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에 살고 있습니다
김인숙 지음 / 브릭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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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린란드에 살고 잇습니다. ] 그린란드 , 덴마크어와 그린란드어를 사용 하는 이곳은 북극에 가까운 세계 에서 가장 큰 섬이기도 하다.. 수도가 누크인 이곳의 인구밀도는 매우 적어서 2015년도 기준 어림값은로 약 5만 5000여평이다. 이곳에 한국인 최초로? 정착한 용감한 사람의 이야기가 이글의 주제이다. 아직 덴마크자치령인 이곳은 북유럽에 가깝기도 하지만 지리 문화적으로는 북 아메리카에 가깝기도 하다.


우선 , 4계절이 뚜렷한 아시아권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북극에 가까운 지역의 날씨 기후와 문화가 궁금하다,,, 여름이 짧아서 약 2-3 주  밖에 되질 않지만 나름 데로 초록빛갈을 머금은 계절이 있다.. 나머지 약 8-9개월은 지난한 겨울철이라고 보아도 무방 하지만 이러한 눈보라와 영하권의 날씨에 익숙한 이곳 사람들 또한 사회를 이루고 살며, 힉교와 관공서 직장과 마을 문화가 있다... 북위권으로 올라갈 수록 백야 현상이 발생 하지만 더욱 아름 다운 광경은 오로라 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너무 건조 하거나 눈보라가 치는 날이면 제대로 볼수가 없다고 하니, 이또한 대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수밖에 없는듯 하다..


수도가 누크인 이곳에서는 시간도 천천이 가는듯 하다.. 사름들은 순박 하며, 원주민인 이누이트 족이 사회구성원이 되어 기존 그린란드의 원래의 문화 회복에도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잇고 비록 덴마크 자치령이지만 , 민족 고유릐 의상과 춤 , 전통 사냥 방법둥이 전승 되어 내려오고 현대에 와서도 이러한 전통은 이어 지고 있어서 학교나 기관에서 년례 행사 식으로 각 민족의 날을 잡아서 축제를 열기도 한다...


이방인의로서의 삶은 어떠 할까 , 이렇게 인구가 적도 작은 도시에서의 생활은 어떠 할까,,, 한국인으로서 혹은 기후 변화를 공부 하는 학자로서의 이곳에서의 삶은 다이나믹 하지는 않지만 찬찬히 흘어가는 빙하의 흐름 처럼 순리데로 자연의 법칙에 맡겨 흘러간다... 이곳의 생수는 따로 없기도 하지만 만년설이어서 그냥 식수로도 좋다고 한다. 과련 만년설의 물맛은 어떠 할지 늘상 소독된 수돗물과, 페트병에 들은 생수를 먹어온 우리로서는 신기할 따름이다.


혹독한 추운 계절을 나기 위한 원주민 이누이트들의 사냥법은 지금도 이어져 온다.. 고래 고기와 바다 표범 고기를 얻기 위해 빙하위를 개 썰매를 타고 달리며 이전에는 창을 던 졌던 것이 사냥 총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개들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고기와 단백질 지방이 있어야 하는데, 사냥감으로 잡은 신선한 고기의 일부라도 썰매개들은 아주 신바람이 난다.


음가가가 있는 그린란드, 나름 뮤지션의 활동도 있고 전통 댄스와 춤 도 소개하지만, 이고에서도 벌써 한류 붐은 불고 있어서 , 왠만한 거리와 큰 샵에서는 한국 음반을 취급 하기도 한다고 한다.. 한국 사람이라는 것에 또한 점수를 더 따서 서비스를 받기도 하는것을 보면 , K-POP이 이끌어온 한류 위상이 드높다.


다시 도시환경으로 돌아가면, 도시와 도시를 있는 버스는 없고 그 지역을 순환 하는 버스가 있고 , 공중 와이파이도 느리지만 점차 보급이 확대 되는 추세라고 한다..가장 귀한 것이 이곳에서는 신선한 야채와 과일들이 아닐까 ,,,


20대의 여러나라를 거친 경험을 거쳐 , 30대 그린란드에 정착한 그녀와 그녀의 동반자에게 박수를 보내며ㅡ 천국과도 일상이 계속 이어 질 수 있도록 성원을 보내겠다. -- 어쩌면 자신이 떠나는 온 곳을 그리워 하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에 , 이전에 어렸을쩍 꿈 꾸엇던 지상의 풍경과 대자연의 바다와 만년설 , 그리고 오염원 없는 도시와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이 목표 였던 어떤 이들에게는 그곳이 정착지 이다..    책력거99 느끼다.


