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악마 기자 정의 사제 - 함세웅 주진우의 '속 시원한 현대사'
함세웅.주진우 지음 / 시사IN북 / 2016년 10월
평점 :
서동은 선화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서동요를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자꾸만 퍼졌고, 노랫말은 의심이 되고 확신이 되어 선화공주와 결혼을 하게 된다.
어떤 이야기는 어른들의 입(소위 주류언론)을 통해 전해지기 보다 어린아이들의 입(그 외 기타등등)을 통해 전달되며 확장되는 힘이 되기도 한다.
힘 없는 자들의 확장 방식. 분명 역사의 주인임에도 주인의 자리에서 쫓겨나 타자가 되어 떠도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라고 물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소심해질대로 소심해져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자리는 여기쯤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당신은 밀려났기 때문이죠. 그것도 부당하게..'라며 찬찬히 일러주는 목소리가 있다.
잔뜩 겁을 먹었거나 망할 놈의 세상이라고 무관심해지려 할 때, 사실은 겁먹지 않아도 된다고, 저들이 우리를 심판할 아무런 권리가 없다고 말해주는 소리가 있다.
벙어리 흉내를 내며 목숨을 부지하는 언론들 사이에서 수없이 고소당하고 고발당하면서도 바른 소리를 하겠다고 취재하는, 마치 강호의 협객같은 기자와 그 삶이 온전히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담고 있는 함세웅 신부의 아주 특별한 강의가 엮인 책이다.
거짓말에 거짓말을 덧대어 누더기를 만들어버린 우리의 현대사. 그 속에 꾸덕꾸덕한 얼룩으로 남은 국민들의 눈물과 한숨과 피를 읽는다.
강동원처럼 스타일리시한 사제도 아니고 말쑥한 언론인도 아니어서 더 귀담아 듣게 되는 말들.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을 해 주는 사람들의 단단한 목소리를 듣는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들. 참담한 현 정권이 나오기까지의 계보를 듣다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저 한숨만으로 흘려버릴건가.
그저 한숨이 아닌, 역동적인 힘을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두 사람의 모습에 어떤 자책감마저 들었다.
기록.
기록해야한다. 지금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오롯이 기록해야 한다.
또 다시 왜곡하고 저들의 입맛에 맞게 각색해, 권력유지의 동력으로 삼고도 남을 사람들이지 않은가.
4.19를, 5.18을, 6.10을 기억한다.
4.19와 5.18이 제대로 알려지기까지의 시간, 누명과 통한의 시간을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세월호를 기록하고, 백남기를 기록하고, 노무현과 통진당을 기록하고, 사드와 성주군민을 기록해야 한다.
그리고, 노래해야 한다. 울만큼 울었고, 화낼만큼 화냈으니..이제 노래해야 한다.
이 참담한 시간을 말이다.
역사/정치/민주/통일/신념.
이 다섯가지 주제를 통해 드러나는 빼앗긴 역사의 민낯과, 우리의 표정은 선명했다.
더는 돌아설수도 없고, 뒷걸음질칠 수도 없는 일이다.
미래를 이야기하기 위해 미래를 기록하기 위해, 오늘 서동처럼 노래를 불러야겠다고 자꾸 생각하게 된다.
아무도 전해주지 않는 이야기, 그러나 반드시 밝혀내야 할 이야기.
중구난방 떠드는 노래가 아니라 다섯개의 악장으로 잘 편곡된 웅장한 이야기를 듣는다.
악마라기엔 너무 귀여운 기자와 정의의 사도라고 자꾸 발음하게 되는 사제 함세웅의 이야기.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