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녁 발걸음으로 화장실 출입허당 오고생이 죽어지는

게 말년 늦복이렌 허영게 하이고 게메 느네 아방은 이미 글

러부러신게 경해도 귀는 트연 뭐센 고르믄 고개로 끄덕허

고 물 도렌도 허고 그것만도 어디라 더 아프지만 말앙 자는

듯이 죽어지믄 그것도 복이주 하루라도 나보다 먼저 죽어

주는 것만도 큰 복이고 말고

  게나저나 나 죽을 때랑 나냥으로 화장실 출입허당 톡, 허

게 죽어져사 헐건디 경해서 느네덜이 덜 고생헐 건디, 게메

경 해지카.


< 제 발걸음으로 화장실 출입하다 조용하게 죽어지는 게

말년 늦복이라 하던데 아이고 글쎄다 네 아버지는 이미 틀

린 거 같아 그래도 귀는 트여서 뭐라 말하면 고개도 끄덕하

고 물 달라고도 하고 그것만도 어디냐 더 아프지만 말고 자

는 듯이 죽으면 그것도 복이지 하루라도 나보다 먼저 죽어

주는 것만도 큰 복이고 말고

  그러나저러나 나 죽을 땐 나대로 화장실 출입하다 가만

히 죽어야 할 텐데 그래야 너희들이 덜 고생할 텐데, 글쎄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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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이국의 언어처럼 들린다. 아니 어쩌면 이 세상에 없는 언어인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말은 늘 그렇게 들린다. 특별한 문법과 어투를 가진 어머니의 말은 세상의 분석으로 온전히 해석할 방도가 없다.

제주의 시인 김수열의 시에서는 사투리 중에서도 가장 고난도라고 하는 제주말이 모퉁이를 돌 때마다 만나지는 돌담처럼 쌓여있다.

잘 마무리 된 반듯한 시멘트 담장이 아닌 얼기설기 쌓은 듯해도 견고하고 바람이 통할 길까지 갖춘 제주의 돌담. 티끌 하나도 넘지 못하게 시멘트를 바른 담장과는 다르다.

김수열의 시를 읽으면 통증이 온다. 온전히 해석이 안되는 단어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파동과 쌓아두며 쏟았을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며 통증이 시작된다.

가슴 어디께..혹은 정수리 근처가 따끔따끔해진다. 그런 통증이 시작되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관절염에 휘어진 어미의 손가락처럼 못생기고 믿음직한 바람이 들어앉는다.

그 순간 극대화되는 안도감. 통증이 없었다면 밍숭맹숭했을 문법이 약효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어머니의 소망 뒤 쪽으로 이어지는 시에는 아버지의 투병과 아버지가 나온다. 어머니의 마지막 소망이 이유가 ..


아이들과 아내와 어머니와 아버지와 친구와..

모든 사람들이 시인의 곁에서 함께 시를 일군다. 제주의 바람이, 제주의 바다가, 제주의 사람이 시를 짓는다.

일구어 지은 시는 순박하고 정갈하다. 바닷가 모래 속에 주먹 하나 넣어 토닥거리며 만든 두꺼비집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 높이 선 타워팰리스보다 애틋한 이유와 닮았을것도 같다.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라고 다같이 부르는 노래와 마지막에 주먹을 뺄 때의 긴장. 딱 주먹만한 넓이로 지어지는 집. 만족은 딱 맞는 크기로 지어진다.

어쩌면 무덤을 닮은 두꺼비집. 딱 내 몸뚱이가 누울만큼의 땅만이 필요할 뿐인 무덤. 그 속에는 더 넣을 것도 더 뺄 것도 없다. 그것으로 족하다. 어머니가 그렇다. 더 넣을 것도 더 뺄것도 없이 만족한 존재..


시집의 끄트머리에 제주말을 다시 표준어로 적어둔 해석본(?)이 있다. 무슨 사연인줄은 읽어내겠지만 어머니의 음조는 읽히지 않는다. 그래도 무슨 뜻이었는지 알고 다시 읽으니 더 선명해지는 어머니의 말. 우리 엄마도 그랬지.


어려서 가장이 되었던 엄마는 영민해서 미8군 타이피스트를 했었단다. 그러다 제주공항에서 일을 했었고, 거기서 꽤 오래 머물렀다고 했다.

내게 화가 나면 엄마는 제주말로 야단을 치곤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건지, 하나도 못알아들을 말을 왜 하는건지..참 별일이다 싶었다. 머리가 굵어지고 어미가 되고나서 어느날엔가 엄마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그랬대? 제주말 하나도 모르는 애한테..'

'홧김에 말을 하다보면 엄마도 사람인데 도를 넘을수도 있고, 그게 너한테는 상처가 되고 나한테는 후회가 되고 그럴게 분명하잖아. 근데 그게 조절이 되니? 나는 알아듣고 지나쳤다 싶으면 혼자 반성하고, 너는 못알아들으니 엄마가 화가 났구나 잘못했네..까지만 알고 넘어가면 되는거니까.'

'세상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

'너도 애 키워보니 알잖니. 말이 씨가 된다고 좋은 말 해주고 싶어도 그게 맘대로 되니? 안하자니 홧병 나겠고, 하자니 못할짓이고..'


제주 말은 어미의 말인지도 모르겠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모르겠는..그런 말..

어미의 말은 세상의 언어가 아니다. 할미에게서 배우는 딸에게 저절로 가르쳐지는 신내림처럼 어찌할 수 없이 이어지는 내림일지도..

나는 아직 배우지 못한 어미의 말..새벽 정화수라도 떠 놓고 배우고 싶은 어미의 말..


우리 엄마도 늘 그런다.

'자다가 조용히 불러가시라고 매일 새벽마다 기도한다. 내 걱정은 말아라...'

그럴 때 나는 철딱서니 없이 대꾸하곤 한다.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그런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진짜 너무하네"

어미의 말은 끝끝내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세상의 언어가 아닌 탓이다.


시를 읽으며 내가 뱉은 한마디도.."엄마는 도대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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