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시장에서 양미리 한 두름을 사왔다

스무 마리 한 묶음 노란 비닐끝에 묶여 왔다

사천 원의 생이 합동으로 엮여 늘어진.

그래도 생을 품을 땐 팔팔하게 바다를 거슬렀을 양미리

늙은 시인은 저녁밥상에 앉아

마리 당 일금 200원짜리 생을 이빨로 씹는다

난 얼마짜리의 생일까

뼈째 꼭꼭 씹어요 골다공증에 좋대요

마누라의 영양가 있는 말, 귓전으로흘리며

누가 내 생을 질기게 씹어줄 수 있을까를 시인은 곰곰 생각한다

마이너스 통장에 줄그어진 늙은 시인의 생

양미리 한 마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메마른 생을

누가 강한 턱으로 억세게 물어뜯어 줄 것인가를

시인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이제 허명뿐인 그의 이름을 누군가가 꼭꼭 씹어주길 바라면서

틀니 잇새에 낀 가시 하나에 잇몸이 찔리운다

아뿔사 갈매기 울음소릴 듣고 만 것일까

끼우룩!

목이 메어

손에 든 소주잔이 맑게 흔들리는 저녁



-----------------------------------------------------------------

 

시집의 제목만으로 울컥했다. 사람이 먼저다. 라고 쓰인 현수막을 본 적이 있다. '여기 사람 있어요!'라고 외치는 어느 현장을 지나친 적이 있다.

사람은 피상적으로 우선되어야 할 가치처럼, 내게 인식되어 있다. 그저 사람이라서..

그런 막연함은 사람에 대한 상처를 깊게 했다. 사람이 있다며, 먼저라며, 거기에 힘이 있다며?

사람에게 받는 상처는 무엇보다 크다. 비약하자면 같은 종족으로서의 존재성을 거부당한 것 같은 참담함이 들기도 한다.

또는 저 이와 나는 같은 부류가 아닌가보다, 라며 예단하여 선을 그어버리기도 한다. 구분과 구분..그 속에서 사람이란 얼마나 외롭고 유약한가.


해 질 무렵, 까마귀가 저녁 하늘의 한 귀퉁이를 물고 떼로 날아가고 어느덧 이윽한 밤이 되었을 때, 자꾸만 작아지는 인간의 섬에 슬며시 팔을 끼며 먼 바다를 같이 보아주는 사람. 그런 사람. 애인.

영양가 있는 말로 양념한 양미리를 내어 줄 수 있는 사람,

마이너스 생을 마주잡고 걸어 줄 사람.

바짝 말라버린 삶을 물어뜯어 줄 수 있는 사람. 수없이 많은 잇자욱으로 다만 외로운 생은 아니었다고 확인시켜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애인이겠다.


여백이 많은, 그림처럼 풍경처럼 쓰여진 최돈선의 시집을 읽다 문득 떠오른 정현종의 시.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중에서)>


최돈선의 시는 흑백영화처럼 읽힌다. 아무도 대사를 말하지 않는다. 촌스럽지만 귀에 박히는 배경음악이 흐르고 한 장면이 지나면 자막이 화면 가득 쓰이고 다시 다음장면으로 넘어가고..무성영화처럼 ..그러니 정작 시는 읽은건지 본건지가 묘연해진다. 때때로 까마귀의 소리가, 갈매기의 소리가, 할렘가의 눅눅한 소리가, 섬에 파도가 부딪는 소리가 사람의 말을 대신해 소리의 여백을 채운다


사람이 정말 애인일까.

내 팔뚝을 물어 뜯듯, 내 이름을 물어 뜯어줄 믿음직한 그대를 아직도 기다리는 시인은 풋사랑에 몸서리치는 소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덧 먼 생의 길을 걸어버린 시인.

< 생


잠이 햇살처럼 쏟아지네요 늙어가는 생 (생/ 전문)>


어쩌면 꿈이었을까? 사람이 애인인 꿈.


<사랑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고 오랜 기다림이라는 것을

처마 밑에서

비 맞는 푸른 산 바라보며 고양이가 운다. (새벽밥/ 중에서>


양미리처럼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늙어 꼬부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사랑. 기다리게 하는 이유. 그것은 사람이 애인이기 때문이다.

단 한 번 물어뜯기기 위한 간절한 기다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