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모 신문에 "못할 것 없다, 추첨으로 의원 뽑자'라는 헤드라인을 가진 기사를 읽었다.
권력과 자본과 언론이 한 덩어리가 되어 어느 하나 이탈 없이 빼곡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음을 보아왔다.
일본에 부역하고, 자본에 부역하고 권력에 부역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사회는 비정상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토양 위에 지어진 대의민주주의는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
작년에 한 권에 책을 읽고 무릎을 쳤다.
얇고 간결한 책이다. 추첨민주주의에 대한 개론과 우리의 정치적 토양 위에 어떻게 발아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실렸다. 공론화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작년 여름. 헬조선에 집약된 모순은 보았으나 그것을 뚫고 나오려는 의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러나 박근혜 게이트의 시작과 광장으로 모여 보여준 국민들의 의지와 힘은 어쩌면 광장민주주의와 추첨민주주의에 대한 공론이 가능한 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광장의 힘. 광장의 정치, "국민의 소리를 들어라!" 라고 외치는 함성 속에 주권자로서 주인으로서의 민중의 힘이 보였다면 과장일까?
국회의원이 되기위해 엄청난 학력과 재력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 아닌, 누구라도 지역의 대표가 되고, 직능대표가 될 수 있다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추첨제로 선출된 민회가 국회와 정부를 견제하고 일정한 권력을 갖는다면 얼마나 멋질까? 생각해본다.
노동자의 대표가, 농민의 대표가, 빈민의 대표가, 소수자의 대표가 정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와 장을 갖는다면, 경찰의 벽을 뚫고 온몸을 길바닥에 부딪는 일은 줄어들지도 모른다.
기사를 읽으며 논의를 해도 될만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의 구조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지 않는가.
탄핵이 현실화되면, 선거를 하게 될테고, 개헌논의가 시작될 수도 있을거다
숨쉬는 것 조차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는 정치적 인간으로(인식하든 못하든..) 이 논의는 유효할 것이라 가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