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비밀
홍명진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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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진의 단편집이다. 낯선 이름.낯설다기보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글 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요즘인데도, 어딘가 비슷한 이름이 있었을법도 한데..어쩐지 낯설다. 작가의 약력을 꼼꼼히 보지 않는 야매독자인지라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닥 큰 기대를 갖고 읽은 건 아니다. 사 놓고 이리저리 치이다 어떤 의무감(?)처럼 읽기 시작했다. 요즘 삶창의 책들이 잘 나온다. 첫 단편부터 움찔했다. 충격적이거나 반전이 있거나 전투적이어서가 아니라 습습 스며들어버리는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뻔하고 빤한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고, 뻔하고 빤한 이야기임에 분명한데 눈알이 뻑뻑해지도록 읽게 하는 힘.
모든 이야기의 맛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정직하고 세밀한 글.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대, 라던가 누구한테 들어서 알게된 사실들이 아니라 파헤치고 들어간 것이 분명한 이야기의 현실성은 '이 사람 도대체 뭐야?' 하게 한다. 책을 읽다 문득 떠오르는 익숙함. 뭐지? 분명히 다른데 뭔가 닮았어. 내가 손꼽는 몇 작품 중 하나인 '숨비소리' 그 저자였던것이다.

세련된 상처는 없다. 우아한 멍도 없다. 아름다운 비명도 없으며 빛나는 절망도 없다. 그렇다면 상처는 세련되게 쓰여서도 안되며 비명이 아름답게 포장되어도 안되고 절망이 빛날 변명도 굳이 필요하지 않다. 고스란히 상처를 이야기하는 글들이 순정하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들을 눈여겨 보는 건, 그것들과 그 사람들과 공명하는 건 결국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 것들이다.

이 책은..정말 좋다. 너무 좋아서 편집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이 책 물건입디다요!"

좋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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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눈, 벌레의 눈
김해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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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안에는 내가 아는 모든 단어와 내가 모르던 단어들이 새롭게 펄떡인다. 시를 읽는다는 건 어떤 것인가. 감성이 진동하는 것이라는 일차적 반응을 넘어 시가 파고 들어 사유의 중심을 뒤흔드는 경험이 이어진다. 고결한 어떤 것이 아닌 어디에나 눈치채지 못하게 떨어져 있는 각질같은 언어들. 숨을 쉬고 움직일 때마다 교묘히(?) 떨어져 흔적을 남기고야 마는 징글징글한 삶의 얼룩. 그것이 피이고, 땀이고 눈물이고 짙은 한숨이기도 했고, 그것이 함성이고, 웃음이고, 노래이기도 했다. 반듯하게 읽어낸 김해자의 눈. 그 눈을 통해 다시 읽어내는 시들.
함부로 혹은 허투루 전해서는 안되는 신탁을 전하듯 반듯하게 읽어주는(?) 시인의 글이 다부지다.
가끔, 시를 읽고 어떤 풍경과 장면이 떠오르면 같잖게도 이야기로 써보곤 했다. 염치와 부끄러움을 조금은 알기에 공공연하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비밀스러운 공간에 적어두곤 했다. 일종의 전리품처럼..
한동안 시를 읽지 않았다. 입술로 읽기에는 좋았으나 늘상 뒷맛이 좋지 않았다. 시심이 깊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깊어지면 뭐하나 허우적대다 매몰되고 그대로 죽는거지. 하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도 들었고.
시평에세이라고 명명한 이 책은 연대기처럼도 읽힌다.시의 진화를 정리한, 시의 위치와 이 시대에 시의 책무에 대해서도 엄중하게 묻는 것 같았다.
어찌되었든 시는 또 하나의 기록이다.
시대의 기록이고 사람의 기록이어야 한다.
아..시를 읽어야겠다.
마음으로, 영혼으로 읽는게 아닌 사람의 눈으로 읽어야겠다.
시는 마음으로 읽는게 아니다. 다부지게 촛점을 맞춘 눈으로 읽는게 맞다.
시의 눈, 벌레의 눈. 기어코 살아내는 기꺼이 죽어가는 그런 시. 그런 벌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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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신간 알림 메시지를 받고 예약 구매를 한 책이 오늘 도착했다. 친구에게도 보내고..친구가 좋아할지 말지는 그냥 믿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니까 좋아하지 않더라도 싫어하진 않을게다. 착한 아이니까..

