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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월든 - 정여울이 직접 걷고, 느끼고, 만난 소로의 지혜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해냄 / 2025년 10월
평점 :

이 포스팅은 해냄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해마다 11월이 되면 아직 달력 한 장(12월)이 남아 있음에도 벌써 한 해가 훌쩍 지나가 버린 듯하다. 가보지 못한 길, 아니 가지 않기로 한 길에 대한 아쉬움도 새록새록 고개를 든다. 도시 직장인으로서의 비애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도심의 빠른 속도에 지쳐 가는 요즘, ‘오늘의 월든’을 제안하는 책이 새로 나와 눈길을 끈다. 정여울 작가의 『다시 만난 월든』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고전 『월든』을 지금-여기의 생활 언어로 번역해 “나답게, 진정하게 살아가는 법”을 구체적 감각으로 되살린다.
저자는 숲과 호수의 상징성을 살리면서도 재택과 출퇴근, 구독경제와 과소비, 알림과 피로가 일상이 된 도시인의 하루에 닿도록 내용을 세심하게 배열했다. 이 점이 이 책의 돋보이는 특징이다. 또한 사진작가 이승원이 담아낸 콩코드와 월든 호수의 풍경 사진은 이러한 사유를 시각적으로 보강하며, 책장을 넘기는 호흡을 한층 맑게 정리해 준다.

『월든』은 인문·윤리·생태의 주제가 촘촘히 교차하는 까닭에 이름은 익숙하지만 완독을 망설이게 하는 대표적 고전으로 꼽혀 왔다. 『다시 만난 월든』은 이 난점을 고려해 소로의 실험—덜 갖고, 덜 쓰고, 더 또렷하게 사는 삶—을 “콘크리트 도시에서 나를 지키며 자연의 호흡을 배우는 일”이라는 오늘의 언어로 다시 풀어낸다.
저자는 도피나 유행의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지출 구조와 시간표, 관계의 언어를 다시 설계하는 ‘생활 기술’로 논의를 옮긴다. 결과적으로 『월든』은 과거의 숲속 선언이 아니라 오늘의 책상 위에서 곧바로 실행 가능한 목록으로 다가온다.
이 책이 던지는 핵심 문장은 명료하다. “누구와 같은 보폭으로 움직일 필요는 없다.” 경쟁의 리듬에 맞추느라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고, 불필요한 채움을 덜어내어 자신을 되찾자는 제안이다. 저자는 소로의 문장과 질문을 빌려 ‘고정비와 구독 정리하기’, ‘걷기와 독서 같은 느린 활동 되살리기’, ‘타자와 자연을 해치지 않는 언어 습관 갖기’ 같은 생활 단위의 실천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덜어낼수록 시간이 생기고, 시간이 생길수록 자기답게 선택할 힘이 커지는 선순환을 독자가 체감하도록 설계돼 있다. 도시에서 가능한 월든—결국 그것은 속도를 바꾸는 결단에서 시작한다. 『다시 만난 월든』은 “내 마음의 적정 온도”를 되찾는 과정을 치유의 언어로 안내한다.
생태 감수성은 거창한 구호 이전에 ‘오늘 내가 남기는 흔적’을 의식하는 태도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환기한다. 소로가 남긴 시민불복종의 윤리, 약한 존재를 향한 연민과 공감의 감각은 현재의 위기와도 정확히 포개진다. 책은 도심의 형광등 아래서도 켤 수 있는 작은 등불처럼, 하루의 피로를 단숨에 없애 주지는 않지만 방향을 되돌리는 나침반이 될 문장들을 곳곳에 배치한다.
정여울 작가의 관찰은 문학과 일상, 죽음과 생, 인간과 신의 경계를 느릿하게 잇는다. 설명은 간결하되 독자가 자기 삶에 대입해 볼 빈칸을 남긴다. 이승원의 사진은 그 빈칸을 빛으로 채운다. 숲과 오두막은 특정 지명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속도’로 살아가려는 내면의 은유가 된다. 덕분에 독자는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 “나만의 월든”이 무엇인지 마음속 지도를 그려 보게 된다.

기자로서 바쁜 취재 일정에 시시각각 다가오는 마감의 알림 속에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문장이 남을 다독이지 못할 때가 많았다. 또한 교육과 컨퍼런스 진행 등 새로운 일을 하면서 내 시간을 만들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확인했다. 소로의 실험은 숲에 대한 낭만이 아니라 ‘주의력의 회복’에 대한 시도였다는 사실을.
덜어내자 집중이 돌아오고, 집중이 돌아오자 말과 글의 책임이 선명해졌다. 『월든』을 읽었나 싶은 가물거리는 기억을, 『다시 만난 월든』이 다시 읽어 보라고 권한다.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가 찬바람 속에서도 낙엽을 떨구며 내실을 다져 봄의 새 잎을 준비하듯, 우리도 지금 이 시기에 삶의 결을 정돈할 때다.
며칠 전, 대학 친구와 점심을 먹다 감원 바람이 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회사는 퇴사의 바람이 거세지 않지만, 지금 이곳에 계속 머물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요즘이다.

중요한 건 어디에 있든 ‘지금 있는 자리’에서 일상의 질서와 언어, 소비의 리듬을 바꾸는 선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오늘 내가 시작할 수 있는 월든이며, 소로를 다시 읽을 이유가 아닐까. 숲으로 가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의 지출과 시간, 언어를 다시 설계하는 순간, ‘윌든’은 도심 한가운데서도 작동한다.
* 출처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