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랭브릿지 옮김 / 리프레시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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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리프레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첫사랑을 떠올릴 때면 아련한 슬픔이 남아 있다. 설익은 풋사랑 같은 첫사랑의 추억을 리프레시 출판사에서 출간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다시 만났다. “고전을 리프레시하다”라는 시리즈답게, 지금 세대가 읽어도 막히지 않는 번역과 감각적인 흑백 일러스트, 핵심 구절을 모은 구성으로 베르테르의 이야기와 정서를 또렷하게 되살린다.


“사랑은 그를 구원했고, 동시에 파멸시켰다"라는 카피처럼, 작품은 사랑이 인간을 일으키는 동시에 무너뜨리는 모순의 힘임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젊은 화가 베르테르는 전원으로 내려와 자연과 예술, 사람들과의 교류 속에서 밝은 기쁨을 누린다. 그는 어느 무도회에서 샤를로테(로테)를 만나 한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로테는 이미 성실하고 믿음직한 약혼자 알베르트를 두고 있다.


베르테르는 로테와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사랑이 이룰 수 없는 것임을 절감한다. 그는 스스로 감정을 절제하려 애쓰고, 한때는 관직 생활로 도피를 시도하지만, 조직의 형식과 위계는 그에게 모욕과 좌절만을 남긴다. 다시 로테 곁으로 돌아온 베르테르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그녀의 일상과 음악, 독서를 함께하며 더욱 깊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로테 역시 베르테르의 섬세함과 열정에 끌리지만, 약혼자에 대한 의리와 사회적 도덕을 지키려 한다. 결국 로테는 더 이상의 만남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하고, 베르테르는 절망 끝에 마지막 선택을 한다. 괴테의 초기 걸작인 이 작품은 편지체(서간체)로 쓰여 있고, 이성·규범보다 개인의 감정과 천재성, 자연의 생동을 중시하는 질풍노도 운동을 대표한다.




베르테르의 ‘느낌’과 ‘순간의 진실’이 사회적 예법이나 관습보다 더 커다란 권위를 갖는 장면들이 반복되며, 이후 로맨티시즘 문학 전반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작품 출간 직후 유럽 각지에서 주인공을 모방한 차림새와 행동이 유행했고, 극단적 선택을 다룬 결말은 사회적 논쟁을 촉발했다. 문학이 독자의 감정과 행동에 실질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즉, 예술의 영향력과 책임—을 둘러싼 토론은 지금도 유효하다.


로테의 ‘의리’와 알베르트의 ‘합리’가 상징하듯, 이 작품의 비극은 단순한 삼각관계가 아니라 근대 시민사회의 가치 충돌이다. 개인의 열정(사랑)과 사회적 책임(도덕), 신분·직업·교양이 부딪히는 지점에서 비극이 만들어진다. 베르테르는 예술가적 자의식과 현실 적응 실패 사이에서 균형을 잃고, 이는 오늘의 ‘일·삶·사랑’이 엉켜 있는 청년들의 난제와도 겹친다.


고전 소설인 이 책을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SNS와 숏폼 속도가 감정의 과잉·편향을 부추기는 시대에, 베르테르의 내면 독백은 ‘느낌을 언어로 정제해 스스로 이해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운다. 감정은 억압이 아니라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랑은 타인의 삶과 선택을 존중하는 윤리의 문제다. 로테의 태도는 타자에 대한 책임의 언어이고, 베르테르의 고통은 경계가 무너질 때 발생하는 위험을 보여준다. 오늘의 연애·관계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균형감각을 제공한다.




베르테르가 관직에서 겪는 굴욕은, 현대 직장에서 창의성과 위계가 충돌할 때 생기는 무력감과 닮았다. ‘자존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뜨겁다. 리프레시 판본으로 새롭게 각색된 이 책은 매끄러운 현대어 번역, 분위기를 살리는 삽화, 인용과 구성의 가독성이 좋아 처음 이 책을 읽는 독자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다. ‘고전을 현재형으로 읽게 하는 물리적 설계’가 장점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첫사랑의 서사’로 시작해 ‘인간의 감정과 윤리, 사회의 문법’으로 확장되는 소설이다. 리프레시 출판사의 이번 판본은 그 확장을 오늘의 독자 감각으로 옮겨놓는다. 베르테르의 비극은 시대의 산물이지만, 그의 언어는 여전히 지금 우리의 심장과 맞닿아 있다. 사랑과 자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길을 찾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오래된 문장으로 건네는 가장 현대적인 조언이다.



* 출처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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