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되새김질 할 수 없는 일
너희는 울며 기며 먹을거리로 내 뒤를 씹지만
나는 내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서서 잠든다고 비웃지만
등기대 지새는 버릇
소젖에 빠진 파리인 양 재갈을 물었지만
종마만 남기고 거세를 당했지만
너희처럼 핏줄끼리 몸을 섞지는 않는다
우물 곁 사람이 퍼주는 물을 마셔야만 사는 집짐승
그래도 너희 양 낙타와 같이
사람 올 때까지 물냄새만 맡다 쓰러질 수야
염소 뿔 떨어지는 추위
갈기와 눈썹을 내려 접고
바람 가는 남쪽으로 서 있다만
이 바람 자면 달려갈
저 들 저 지옥이
내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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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단어가 갖는 미묘한 구성에 눈이 갔다. 수십년을 쓰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썼던 단어가 낯설어 지는 건 아마도
그 단어가 갖는 의미와 나의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ㄹ 과 ㅁ 의 배치.
어째서 처음부터 ㅁ 을 앞에 쓰지 못했을까?
살다"라는 동사에서 명사형으로 어쩌구 하는 장황한 설명을 요하는 물음이 아니다.
살다"가 처음부터 ㄹ 을 받침으로 갖고 있지 않는 글이었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사막에 "삶"이라는 단어를 분해하여 뿌려 놓는다면..
ㅅ, ㅏ, ㄹ, ㅁ..
나는 어쩌면 "말"과 "ㅅ"(사람인이라고 우기며), 이렇게 두 글자를 만들지도 모르겠다
같이 있어야 아름다운 몽골의 그니들 처럼말이다.
초원과 사막의 경계에 아슬한 초록이 눈부신 이유다.
삶이 죽음과 멀지 않음에 반가워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