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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노래 ㅣ 에프 영 어덜트 컬렉션
배봉기 지음 / F(에프) / 2019년 10월
평점 :
[ 사라지지 않는 노래 ] 배경이 남태평양 한가운데 있고 대륙으로는 남미 칠례와 약 3700 km 떨어져 있는 면적 약 163.6 km^2 정도 되는 작은 섬으로 이스터섬이라고 불리우는데 이는 1722년 4월5일 네덜란드 사령관 야콥 로게벤에 의해 발견되엇고 이날이 부활절이기 때문이다....
서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하나인 대규모 석상이 해안선을 따라 줄지어 서 있는 모습으로 ,, 길이 3.5미터 ~ 5.5미터에 이르는 900여개의 석상이 이스터 섬 곳곳에 놓여져 있고 어떤 누가 혹은 외계인이 이러한 형상을 만들었을 거라는 다양한 추축이 있는 가운데 1950년데 노르웨이의 한 과학자는 석상의 재질이 화산암이어서 간단한 나무와 돌 도끼 의 도구만으로도 조강이 가능 하고 , 이를 완만한 능선을 타고 흐르는 해안선으로 옴기는 일도 수십면의 사람 힘으로 움직이는 것도 가능할것이라는 자료는 내 놓았다....
이제는 거의 전멸 되다 시피 하여 , 그곳에 수천년을 살아 왓엇던 원주민들에 대한 고유 언어 ( 헝가로어 )도 사라져 버린지 오래 ,, 이야기는 평화로왔던 섬에 어느해인가 갑자기 나타난 이방인의 배들에 대한 접근에서 부터 시작 되엇다.. 그곳의 마을 족장인 그는 아버지의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 전의 할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이방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잇엇다... 때때로 섬 사람들에게 잘 대해 주기만 하고 배에서 필요한 물자와 물등만을 공급 받고 떠나 버린 , 선량한 배들도 있으나, 때로는 거칠게 섬 사람들을 겁박 하고 , 아무도 모르게 수십명의 사람들을 납치 감금 하여 자신들의 모선으로 데려가 다시는 돌아 오지 못하게 되엇다라는 이야기 부터 .....
그들 이방이들이 오기 전까지 평화롭지만은 않은 것이 섬에는 귀길이가 짧은 단이족과 길이가 긴 장이족 의 두부류의 종종이 잇었는데 , 마을간의 간격이 멀고 먹을 것이 풍부한 시절에는 싸움도 없었고 갈등도 없엇으나 차츰 태풍과 자연 재해로 식량과 채집 , 어로로 해서 먹을 것이 부족 해진 두 부족이 갈등을 빛기 시작 하였고 급기야 한쪽이 다른 쪽을 점령하여 노예화 하여 수많은 수탈을 자행 하기에 이르렸다고 한다... 이과정에서 노예화된 종족들이 농번기나 식량 채집 기간이 지난 우기나 건기에 접어 들어 할일이 없어진 마당에 지배 계층인 다른쪽세어 묘안을 도출 한 내용이 석상 만들기 이다... 자신의 얼굴 윤곽을 거대하게 만들어 마을 곳곳에 해안선을 따라 바다를바라 보게끔 해서 위압감을 주려는 의도 였다.. 하지만 지배와 피지배의 계층 변동은 시기에 따라 혁명과 폭력적 세력다툼으로 장이족과 단이족의 입장은 바뀌게 되었고 , 이에 따라서 석상의 얼굴 길이나 귀의 길이도 길어 졌다가 밟아 졋다라는 설이 그것이다....
이를 모티브로 한 소설 , 그리고 그들 종족간의 갈등을 거칠지만 섬세한 필치로 마치 그섬 이스터섬에 살아 가고 있는 족정의 1인칭 화자 시섬으로 잘 표현 되어 시대적인 현장 감이 느껴진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화자인 족장인 그의 이야기로 돌아가 어마어마한 화력과 인원을 가진 큰 배들이 천여명이 넘는 그마을 부족 사람을 다 잡아 가둔 그 배의 행선지는 바로 그 시대의 노예선 이다... 칠레령과도 가깝고, 오주와 오클렡드 항의 뉴질렌드에도 배가 지나는 경로에 있어 그섬은 18세기 세계 강국들의 제국의 확장으로 한창 일손이 부족 할 때였고 마구 잡이로 아프리카나 남태평양 오지에 있는 원주민들을 잡아다가 착취 압박 감금 하였다..
