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안 한다

어떤 일도 안하고 '아니함'만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대충 하지 않고 끝까지 철저하게 안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기 일 외에

다른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모욕을 당해도

내쫓겨도

감옥에 가

끝내 죽음에 이르러도

그는 온순하고 예의 바른 자세로

안 한다. 절대

다른 사람이 시키는, 부탁하는, 일은

안 한다


                        ◆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런 부분이 있다

앞뒤 꽉 막혀 답답한 부분


                        ◆


그러나 혁명은 이런

처절한 거부에서 온다


                     ◆


사람을 얼마든지 질식사시킬 수 있는

검은 비닐봉지*에

때로는 봄의, 화사한 페츄니아 화분을 담기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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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4월에서 7월 아프리카에 있는 르완다공화국에서 다수족인 '후투'가 소수족인 '투치'에 대해 집단학살을 자행하면서 실제로 검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씌워 질식시켜 죽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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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읽다 만난 바틀비. 필경사 바틀비는 구멍이 숭숭 뚫린 엄마의 낡은 속곳을 보는 것 같은 이야기였다. 거기 있었기에 낡아 버린, 아무것도 한 것은 없음에도 모든 것을 하고 있던 낡은 속곳같은..비약일까.

" I would prefer not to."

심지어 들뢰즈는 바틀비에 대해 은밀한 비문법성이 파괴적인 힘을 낳는다고도 했다.


안하는 편을 택하겠다는 선택과 의지..소심해보이지만 '안 하는'것을 '하는' 의지의 표현은 완고하다.  유연성, 혹은 융통성이라는 덫에 발목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조심스러움이거나 자신의 의지대로 '안 하는'것을 열심히 '하며' 살아내겠다는 결연함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틀비는 정말 안했을까? 어쩌면 치열하게 하지 않았을까?


<모든 시스템은 무겁다. 시스템을 온전히 떠받치고 있는

바퀴는 무거워, 구르고 싶은거다 (중략)

이렇게라도 구르지 않으면 생업의 시스템을 견딜 수 없어요(중략)

제몸을 맹렬히 굴리지 않고서는 그나마 견딜 수 없는거다(중략)

시스템은 도깨비 빤쓰보다 찔기고도 튼튼하다,끄덕없다.

무겁다. 세상의 모든 바퀴는 구르고 싶은거다.- 세상의 모든 바퀴 /중에서>


간절히 구르고 싶지만, 이렇게 굴러야 생업의 시스템을 견딜 수 있지만 이는 구르고 싶지 않음의 절박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머리가 깨지고 사랑이 터지고 사람이 죽어도 죽은게 아닌 시스템을 견디는 건 치욕적이다. 그래서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말하고 싶은거다.

그렇게 말 할 수 있는 숨통이 시스템 사이에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없는 시스템이 있다.

없다는 건, 없어야 하는 존재가 있어야 한다는..안 하려면 해야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인정해야만 한다.

있다는 건 없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해야 한다는 건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이 가능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바틀비의 비문법성은 낱말과 사물, 행위들, 언어행위와 낱말들을 어긋나게 하며 그것은 언어를 모든 지시로부터 떼어놓는다고..들뢰즈가 말했을거다.


이것이 비단 낱말과 사물, 행위, 지시에 대한 구분뿐은 아닐거다. 그것은 혁명일지도 몰랐다. 당연하게 연결되고 당연하게 구속되고 당연하게 종속되는 것들로부터의 해방선언.

선언은 간단했다. '하지 않는 것을 하겠다'


노점 할머니의 채반에 수북하게 담긴 향 좋은 쑥을 담아주던 검은 비닐봉지가 학살의 도구가 되어지기도 하고, 학살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비닐봉지에서 쑥쑥 자라날 고추모종을 꺼내기도 한다. 어떻게? 라는 물음과 어쩌면이라는 가능성을 담고 끊임없이 뭔가 '하는', '해야만 하는' 일상, 그래야 한다고 믿게 하는 틀 속에서 살아남는 법은 깨고 나오는 일 밖에 없지 않을까?


소금 울음.

김진숙의 소금꽃을 떠올린다. 아버지의 목덜미에 하얗게 돋아나던 소금꽃. 행복을 위해 희생하며 술 마신 어느 저녁 잠꼬대처럼 웅얼대던 아버지의 노래가 소금 울음이었다는 낮은 시는 고춧가루 하나도 없이 맵짰다.

태생이 바닷물이었던, 너른 염전에서 하염없이 말려지고 모아져 창고에 수북히 쌓였다가 어느 한 집도 빼놓지 않고 부엌 양념통에 들어찬 소금.

바다로 모여진 삶의 찌꺼기들이 다시 되돌아 와 삶에 간을 맞추는 이 순환은 절묘하다. 이 짠 맛의 성분을 분석해보면 오래전 바다에 던져버린 내 사연의 일정부분이 포착될것도 같다.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진 살갑지 않은 아비의 말처럼, 철없는 아들녀석의 말처럼, 생각없는 남자의 말처럼 있는대로 쓰여진 시들.

아무리 포장을 달리해도 소금일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아무리 투박해도 시일 수 밖에 없구나 싶어진다.


바틀비는 정말 아무것도 안 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의심은 깊어진다..'했네..했어..'라고 자꾸 중얼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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