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사심은 없다 - 이나모리 가즈오
기타 야스토시 지음, 양준호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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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사심은 없다] 이나모리 가즈오 ,, 사업가, 교세라의 창업자이자 일본 현대 산업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평가된다.

[ 이나모리 가즈오(일본어: 稲盛和夫 1932년 1월 21일 ~ )는 일본기업인으로 교세라, 다이니덴덴 (현 KDDI)의 창업주이며, 일본항공의 회장을 역임했다. 처는 우장춘의 4녀 아사코이다.  ]  특이한 것은 그의 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우장춘 박사의 4녀 이었다라는 점이다... 소프트 뱅크의 손정의 회장처럼 약간의 친밀감을 느낄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는 , 세계 경제 공황기 이후 1930년대 중,일 전쟁 중에 태어 났고 , 2차 세계 대전이후 , 1941년도 일본에 의한 미국애 대한 전쟁 선포, 즉 태평양 전쟁을 겪은 세대 이다.  이후 고난의 역사를 굳이 글로 적지 않아도 알수 있다.


태평양 전쟁이 마친 이후도 약 10대의 나이 였고 20대가 되기 까지는 1950년대의 한국전쟁을 거쳐야 했다. 전후 일본은

잘 알다시피 미국 맥아더 사형관의 군사 통치 하에 있었고 미소 냉전시대 필요에 의해서 재빠르게 일본은 다시 산업 부흥기를 맞이 하게 된다.  독일도 마찬 가지 겠지만 , 서독이란 나라와 일본은 유사점이 있는데 , 전후 추축국이기도 하면서 서방의 원조및 지원에 의해 가장 빠르게 회복된 지구상 몇 안되는 선택 되어진 나라들이다.  그동안 한국은 어떠하였는가 ,,, 1970년대 이후 수출 산업의 기지개를 켜면서 일본은 따라 잡느라 노심 초사 하지만 10여년 이상 산업의 격차는 쉽게 줄이지 못한다.


우리가 알고잇는 현대 산업의 기계 컴퓨터, 모든 사물이 움직이고 쓰여 지는 데는 반도체 및 그에 따른 알고리즘이 필요 한데 이와 같은 집적 회로를 담는 그롯을 이전 초창기에는 도자기와 비숫한 성능의 절련 물질을 사용 하는 세라믹을 사용 하였고,   이나모리 가즈오는 그중 , 교세라라고 하는 지금은 세계에서 절대적으로 유명한 회사의 창시자 이다.


영웅은 시대를 타고 난다고 하였던가, 기업가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전후 태평양전쟁 이후 폐허가 된 일본 그것도 가고 시마라는 시골 마을 에서 도자기 굽던 기술로 한단계 한단게 나아가 전선 절연 물질은 애자를 개발 하게되고 , 주위 회사에 입소문이 나고 품질은 좋다고 여겨져서 마스씨타 같은 대회사에서 사용 발주가 들어 오면서 부터 사세 확정을 한다.


여기에 덩달아 1960년대에는 대용량 컴퓨터의 시대이다. 1950 년대 에니악을 필두고 , 진공관 프로세스를 거친 세대이후

디지탈 집적 IC로 바뀌면서 ,   IBM 과 같은 미국의 다국적 기업은  폴발적으로 늘어나는 세라믹스 수요 즉 반도체를 만들기 위한 케이스 , 패키징을 교세라에 의뢰 하게되었고 , 엄격한 표준 시험 과정을 거쳐 합격 판정을 받아 낸다.


여기서 창업자 , 이나모리 가즈오의 진면목을 볼 수 잇는데 , 역발상 적인 사고 이다. 즉 점차 개선점을 찾아 가는 일반 적인 선형 문제 해결법에서 , 단가와 목표치에 따른 기준을 미리 정하고 그에 맞춰 해낼 수 잇는 온갖 실험지 테스트 데이터등을 망라 하여 최적화 기준을 표줄해 낸다.


지금의 전자통신과 분석 검증 시물레이션이 안정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무엇이던 결과를 미리 예측해 볼 수 있었디만 그때 당시의 산업에서는 실물을 만들어서 테스트를 거쳐서 검증 해보는 수 밖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누구 보다도 빠르게 그리고 누구 보다도 효과적인 접근 방식을 알아 내고 찾아 가는 법, 그것이 바로 이나모리 가즈오 의 사업 방식이 아니었을까 한더.


초창기 세라믹스 사업 뿐만 아니라 NTT 통신 회사에 대한 사업 이후  JAL 기에 대한 경영 참여 까지를 그가 집대성해 놓은 아메바식 독립적인 판단체 운영 시스템 과도 일맥 상통해 있고 지금에야 많이 퇴색해 버린 한번 입사한 사원을 퇴직 까지 혹은 그것 도 모라자라서 추모 공원 을 자체 만들어서 직원들의 상조까지를 책임 졌던 회사


어찌보면 서구적인 맥락에서보면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그리고ㅡ 효율성이 zero 인 그의 기업 운영 방식이 먹힐 수도 있었고 이제껏 잘 성공적으로 유지해 왓던 이면에는 그가 가식이 없는 경영자 였고 진실로 공장을 위해 하나 하나 공정 혹은 한사람 한사람의 현재와 미래 까지도 걱정해 주어 일거리를 만들어 주고자 노력 했었던 바로 근대에서 현대를 넘어 오는 우리들 아버지 할아버지 집안의 가장의 역할이 아니 었을까 ...



