴란드내 유대인들을 일정 장소에 소개 소집 하여 열차로 이동 시키고 죽움의 수용소에 갖히게 되기 까지 혹은 그 이동 기간 효육적인 학살을 하기 위한 독가스 차량 이송도 발전 시킨 면모를 보자면 가히 , 제너사이드적 사건이기도 하다. 이러한 집단 광기와 어울려 이들 군인들이 아닌 민간 경찰 대대 병력 혹은 분산된 경찰 중대 등의 별력으로 작적을 개시하여 상부로부터의 지시를 차질 없이 ? 이행한 사람들의 심리 기저엔 무엇이 있을까라는 것에 이 연구 논문의 방점이 찍힌다. 


결론 부터 애기 하지만 , 아주 평범한 사람들일지라고 집단 군중의 의결 행동에 따른 회피 기동이 상황적으로 불가피한 경우에는 자기 합리화를 통한 학살과 살인을 저질러 질 수 있고 , 더군다나 같은 지역내에 같이 공동체 생활을 영위 하였던 게토지 역의 어른 아이 아녀자들의 고통 없는 죽음을 선사 하기 위해 농작물의 재배 시기에 개별적인 사실이 이뤄 졌다라는 것도 기록할만한 사실이다. 아래 사진을 보자면 당시 경찰대대의 집단 행돌들이 보인다. 



다시 책 주제로 회귀 하자면 , 이러한 101 경찰 대대외에도 당시 폴란드에서는 수많은 경찰 조직들이 있었고 이들 또한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 차출 되어 이러한 일에 가담 하게 된 경로이다 . 직접적인 학살조직이 있었던 반면 ,이를 보조하는 이송 혹은 치안 경비태세등을 담당 하는 경찰들은 보다 심리적인 압박 감에서서 자유 로웠을까 ?  자본의 분업화 처럼 , 죽음의 수용소 혹은 이송에 해당 하는 최종 해결의 솔류선 열차를 타는 방식에 있어서도 분업화가 이뤄졋고 .  학살장에 도착한 구덩이를 앞에 두고 별도 사살만을 집행하고 어디론가 떠나버리는 사살조도 등장하하여 , 시공간의 부조화를 이룬 상태에서 학살이라는 인종말살의 압박감을 조금이라도 회피 하려 하였던 것일까.. 다시 내려온 지침은 이들의 정신적 상태를 염려 하여 좀더 정상적인 연회 즉 음악회가 파티와 , 그리고 음주가 일정 부분 하용 되었더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주변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 유대인이 아닌 폴란드인과 다른 이방인들의 태도는 어떠 하였을까 ,, 마찬가지로 매일 벌어지는 총성과 소각로에서 태워지는 음산한 내음과 아울러 그들만의 기나긴 평범한 ? 죽음속의 일상이 삶과 죽음의 아주 가벼운 차이처럼 매일 그들의 일살을 움켜 쥐고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발각 되어서는 안되는 유대인의 은신처 이를 숨기고 알려 주지 않는 풀란드인도 같은 처벌을 받기에 , 어쩔 수 없는 차악의 선택으로 신고를 하고야 만다 , 본인 가족들의 생사가 달려 있기에 ,  당시 1942 -1943년 홀로 코스트의 시기에 누구에게나 자유로울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는 도처에 널려 있었고 이를 웃음 거리 삼아 , 술과 여흥거리로 삼아 생존해 왓던 그 당시 101 경찰 대댇 명령 권자들을 비롯한 학살에 참여한 사람들의 죄과를 경중에 따라 전후 재판에 불려 졋겠지만 ,  81년이 지나가는 현재의 시간 까지도 , 전쟁이라는 광기어린 시험대에서 , 인간이 인간을 향한 잔혹함의 극치는 어떤 악마적인 지시가 아니더라도 얼마던지 우리들의 옆 동네 사람들 혹은 이방인에 의해 , 어떤 극도로 제한적인 억압 상황에서는 필요 불가결 하게 만들어 질 수 밖에 없는 상황 이었다면 다소 그날 역사의 회생자엿던 분들에 대한 위로가 될까 . 


Written by E H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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