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나비

김귀정 학생을 생각하며


나는 죽어

검은 관 속에

하얀 나비가 되어 누워 있다


통곡하는 어머니의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너의

날개를 적시고....


전경들이 너의 죽은 원인을

확실히 가르쳐주겠다고

물대포와 최루탄을 쏘며

영안실로 쳐들어왔을 때도


너는 말없이

피 묻은 날갯죽지를

보여줄 뿐이었다.


설움도 없이 무덤 사이를

나풀나풀

날아다닐 수 있는 날은

언제일 것인가


태극기와 영정을 든

너의 학우들의 노래를 들으며

백병원 영안실 앞 은행나무들도

입술을 깨물며 비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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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초판이 나온 시집. 2011년 2쇄가 만들어진 시집.

1991년 5월 25일 김귀정은 떠났다. 성균관대 4학년 김귀정.

많은 이들이 어처구니없이 떠나야했던 1991년..강경대도 그렇게 떠났었다.

어처구니 없는 죽음은 세월 속에 더욱 간교하고 강고해져 매 해 데려가는 사람이 늘더니 급기야 수백의 어린 아이들도 한꺼번에 데려갔다.

그리고 숨쉬는 것만으로도 재앙이 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추모가 시작되었고 많은 이들이 그를 그리워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지는 그의 그림자를 만들어가고 있다.

산다는 게 뭘까? 생물학적인 생명징후를 믿을만한건가?


시인은 의사다. '시립병원에서'라고 제목이 붙은 시 모음들에서 지난 달 떠나신 어머님이 자꾸 어른거렸다.

중환자실에서..대여섯개의 기계가 지속적으로 약물을 투입하고, 인공호흡기가 강제로 숨을 불어넣으며 신장투석기가 돌아가던 시간..

이 모든 처치가 진행되는 동안 깊은 잠에 빠져 어떤 반응도 하지 못하시는 어머님은 그 상황을 알고 계셨을까? 의식은 있으나 움직일 수 없었다면..중환자실에서 100일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 시간동안 어머님은 살아계셨던걸까..

'통곡의 댐'이라 이룸 붙은 시 모음 사이에서 김귀정의 이야기를 만났다. 열흘 뒤면 베어낼 옥수수를 시청직원들이 환경정화한다며 베어버리고 옥수숫단 위에서 농약을 먹고 죽어버린 농부의 이야기를 만났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수영미숙으로 인한 익사라던 이철규, 시위대에 눌린 압사라던 김귀정, 사격발사각도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을 뿐이라던 한국원..

변명이라기보다 비열하기 짝이없는 그래서 소중한 이들을 두번, 세번 죽이는 세월을 살아냈지만..우리는 아직도 죽어가고 있다. 더 많이 더 어이없게 더 치떨리게..


거룩한 추모의 대열이 이어지고, 통곡하는 이들의 붉은 눈매가 TV 화면에 가득하다.

어이없이 떠난 딸년의 사진을 끌어안고 흐느낄 어미는 누가 가서 위로해주나.

부채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빼곡한 비극의 시간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을 울고, 내일을 버틴 사람들은 25일을 기억하지도 알아채지도 못할게다.

하긴, 이렇게 떠난 사람들을 일일이 기억하며 달력에 동그라미를 친다면..우리가 눈물을 멈추어도 좋을 날이 과연 있을까 싶기도 하다.


불 붙은 가시덩굴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동안 제 몸을 던져 불을 끄고 동지의 손을 잡고 가시덩굴을 베어내며 '이쪽입니다' 외쳤던 사람들.

온몸으로 굴러 꺼 놓은 불 길을 조금씩 걸어나온 사람들..이젠 목소리를 내도 좋고, 이젠 남은 가시덩굴을 걷고 불구덩을 메워야하는데..오히려 제가 걸어온 길을 메운다.

이쪽으로 더 넘어오면 이 자유를 나눠야하지 않을까?

바보같은 욕심이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자유는 여럿이 틀어쥘수록 더 커진다는 걸 모르는 탓이다.


5월 23일..

추모의 그림자가 너무 짙고 길어서 문득 가리워질 이름 하나를 떠올린다.

1991년 5월 25일 퇴계로.

쏟아지는 최루탄과 백골단의 토끼몰이의 현장에서 '학생이 죽었어요'라고 외친 목소리를 떠올린다.

잠시 멈추었던 시간. 그 사이 김귀정은..나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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