기업의 존망은 개개별 직원 들의 하나하나 노력에 의해서도 좌우 되지만 , 더욱 중요한 것인 리더인 사장이나 회장의 마음 가짐 이다. 올바르지 못한 방식으로 이면적이고 다른 목적의 경영을 하는 회사 운영 자가 있다면 기업의 흥망은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이 동서 고금의 진리이다.


앞으로도 그의 기업가 정신이 , 동양에서뿐만 아니라 서구에서도 각광 받고 , 끝내 인정 받는 것은 무언가 목표치에 대한 제대로된 결과물을 시간 엄수 하여 만들어 낸다라는 것이다. 오늘날 시각으로보면 납기 준수 이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재벌이라는 이름만 자주 거론 되지 않는다면 대단한 기업가라고 칭송할 만한 인물들이 꽤있다.  S 그롭이 그렇고 , H 그룹 , G , SK 그룹이 그러하다.  그들의 회장이라는 타이틀 자체가 한사람의 인격을 대변 한다기 보다 이미 그 기업의 브랜드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고 할 수 잇는 것이다.


그헌 측면에서 교세라의 창업자인 그의 화두는 지금을 사는 일반 직장인은 우리들에게도 울림이 있다.... " 마음에 사심은 업다 "  ,,, 일에 미쳐본적이 있는가 , 그리고 그일이 그토록 즐거웠던 적이 나의 인생에도 몇 차레나 있었고 지금도 그일이 나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 보수 없이 감내 할 수 잇다면 그대는 이미 성공자 이다.... 어느 목적지에 도달 하기 전에 말이다.... 요즘 뜨는 IOT산업이 그렇고 인터넷 창업자들이 그렇고 ,  이미 먼저 가신 스티브 잡스 형님 또한 그러하다...


더움 여름날 한줄기 시원한 비가 생각나는 저녁 입니다... 시나브로 ,,,99 적다.


Value Up tip; Kyocera

History[edit]

Origins to 2000[edit]

Kyocera's original product was a ceramic insulator known as a "kelcima" for use in television picture tubes. The company quickly adapted its technologies to produce an expanding range of ceramic components for electronic and structural applications. In the 1960s, as the NASA space program, the birth of Silicon Valley and the advancement of computer technology created demand for semiconductor integrated circuits (ICs), Kyocera developed ceramic semiconductor packages that remain among its core product lines today.

In the mid-1970s, Kyocera began expanding its material technologies to produce a diverse range of applied ceramic products, including solar photovoltaic modules; biocompatible tooth- and joint-replacement systems; industrial cutting tools; consumer ceramics, such as ceramic-bladed kitchen knives and ceramic-tipped ballpoint pens; and lab-grown gemstones, including rubies, emeralds, sapphires, opals, alexandrites and padparadschahs.

The company acquired electronic equipment manufacturing and radio communication technologies in 1979 through an investment in Cybernet Electronics Corporation, which was merged into Kyocera in 1982. Shortly afterward, Kyocera introduced one of the first portable, battery-powered laptop computers, sold in the U.S. as the Tandy Model 100, which featured an LCD screen and telephone-modem data transfer capability.

Kyocera gained optical technologies by acquiring Yashica Company, Limited in 1983, along with Yashica's prior licensing agreement with Carl Zeiss, and manufactured film and digital cameras under the Kyocera, Yashica and Contax trade names until 2005, when the company discontinued all film and digital camera production.

In the 1980s, Kyocera marketed audio components, such as CD players, receivers, turntables, and cassette decks. These featured unique elements, including Kyocera ceramic-based platforms, and are sought by collectors to the present day. At one time, Kyocera owned the famous KLH brand founded by Henry Kloss, though Kloss and the original Cambridge design and engineering staff had left the company by the time of the Kyocera purchase. In 1989, Kyocera stopped production of audio components and sought a buyer for the KLH brand.

In 1989, Kyocera acquired Elco Corporation, a manufacturer of electronic connectors. In 1990, Kyocera’s global operations expanded significantly with the addition of AVX Corporation, a global manufacturer of passive electronic components, such as ceramic chip capacitors, filters and voltage suppressors.

Expanding sales of photovoltaic solar energy products led the company to create Kyocera Solar Corporation in Japan in 1996, and Kyocera Solar, Inc. in the U.S. in 1999.

On Aug 4, 1999, Kyocera completed its merger with solar energy systems integrator Golden Genesis Company (Nasdaq:GG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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