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엔 멀쩡한 내 왼쪽 눈은

시력이 형편없다 있으나마나 한

왼쪽은 아예 맞보기 알을 넣고

오른쪽 시력에만 맞추어 안경을 끼고 산다

시력도 형편없는게 말썽은 많다

왼쪽 눈에 자주 핏발이 서고 따끔거린다

눈병도 오른쪽보다 꼭 먼저 옮는다

오른쪽에 맞추어 따라다니느라 깜냥에

힘이 부쳐서 그런다고 한다

차라리 없으면 좋겠다고 투덜거렸더니

안경 너머로 건너다보며  간호사는

그나마 그 자리에 있는 게 얼마나 고맙냐고

외눈보다는 훨씬 낫다고 나를 타이른다

사실 나는 이제껏 외눈으로 살지 않았나

핏발 선 눈을 안대로 가리고 거리에 나선다

남은 눈알에 헛힘이 쏠리고

발이 헛디뎌지고 손잡이가 헛짚인다

시력이 형편없어도 무슨 구실은 했던지

외눈으로 세상을 가늠하기가 만만찮다

핏발 선 눈을 끝내 가리고

헛디디며 헛짚으며 갈 데까지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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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에서 나온 첫 시집이다. 주류(?) 출판사와 서울 중심의 한국문단에 문학의 다양성과 지역 출판의 지속성을 기치로 문인 20명이 십시일반 모아 만든 출판사다.

전주를 근거지로 하는..

태몽이 좋았고 아낌없는 사랑을 받으며 자란 새끼도 다 자라선 망나니가 되어버리기 일쑤지만..잘 자라라..기원을 보탠다. 어차피 아이는 동네가 키운다고 하지 않던가.


시들이 재밌다. 응답하라 1950이라 제목이 붙은 1부의 시를 읽으며 한참을 웃었다. 그려진 상황이 절묘해서이기도 하지만 순박함과 치기가 교차하던 시절을 기억해낸 까닭이다. 그런 때가 있었다. 2부의 맹장은 어디쯤인가로 넘어와 '이게 나라냐'를 읽으며 더욱 간교해진 샤일록이 잘 벼린 칼을 가져와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살을 도려낸 느낌이었다. 도려내는 순간까지 피 한방울 나지 않을만큼 예리한..내 살점을 들고 저만치 떠난 후에야 울컥울컥 쏟아져내리는 피를 확인하는 것 같은 참담함이 거기 있었다. 순박함과 치기의 시간을 남겨두고 간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두 눈으로 보아야 수평이 맞고 거리가 맞고 사물의 형상이 제대로 투사되는거지만 어쩌면 시간은 하나의 눈만을 선택하라고 집요하게 강요하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찌그러진게 정상이야. 사실은 더 멀리 있지만 가까이 있다고 믿어줬으면 해. 기울어 보이지만 착시야 모두가 공평하거든 조금 더 노력해 봐..라는 속임수가 통하려면 하나의 눈만이 선택되어야 한다. 수없이 헛디디며 헛짚어대며 제풀에 넘어지고 뒹굴어야 한다. 제 발 앞에 있을 장애물에 집중하게 해야한다. 저 멀리 서 있는 저격수를 찾지 못하게, 오직 발밑만을 주시하게..

매체들은 오른쪽을 선택할지 왼쪽을 선택할지 결정하라고 밤낮없이 주문한다. 채널을 돌리다보면 선택받지 못한 한쪽 눈의 상실감을 잊게 할 것들이 튀어나오곤 한다.

자꾸 헛짚으시죠? 눈이 문제가 아니라 걸음걸이에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요. 최저가. 더 이상 이런 구성은 없습니다. 구두를 사세요.

자꾸 헛디디시죠? 눈이 문제가 아니라 기운이 없는건지도 몰라요. 식약청 FDA가 인증한 건강보조제. 서두르세요.

선택된 한쪽 눈에는 자꾸만 헛힘이 실리는데, 아무리 구두를 바꾸고 보조제를 먹어대도 여전히 헛짚으며 헛딛는데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기만하다.

차라리 없어졌으면 좋았을 아픈 눈의 효용을 깨닫는다. 잘 보아야 한다. 뿌옇게 보일지라도 그렇게라도 보아주는 눈이 있어야, 두 눈이 있어야 세상의 기울기를 알아챌 수 있다. 어차피 헛디디며 헛짚으며 사는 건, 눈의 문제가 아니라 헛다리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잘 보아도 엉뚱한 곳으로 길을 잡고야마는 헛다리..그래도 미숙한대로 서툰대로 처음의 모습으로 살아내야 한다.


노안이 오셨네요.

안구건조증이 심하시네요.

최근들어 자주 드나들이를 하는 안과에선 조금 더 잘 보게 처방을 내려주지만 시력은 자꾸 나빠지고 눈은 더 빨리 핏발이 선다.

그래도 아직 보이긴 한다는데 안도한다.

얼마나 더 헛다리를 짚으며 살아가게 될 지 모르겠지만..보아야 할 것들을 보아내고 눈 감거나 회피하지 않도록 훈련해야겠다.

내 눈이 더는 앞을 못보게 되더라도 이 눈이 안보이는 눈이라는 걸 탐욕스런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지금처럼 여전히 헛디디며 헛짚으며 가끔 절룩이며 살아야겠다.


수더분하고 깊은 시들이 거친 질감의 종이 위에 빼곡하다.

마지막 시 '잉어 한마리'의 마지막 연.


<뭘 물으려다 그만두는 날더러

 너는 지금 거슬러가는 중이냐

 휩쓸리는 중이냐

 주인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되묻고 싶은 눈치다>


아름다운 잉어가 어떻게 잡혔는지 주인에게 물을까 말까 고민하는 내용이다.

거슬러가는 중일까 휩쓸리는 중일까..꽃이 지천인 길을 헛디디며 헛짚으며 걸어보아야겠다. 분명 한쪽만 깊어진 발자국이 찍히겠지만 휩쓸려 가는 것은 아니라고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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