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 - 살면서 늙는 곳, 요리아이 노인홈 이야기
가노코 히로후미 지음, 이정환 옮김 / 푸른숲 / 2017년 2월

일요일 아침의 재미 서프라이즈에서 얼마전 네덜란드 호그벡 마을의 이야기를 했다.

마을 밖을 벗어나지 않고 사는 사람들. 엄격한 통제가 있는 비밀이 있어 보였지만, 사실은 요양소였다.

노인들이 일상의 생활 그대로 마을을 이루고 우체부, 점원, 청소부, 수리공 모두가 전문 관리인이었다. 그들이 늘 노인들을 살피고 응급상황에 대처하고 노인들은 치매나 질병 이전의 모습 그대로 , 말 그대로 '일상'을 살아간다.

모든 비용은 국가에서 댄다고 했다.

놀라웠다 .

치매.

드라마나 이웃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치매는 힘들다. 본인도 오죽 힘들까마는 돌보는 가족들에게도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인 부담이 상상이상이다. 치매인 부모를 돌보다 함께 죽어버린 아들, 딸의 이야기며, 요양원에 모셔놓았더니 학대를 일삼았다는 이야기며, 거리를 떠돌던 치매노인의 손에 들려있던 미역국 이야기며 어둡고 쓸쓸하고 초라하고 참담한 이야기와 연결되는 치매는 어떻게 이야기해도 늘 비극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치매를 앓는다는 건 또 다른 시공간으로 들어가 또다른 인격으로 살아내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 시공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도 가늠도 할 수 없는 세계. 그래서 서로 다른 기억과 다른 경험과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고 소통하지 못하는걸지도 모른다고..

대소변도 못 가리고 늘 허기지고, 자기밖에 모르고, 아이처럼 떼를 쓰고 상식밖의 일을 하는게 그들이 맞은 역할이래도 어렵다.

격리, 요양을 가장한 수용. 그 속에 노인의 현실과 나의 미래가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미래.

치매 예방을 아무리 해본들..치매가 온다면 어찌 막겠는가.

정신이 없다고 아무렇게나 취급당하진 않을까.

치매가 오기 전까지 성실하게 살아낸 것 밖에 없는데,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빼앗기고 갇히는 건 억울하고 참담할거다.

그 사실을 인지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책은 일본의 새로운 방식의 공동체를 소개하고 있다.

요양원에 가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공동체.

단 한명의 고집쟁이 노인을 위해 나섰던 복지사들의 의기투합과 그 속에서 하나씩 이루어가는 과정이 눈물겹기보다는 흥미진진하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노인들의 진심. 어쩐지 콧등이 찡해져야 하겠지만, 웃음이 난다. 천진해진 '사람'들을 읽는 것은 유쾌하니까 말이다.

<치매 노인을 시설에 가두어 눈에 안 띄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려 한다. 그렇게 해서 노인 간병 문제를 일상 세계로 끌어내려 노력한다. 바로 이것이 '요리아이'의 기본자세이고 '치매에 걸려도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다'는 노인들의 바람에도 부합한다. (p66-67)>

< 새로운 일은 언제나 무모하고 계획조차 없는 상태에서, 전례가 없고 미래가 약속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탄생한다.(p86)>

멋지지 않은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하나다. '치매에 걸려도 자연스럽게 생활하고 싶다'

그것이 가능할지 안할지는 다양한 시도 속에서 찾아질거다.

언젠가 지인들과 그런 이야기를 했다.

늙으면 갖고 있는거 많든 적든 서로 다 모아서 시골에 땅사고 집짓고 모여 살자. 누가 죽든, 누가 아프든, 서로 보살피고 죽는 순간까지 살부비며 즐겁게 살자. 응?

뭐먹고 사냐고? 심어 먹지 뭐.

참 생각없는 소리였지만, 그게 가능하냐는 지청구를 들었지만..영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지 싶다.

사람으로 태어나 살다 사람으로 죽는 건 당연한 일이다. 불편한 존재로 격리되어 죽어가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을까.

치매 노인의 문제를 조금 더 세심하게 멀리 떼어놓는게 아니라 가까이 데려다 놓고 함께 해결해보자는 생각을 갖게 하는 책이다.

인간의 품위. 인간의 품격.

꼭 지켜내야하고 지켜줘야 하겠다.

물론..치매도 아닌데 인간으로서의 품격따윈 개에게 줘버린 사람들도 있지만..내일이면 일단 일단락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