 10월에 게세르를 읽고, 에다 이야기를 다시 읽고 어쩌다 보니 일본과 중국의 고전에 빠져 지냈다.

 바진, 마오둔, 라오서, 왕멍, 츠쯔젠, 류전윈..어떤 자극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책읽기는 늘 맥락없이 튀는지라 놀랍지도 않았다.

스토리텔링으로서 세계 신화..신화라는 분야에서 신뢰할 수 있는 작가로 김남일을 꼽는다. 주관적인 기준에서 그렇다. 연구하는 폭과 양은 말할 것도 없고, 작가 자신이 즐겁다. 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고는 못배기겠다는 느낌. 그래서 쉽게 쓴다. 그렇다고 내용이 헐거운 것은 아니다. 지독하게 파고 든 사람이 들려주는 충분한 이야기. 그것이다.

 

 

 

얼마 전 책정리를 하다 발견한 이윤기의 책.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감상은 '국산'과 '국내산'의 미묘한 차이 같은 것이었다.  우리 신화 에세이지만..어쩐지..

 

 

 

 

 

 

 

 

 

 

 

 

 

김남일의 신화. 믿고 읽는 만큼 기대가 크다. 훑어만 봐야지 하다가 어느새 3부를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일은 해야하는데..책을 놓고 싶지 않다.

만약 이 책을 구입하고 읽는다면..단숨에 읽을 시간을 확보한 연후에 읽으라고 조언하고 싶다.

 

  신화는 비현실적이거나 기복을 위한 어떤 상징에 대한 앙망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인간의 이야기에 투영체는 아닐까 늘 생각했다. 마당놀이처럼..오래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때론 각색되고 호도되기도 하지만-, 예를 들어 이슬람의 여왕처럼..해적이 되었던 알프히드 공주가 한 남자에게 정복되었다는 사회, 정치, 종교적 이유로- 그 바탕에 흐르고 있는 정의와 평화, 혹은 평등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백 개의 아시아를 다시 찾아놓아야 겠다. 분명 읽고 싶어질거다.

꽃처럼 신화를 읽으면서 점점 더 간절히 읽고 싶어질거다.

 

 

 

 

 

오래 바빴다. 이사도 했고, 수능도 끝났고, 책을 읽어댈 시간만 빼꼼하게 남겨두고 지냈다.

맨 손으로 시간을 뺏어먹는 악마들을 처치해야만 신과 맞설 수 있다는 퀘스트를 받은 가녀린 인간처럼 지냈다.

그 인간은 결국 이겨낼 것이고 신과 협상을 하게 될것이다.

그리고 여유롭게 책을 읽으며 휴식을 가져도 좋을 보상을 받게될 것이다.

그래야 신화니까. 신화는 정보가 아니라 이야기니까.

 

한 석달만인것 같네..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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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서 온 편지 삶창시선 49
김수열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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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의 시>
                  -김수열

내 시에는 거추장스러운 데가 많다

거추장스러워 가려야할 데가 많다

가려야할 데가 많아 입고 또 입어야 한다

하여, 나탈리 망세의 파격 같은 선율이 없다

내 시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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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물에서 온 편지의 첫 시다.
언뜻 비장하기까지하다.
내 시는 이렇다. 일종의 선언처럼 읽혔다. 날 것 그대로 꾸밈없던 그의 시에 어떤 변화가 있는걸까.
훗.
여전히 갓 낚여 올라온 운수 사나운 물고기처럼 퍼덕거린다. 비린내가 절고 절은데다 종일 땀흘린 할매에게 나던 구수한 젓갈 냄새처럼 입맛이 돈다.
바닷가에서 태어나 생선 손질로 평생 멕이고 입혀 키워 내다 '새댁이 니 세상에 질로 귀한 젓국이 뭔중 아나? 사람 젓국이다 . 짠 바람에 폭 삭아 눈물까지 비렁내가 나는 젓국말이다. 그라다 죽아삐믄 송장 썩는 내가 아이고 잘 삭은 내가 나는기라. 내는 반쯤은 젓국이 된거 같으다. 하모 됐고 말고' 혼잣말인듯 아닌듯 읊조리시던 할매의 목소리처럼 편안하다.

