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국가 대한민국 - 부족주의의 노예가 된 정치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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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나다 출신의 역사학자 마이클 이그나티에프는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강할수록, 이방인에 대한 감정은 더 폭력적이고 적대적이다. 폭력 없이 강렬한 소속감을 유지하기는 힘들다. 강렬한 소속감은 개인의 양심을 주형(鑄型)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영국 정치학자 몬트세라트 귀베르나우도 “소속감은 소외와 고독감에 가장 강한 해독제를 제공한다. 현대의 일부 개인들은 소속되고 싶다는 충동 때문에 중독, 지도자에 대한 복종, 강박적 순응 등 새로운 형태의 의존에 빠져든다”고 말했다.  ] 


책 모두에 있는 내용 이제만 전체 주제를 아우르는 뜻 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현제 집단주의 정치와 사회 구성원들의 팬텀이 일부 문화적인 현상 뿐만 아니라 정치에서도 여과 없이 나타나며, 객관적인 논증이가 과정 없이 무조건 내편이기에 옹호 해야 하고  , 반대편이면 배척 하거나 반대를 위한 반대를 주창 하고  있다. 


이는 마치 3 -400여년전읜 조선조 당시  사대부 들의 당파 싸움을 연상 하기도 하며, 상당 한 소모전을 거쳤던 결과 이후 이뤄진 개혁 정책 조차도 받대파들에게 사용 되지 못하는 폐단도 나타내었다.. 


우리나라 또한 이전 정부의 실책이라고 몰아 부친 정책들이나 건설 방침 모두를 반대적인 정당의 이익으로 추구하거나 ,이미 건설된 수십조원의 토목 공사를 백지화 하기에도 이른다. 


아래 붕당의 의미를 읽어 보자 


붕당   [ - 위키백과,  ]            


붕당(朋黨)은 조선 중기 이후 특정한 학문적·정치적 입장을 공유하는 양반들이 모여 구성한 정치 집단이다. 또한 붕당 정치(朋黨政治)는 학문적 유대를 바탕으로 형성된 각 붕당들 사이의 공존을 특징으로 하는 조선의 정치 운영 형태이다. 공론에 입각한 상호 비판과 견제를 원리로 하는 붕당 정치는 현대의 정당 정치와도 유사점을 찾을 수 있지만 정치적인 이해 관계는 물론 구성원 사이에 학문적 유대 또한 공유했다는 점이 조선 시대 붕당의 특수한 성격이다. 


16세기 중엽 동인과 서인 사이의 대립을 최초의 붕당 성립 시기로 본다. 이 시기의 붕당은 특정 가문의 권세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막고, 공론에 입각한 상호 비판을 통해 조선 중기 정치 발전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정조가 승하하고 순조가 즉위한 19세기 초엽 이후 붕당 정치 체제는 사실상 막을 내리고, 특정 양반 가문이 권력을 쥐고 독재하는 세도정치로 변질되었다. 


붕당 정치를 당쟁(黨爭) 또는 당파 싸움이라고도 부르나, 이 용어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없다. 다만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조정에서 이루어지는 의견의 교환과 대립에 대해 당의(黨議)라고 표현하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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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른 수백년이 흐른 지금 조선조 시대의 붕당 정치와 현제 21 세기의 정치와는 다르고 사회 구성체 및 문화적인 배경도 달리 하여 변화 된 것을 보고 획일화 하여 보는 잣대를 들이 댄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묘하게도 유사성은 존재 하며,   지역 주의 , 혹은 집단 전체주의적인 행동과 생각 , 표현등은 곳곳에서 나타나며 , 그것이 흑백 논리와는 또 다르게 자신이 속한 그룹에 대한 충성도 여하에 따라서 표가 갈리거나 분배를 해주는 행태에도 이르렸다는 점에서 과거와의 유사성을 찾아 볼 수 있다. 


책 주제에도 언급 하였듯이 , 사회의 공공적인 측면과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잣대 또한 너무 자주 자위적인 해석으로 갈리고 , 만만한 국민의 이름으로 라는 형이 상학적인 문체로 정치적 구호를 내걸으면 현실의 국민들은 또한 너무나도 혼란 스럽다. 


이번 , 서울 시장 선거에서 나타난 표심은 무엇을 나타 낸 것일가 ?  단순히 보수 중도를 밀어 줬다라는 결과론이지만 여론은 차선 혹은 차악 이라도 보려는 시민들의 심란한 마음을 표출 하지 않았을까 싶다. 


국토부의 잦은 정책 변경과 정부의 20회 넘게 시행령이 바뀌어 버린 부동산 정책은 이미 규제 만으로 시장 수요를 충족 할 수 없음에서 지속적으로 오류를 범 하고 있고 ,  내집 하나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집값이 2억세어 10억 이 되었고 , 종부세 부담으로 민원을 제기하자 그 집팔아서 다른 곳으로 이사가라는 행태는 집권당의 대변인들이 할말은 아닌듯 하다.. 


다시 글 주제로 돌아 간다면 

               

[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는 “부족주의는 경험적으로 어떤 장소에 대한 소속감, 그리고 어떤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부족주의는 내로남불을 밥 먹듯이 저지르는 정치적 이념이다. 나름의 노선과 원칙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치적 부족이나 패거리의 이익이다. 부족주의는 부족의 이익을 도모하는 이익 투쟁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자신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주장한다 ] . 


[ 문재인 정권에서는 부족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이들은 자신들이 ‘선한 권력’이라고 착각한다. 개혁을 위해서는 내로남불과 유체이탈은 불가피하며 때로는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부족주의에는 이런 집단 정서를 뒷받침하는 열성 지지자들의 강철 같은 신념과 행동이 도사리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부족에 대한 유불리를 따져서 판단하는 부족주의의 전사가 되었다. 모든 기준은 오직 자기 부족의 이해관계다. 자기 부족에 유리하면 극찬하고, 불리하면 탄압한다. 무조건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산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들이 진보임을 자처한다면, 그것은 ‘부족의, 부족에 의한, 부족을 위한 진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보가 아니다. ‘밥그릇 공동체’에 가까운 ‘가짜 진보’다.] 


글 주제어는 물론 현 정권의 심판론만 존재 하지는 않는다.  세력과 민주주의는 누군가의 정치 집단에 의해 좌우 될 수있지만 분명 생각의 균형점들은 존재 하다.  예전 , 독재 정권 시절 혹은 더 오래전 세계 냉전 시대의 좌, 우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사상 철학과 반성 비판을 토대로 인간성의 말살 까지를 불러 왔다면 , 


이제는 오픈화된 언론과 누구라도 SNS, 인터넷에 자신의 글을 공론화 올릴 수 있는 장이 있다. 하지만 , 부족주의 이데올로기에 빠진 대한 민국은 자신의 반성과 주변에 대한 미안함도 없이 , 적대적으로 상대방을 쏘아 대고 있다... 이렇게 가다보면 , 어느날 정권이 바뀐 디고 하여도 또 다른 불균형은  존재 하리라 본다.  어지러운 정치 시즌과 자신들만의 그룹 이기주의 부족주의가 범람 하는 대한 민국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균형점을 찾아 가려는 혹은 그렇게 믿고 행동 하고자 하는 젊은 지성들이 있어  , 정치적 , 경제적, 사회적인 탄력 회복성을 발휘 하여  , 굳굳이 자신의 소신을 펼지 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  Written by E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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