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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빛 안개 상·하 세트 - 전2권
영온 지음 / 히스토리퀸 / 2025년 9월
평점 :

이 포스팅은 히스토리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191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물빛 안개』는 연해주에서 펼쳐진 독립투사들의 치열한 투쟁과, 한 여인과 장교 사이의 금기된 사랑을 그린 장편 소설로 상·하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 이야기는 일본 총독의 조선인 양자이자 군인인 후지와라 히로유키 중위와, 그의 곁에서 일하는 조선인 여급 정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조국을 짓밟는 군복을 입은 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곧 배신과도 같았다. 그러나 정화는 자신을 지켜주고 돕는 히로유키에게 마음이 흔들리며, 사랑과 조국 사이에서 깊은 갈등을 겪는다. 작품은 개인적 감정과 민족적 대의가 충돌하는 상황 속에서 “힘든 길임을 알면서도 올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작가 영온은 사학을 전공한 역사학도로, 근현대사를 연구하며 독립운동의 가치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는 “친일 장교 밑에서 일하다 끝내 떠나기를 거부하는 꿈을 꿨다. 그를 사랑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가 정말 친일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의문에서 소설이 시작됐다”라고 밝힌 바 있다. 『물빛 안개』는 이러한 내적 고민에서 출발해, 더 나은 세상과 올바른 가치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투사들에게 바치는 헌사로 완성되었다.

제목인 물빛 안개는 독립에 대한 은유로 작용한다. 손에 잡힐 듯하지만 흩어지는 안개처럼, 독립은 투사들에게 간절했으나 쉽게 닿을 수 없는 꿈이었다. 또한 작품에는 가상의 독립군단 명중경단(明中景團)이 등장한다. 이들은 ‘푸른 하늘에 붉은 해’라는 상징을 내세워 태극기를 형상화하며, 혹한의 연해주에서 독립을 염원한 투사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작품은 허구와 실제 역사를 교차시키며 사실감을 높였다. 최재형, 이상설, 김마리아, 엄주필 등 연해주에서 활동한 실존 독립운동가들이 등장하고, 특히 1920년 연해주에서 벌어진 4월 참변(니콜스크 사건)을 모티브 삼아 일본군의 학살과 이에 맞선 독립군의 무장투쟁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전체는 3부로 구성되며, 1부에서는 정화의 시점에서 히로유키와의 만남과 갈등을, 2부에서는 히로유키의 시점을 따라 연해주에서의 체험과 독립운동가들과의 교류를, 3부에서는 두 사람의 재회와 독립운동 거사 참여가 그려진다. 51만 자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속에 치밀하게 배치된 복선은 결말에서 회수되며 정교한 플롯을 완성한다.

『물빛 안개』는 단순한 역사 재현물이 아니다. 러시아 문학과 언어가 등장해 연해주라는 특수한 배경의 공간감을 더하고, 개인과 민족, 사랑과 투쟁이라는 대립적 요소들이 교차하며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작가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억하는 일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가 마주해야 할 현재의 질문”이라고 강조한다. 『물빛 안개』는 바로 그 질문을 소설적 형식으로 던지며, 한 편의 문학을 넘어 기억해야 할 역사적 기록으로 자리한다.
이 책은 근현대사와 독립운동에 관심 있는 독자, 역사와 문학의 결합을 원하는 이들, 그리고 사랑과 투쟁이 공존하는 드라마틱한 서사를 찾는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 출처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