그래서 그 배를 타고 떠난 사람 몇몇이 처음 도달한 다른 섬의 새똥의 비료 착위 작업에서 탈출을 시도 하였고 성공 하였지만 , 남태평양을 지나는 선량한 선박은 없었다.. 다시 노예선을 타게된 이스터 원주민들은 칠례령 한 마을에서 노예 생활을 죽을때 까지 하게 되었고,,, 여기 족장도 그곳에서 원치 않는 생의 마감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 노예주의 아들과 친교를 맺교 되었고 그들의 언어 ( 영어)를 조금씩이나마 익히게 되었고 , 그 족장이 죽은후 , 그들의 인생과 섬의 역사를 궁금해 하던 아들의 영향으로 , 그는 인류학자과 되었고 다시 그 진실이 기록에 남아 이젠 사람들이 어떤 경로로 이스터 섬의 사람들이 17-18세기 노예선에 오르게 되었고 언어와 역사가 사라 지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 슬픈 종족의 이야기 이댜....
저자는 어떤 모티브로 부터, 이스터 섬의 기록을 남긴 자료로 부터 영감을 받았고 , 이를 , 모아이라는 신비한 석상의 비밀을 종족간의 갈등으로 만들어기고 파괴된 역사의 흔적으로 보앗다.... 해발 500미터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섬에서 생존을 위해서 해야할 일들은 무었일까 ,,, 화산섬이어서 주변 수심은 생각보다 심연이다.. 북과 섬 해안으로 부터 200미터 떨어진 곳의 수심은 1000 미터에 달하며, 화산 경사면인 끝나는 지점의 수심은 8000 미터에 달해 심연에 가깝다.
다시 한번 소설이지만 , 그 시기 세계 강대국들의 제국주의 팽창에 희생된 많은 이스터섬의 원주민들을 포함한 다른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도 애사를 드린다.... 책력거99 ,
Value Up tip ; 이스터 섬 역사 - Wiki Reference .
역사와 문화[편집]
이스터 섬의 원주민들은 약 2,900년 전부터 폴리네시아에서 카누로 이주하여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터 섬에는 "짧은 귀" 부족과 "긴 귀" 부족이라는 경쟁적인 두 부족이 있었다. 1722년 로헤벤이 이스터 섬을 방문하였을 당시 인구는 5-6천 명 정도였다. 1805년 미국의 노예 상인들이 22명의 원주민을 잡아갔고 1862년 페루의 노예 상인들이 이 섬의 지배 계층을 포함한 원주민들을 마구잡이로 잡아가기 시작하였다. 1877년 이스터 섬에는 110여 명의 원주민만이 있게 되었다.

이 부분의 본문은
모아이입니다.
이스터 섬은 거대한 석상 모아이로 유명하다. 모아이는 초자연적인 현상의 존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소재이다. 이들은 이 석상이 외계인이나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해 세워졌다고 주장하고는 한다. 그러나 모아이는 이스터 섬의 원주민들이 세운 것으로 11세기에 가장 많이 만들어졌으며 17세기까지 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3.5 ~ 5.5m에 이르는 모아이는 약 900여 개가 이스터 섬 곳곳에 놓여 있다. 보통은 무게가 20 톤 정도이나 큰 것은 10m의 높이에 무게도 90톤이나 되는 것도 있다. 모아이에 대한 초자연적인 전설은 이 섬을 방문한 로헤벤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 이 섬에서 어떻게 이런 거대한 석상을 세울 수 있었는지 놀라워했다. 1968년 스위스인 다니켄은 원주민과 면담결과 모아이가 외계인의 작품이라 주장하여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과학적 조사 결과 이스터 섬에는 17세기까지도 나무가 무성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석상의 재질이 제주도의 돌하르방과 같은 화산암이어서 조각하기가 쉬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56년 노르웨이의 헤이엘다르는 12톤의 모아이를 나무로 된 도구만을 사용하여 섬 주민 180명과 한 달 만에 바닷가까지 옮겼다. 다시 조사한 이스터 섬의 주민들과의 면담에서 이들은 모아이가 '짧은 귀' 부족과 '긴 귀' 부족에 의해 새워졌다고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