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새내기 유령 - 어른들을 위한 영국의 동화
로버트 헌터 지음, 맹슬기 옮김 / 에디시옹 장물랭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파란 표지가 매혹적인 새내기 유령.
친근하고 유연한 그림과 찬찬한 이야기가 좋다. 어쩐지 시린 이야기, 새내기 유령은 다름 아닌 '나'일 수도 '너' 일 수도있다는 느낌에 잠깐 떨렸다.
처음 유령이(사람이, 사회적 사람이) 되고 무엇을 해야할 지 몰라 동료들을 따라가고 관찰하고 그러다 그들을 놓치고 발견하게 되는 첫 시선. 거기에서 만나게 되는 친절한 친구(동료 혹은 인연). 그의 꿈을 듣고, 나의 꿈을 발견하고 가닥을 잡아갈 무렵에 알게 되는 참담한 자신의 임무(가혹한 현실). 누군가를 해치고 만들어지는 정체성과 격려(누군가를 밟고 서야 하는 현실)가 참담했다. 아직 유령이(사회가) 뭔지 모르는 순수가 남은 탓일지도 모른다.
나의 역할을 눈치 챈 가장 소중한 친구는 도망을 가고 그게 아니라고 이야기해주려 친구를 찾아간다. 그 순간 '나'를 찾아온 유령 동료들..
필사적으로 친구를 구하기 위해 도망을 친다. 친구를 끌어안고 멀리, 더 멀리, 유령들이 찾아올 수 없을만큼 멀리..
높이 더 높이..오직 친구를 구하기 위해..유령인 나와 사람인 친구가 만나게 되는 대기권과 우주..친구를 잃고 나자 유령 동료들이 환호했다..
드디어 임무를 완수했다고..
나의 진심과 가치관이 집단의 목적과 다를 때, 나의 존재성만으로 그렇게 해야한다고 강요 당할 때, 과연 그것을 거부할 수 있을까?
어떻든 나의 선의가 타자의 불행을 끌어온다면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죄책감을 덜 수 있을까?
집중과 선택이라는 말이 난무하는 때, 무엇에 집중해야할지 무엇을 선택해야할지, 모든 선택 앞에서 '새내기'일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 선택이 최선일 수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지극히 낮은 확률임을 알고도 선택할 수 있을까. 꽤 높은 확률이란걸 알게 되면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할 수 있을까?
공공의 선이랄지, 혹은 존재의 정체성이랄지 하는 카드를 들이밀면서..
어쩌면 살아간다는 일은 언제나 새내기가 되어 지켜내고 싶은 것을 가장 아프게 잃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국은 지킬 것을 모두 잃게 되는 것, 그렇게 잃을것이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을 만들지 않게 되는 것..
그리고..그것에 적당한 의미를 부여한 채 빛나는 별이 되었다고 포장하여 기억하는 과정은 아닐까..생각하게 된다.
극단적이며 부정적일지 모르겠지만 굳이 반박하고 싶지 않다. 이미 그렇게 지내왔고 그렇게 지내고 있으니까..
책을 읽는 내내, 그래봐야 30분도 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파랗게 시리다는 것이 뭔지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체감한다.
행간에 괄호를 묶어 자꾸 끼워넣게 되는 고백. 표지를 제외하고 열네 장.
간단한 책 한권이 간단치 않게 읽혔다.
에디시옹장물랭.
장 물랭 에디션이란 의미일까? 장 물랭이라면 내가 알고 있는 그 레지스탕스 장 물랭인가?
왜 하필 장 물랭이지?
깊어가는 생각을 피하고 싶어 애꿎은 호기심을 발동시켜본다.
기억 해 두어야겠다.
책이 참..괜찮다. 그림도 파랑파랑하고..
표지 뒷면 바코드 옆에 쓰인 '수익금으로 나무를 심어요' 라는 말이 귀엽다.
책을 만든다고 베어 낸 나무를 다시 심는다고? 나무가 많아지면 새내기 유령 여럿이 부딪히겠는걸?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하던데..어른 보다는 새내기를 위한 고민지침서에 가까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