거추장스러워 입고 입는다는 거짓말과
거추장스러운데 자꾸 입는다는 어리숙함 사이에서 싱긋이 웃고 있는걸까. 아무렇지도 않은 읊조림 속에 마주하기에 거북할 수도 있는 설움이, 그리움이, 사람살이의 변명이 있을거라는 경고였을까.

시집을 덮고서야 거추장스러워졌다.
나탈리 망세의 파격같은 선율은 아니지만 삶의 깊은 구석에 박힌 수열은 있었다.등비수열도 등차수열도 아닌 조화수열이다.진동하며 극한으로 발산하는.

얼마나 거추장스러워져야 사람다워 보일까 생각했다. 불가능하다. 천둥벌거숭이로 살아야겠다.
시집..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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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다렸고, 드디어 나왔다.  태평양 위에 떠 있는 두 섬. 한국과 오키나와. 이명원의 책이다. 나는 그의 책을 딱 한 권 읽었다. '타는 혀'

 

 김현의 비평에 한동안 매료되어 있을 때 이명원의 타는 혀는 그야말로 신선했다. 당시 2000년에, 21세기에 막 들어선 그 때, 19세기 말을 섭렵하던 비평가들의 이야기를 새롭고 날카롭게 써냈었다.

 그렇지, 이제야 제대로 세기가 바뀐 실감이 나네..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시간의 때가 잔뜩 묻어버려 누렇게 변색된 책등을 가진 책을 오랜만에 들여다 보았다. 한동안 찾지 않던 후궁을 찾는 황제의 오만함같은 것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의 글이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동안 더 날카로워졌을까? 기대가 증폭된다 기대가 너울처럼 번진다.

저 시퍼런 표지가 기대를 부추긴다.

 

 

어쨌든 책은 한국과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쓰인 것 같다.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의 전초기지로 선택된 두 지역. 오키나와로 끌려갔던 조선인. 위안부. 모든 문제와 역사적 비극들이 두 지점에서 교차된다. 어쩌면 거기서 일제에 항거할 수 밖에 없었던 순수한 저항의 뿌리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거기서 이 오랜 역사적 잘못에 대한 사죄의 고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든 그 뿌리에서부터 더듬어 와야 할 것이다.

막연히 좋은게 좋은거라는 생각으로 양비론을 들고나와 혹은 그랬다더라 하는 불분명한 사실로 강제 화해를 종용하는 부류들에게도 들이밀기 좋은 '처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올곧은 역사관.

고개 돌리지 않고 마주보고 샅샅이 보아야 한다.

 

출판사제공 책 소개에 쓰여진 " 한국과 오키나와는 비트겐슈타인의 조어를 빌려 표현하자면 일종의 '가족유사성'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거시적인 역사의 국면에서 보면, 한국과 오키나와는 동아시아 역내에서의 패권/헤게모니 이행기에는 한상 '인질 상태'와 유사한 국면으로 이행하곤 했다 " 라는 부분에서 멈칫 했다.

바로 그거다.

인.질.상.태.

하지만 협상을 위해 살려두는 인질이 아니었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인질을 내세워 지위를 확보하고 인질과 협상상대를 모조리 진압하기 위한 인질상태.

그 위협적인 상황에 놓였던 멀지 않은 과거의 조상들, 아직도 생생하게 입으로 전해지는 그 이야기들의 근원을 들여다 보아야겠다.

 

두 섬.

기대가 크다.

도착할 때 까지 기대감은 더 커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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