  Value Up tip ; 그린란드 역사 -위키백과 참조


역사[편집]

그린란드에 사람이 살아가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500년 무렵으로, 이누이트가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 이후 서기 986년에는 노르만 족에이리크 라우디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그는 자신이 발견한 땅에 많은 사람들이 이주하기를 바랐고, 이에 따라 자신이 발견한 섬의 이름을 '초록의 땅'이라는 뜻의 '그린란드'라 이름 지었다. 이 때부터 그린란드에 노르만 족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원주민인 이누이트 족과 충돌이 잦았고, 수천 년간 살아오면서 그린란드의 빙설 기후에 완벽히 적응한 이누이트 족과 달리 기후에 적응하지 못했고, 척박한 환경으로 목재, 철 등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할 자원의 부족으로 인구 증가에 큰 어려움을 겪어, 수적, 군사적으로 이누이트 족에 밀릴 수 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예로 1379년 이누이트 족의 습격을 받아 노르만 족 남성 18명이 사망했는데, 당시 노르만 족의 인구는 4000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본토와의 교류를 통해 15세기까지 노르만 족은 그린란드에 거주하였으나, 소빙기로 해안에 유빙이 생겨나면서 본토와의 교류에 문제가 생긴데다, 유럽에서 흑사병이 유행하면서 교류가 완전히 중단되었고, 결국 그린란드의 노르만 족 거주지는 소멸되었다. 이후 18세기 초에 그린란드 거주지가 덴마크에 의해 재개척되면서 덴마크령의 거주지가 되었다.

자치권의 회복[편집]

냉전 시기에 미국은 그린란드 지역에 지정학적 관심을 보여왔으며 1946년 미국은 덴마크에서 그린란드를 1억달러에 구입하겠다고 제안하지만 덴마크는 거절했다. 하지만 1950년 덴마크는 미국의 툴레 공군 기지 건립 제안을 받아들여 1951년 건설을 시작한다. 1953년 완성된 이 기지는 나토의 방어전략의 일환이 된다.

1950년 그린란드에 있던 덴마크의 식민지인 남그린란드, 북그린란드가 통합되면서 덴마크의 단일 식민지인 그린란드 식민지가 수립되었다. 1953년 그린란드 식민지는 덴마크의 한 로 승격되어 그린란드 주가 되었으며, 그린란드인들은 이 시기 덴마크 시민권을 취득하였다.

그린란드는 1979년 5월 1일부터 덴마크 의회에 의해 자치권을 획득했지만 국가 원수는 덴마크의 국왕이었으며 외교권과 국방도 덴마크가 맡아왔다. 1973년 덴마크가 유럽 경제 공동체(EEC, 현재의 유럽 연합(EU)의 전신)에 가입하면서 그린란드도 유럽 경제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린란드는 유럽 경제 공동체의 상업적 어업 규제와 물개 가죽 제품의 금지 조치에 반발하면서 1982년에 실시된 자체적인 주민 투표를 통해 유럽 경제 공동체에서 이탈하기로 결의했고 1985년을 기해 유럽 경제 공동체에서 완전히 탈퇴하게 된다.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와 맞물려 그린란드의 독립에 새로운 가능성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그린란드는 2008년 11월 25일에 자치권 확대를 위한 투표를 치렀다. 그리고 이 투표에서 75%가 자치권 확대에 찬성하면서 독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마침내 2009년 6월 21일누크에서 자치권 확대 발효 기념식을 열고 사실상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다만 자치권이 발효되어도 여전히 덴마크가 국방이나 외교적 사안에 대해서는 최종 결정권을 가진다. 이 조치로 덴마크로부터 지원받던 연간 보조금 32억 덴마크 크로네(덴마크의 통화)가 중단되기는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개발 가능성이 생긴 지하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와 사법 및 경찰권을 가지게 되며, 입법권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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