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집에서 설거지를 한다

살림이란 게 설거지에서 완결된다지만

완결이라는 말이 아프다

그런 게 있을 수 있을까

 

집 안을 둘러본다

헝클어진 이불, 무릎께가 닳은 추리닝,

윗목에 돌돌 말린 양말짝

이 모든 게 살아왔다는 증거처럼 구구절절하다

설거지는 구구절절에 대한 즐거운 설명이다

 

젓가락 한 짝과 수저 하나로 남은 생

붉은 고춧가루 하나가 아프게 찍혀 있다

설명보다는 실명에 가까운 고적한 설거지

 

눈이 어두워서가 아니라

전깃불을 끄고 나가야 하는데

설거지 하다가 나는 모른다

전등을 끌 손가락이 어디에 있는지

그게 내 손안에 있기는 있는지

 

그릇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설거지하는 나를 개관한다

젖은 손으로 이마를 짚어본다

차갑다는 느낌이 내 삶의 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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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하지 않는 주말. 밀린 집안일을 하고 일주일간 먹을 반찬을 준비한다.

재료를 손질하고, 음식을 하고, 끼니를 해결하고, 설거지를 하고, 다시 재료를 손질하고, 음식을 하고...

 

창문이 덜컹대는 건 바람이 분다는 말이다. 아주 많이 분다는 말이다.

창문이 톡톡 튀는 건 비가 온다는 말이다. 젖는 줄도 모른 채 흠뻑 젖는 그런 비가 온다는 말이다.

창문이 밝은 건 해가 강하다는 말이다. 잔뜩 찌푸린 채로 길을 걸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나는 집 안에 있는게 맞다.

 

내 삶의 도돌이표가 끝나지 않는 곳. 그 곳에 한번씩 도돌이표에 다녀온 흔적이 남았다.

낡아가는 행주와 수세미, 조금씩 휘어지는 조리기구, 빛을 잃어가다 차츰 찌그러지기 시작하는 냄비며 프라이팬,

이제는 이가 헐거워 조금만 스쳐도 뚜껑을 떨구고 속엣 것을 고스란히 내보이는 양념통까지..

구석구석 내가 매만진 흔적을 담고 있는 부엌은 나의 오케스트라이다.

 

아직까지는 아다지오를 더 자주 연주하고는 있으나, 미뉴엣을 연주할 날도 있긴 할게다.

왈츠도 좋고 탱고도 좋다. 탱고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나쁘지 않다.

내 걱정은...

아다지오에서 레퀴엠으로 넘어가는 건 아닐지에 대한 걱정..

말끔하게 씻어서 엎어 둔 밥공기와 대접, 접시들..그리고 언제나처럼 함께 누워 마르고 있는 숟가락과 젓가락..

 

늘..잼을 하듯 즉흥곡이 연주되고, 규율도 원칙도 없이 제멋대로인 것을 단 하나의 원칙으로 삼는..온전한 내 공간.

시린 손이 오히려 익숙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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