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성(小年性)
가는 팔목은 흰 이마와 잘 맞아 떨어졌다. 엎드려 있는
나를 울고 있다고 여기던 사람들. 사실 몸을 숙이는 건 쉬
운 일이었다. 평면을 벗어나는 몸의 마지막 표정. 그래프는
날뛰고, 달력은 단호하며 날씨는 마음과 나란해지기 쉬운
기울기였다. 가내수공업이 끝날 줄 모르던 밤. 졸면서 만든
규격이 나를 엉성하게 만들었다. 근사한 걸작이 곧 태어날
거라고 장담하면서, 나는 맨 처음으로 수치심을 길렀다. 잠
든 나를 깨워 계집애 같은 사내아이를 어쩐지 실수라고 여
기면 나는 나의 목격자가 되었다. 증언이 필요한 꿈결과 이
름에 써 버린 행운과 주입된 슬픔으로 살아갈 온 마음은
시험판이었다. 치명적인 오류지만 결코 멈춰 버리진 않는
그 방 안에 나는 설계된 적 없는 자세로 처음 나를 감지한
다. 엎드려 있으나 잠이 비껴가고 슬픔으로 젖지 않는 주
소로 나는 배달되었다. 나는 멸종 위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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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목소리를 듣는다. '소년'과 '소녀'의 정의가 단지 어린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아니라면 소년은 아마 이런 규정들을 갖지 않을까? 싶은 시집이다.
여리고 여린 희망이 간절하게 배어든 단어들..일어서자고 안간힘을 쓰지만 어린 동생, 소년인 동생은 아직도 평면의 결계를 벗어내지 못했다.
시집을 읽으며 여린 풀 한 포기를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좋니..라고 자꾸만 되뇌인다. 마치 소년인 동생을 보듯..
평행과 도형과 기울기와 집합..수학 용어들이 가끔씩 놓여진 시집은 어쩌면 고차방정식인지도 몰랐다. ~이고 ~일 때, 방정식 ~~이 해를 구하여라.
난해하고 입체적인 문제 앞에 머릿속에 넣어둔 개념들을 차곡차곡 되짚어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소년.
개념은 이미 왜곡되어지고 활용이라는 이름으로 훼손중인걸 모르는 것 같다. 아니, 몰라야 한다고 순하게 다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걸 알아채는 순간
소년성은 희미해질 것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이런 계산이 가능한 소년은 소년인가? 묻게 된다.
시집의 제목에서 보여지는 충돌. 어떤과 모든은 상충개념이다. 이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란히 두고 해맑게 웃는 것. 거기 소년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비가 내리며 바람이 몹시 분다. 거절 당한 여인처럼 흐느끼고 있지만 사실은 미친년처럼 발광중인 '어느 누구의 모든 실연' 같은 날이다.
향도 짙고 맛도 짙은 차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건네진 맑기만 한 맹물, 아무 맛이 없는 맛이라는 묘한 경험을 건네는 시들이다.
요즘의 시들은 친절하다. 구구절절 사용된 은유를 친절하게 설명하며 쓰여진다. 산문인가?
요즘의 시들은 불친절하다. 세상 어려운 시어들이 완전 무장하고 실전을 하듯 쓰여진다. 민간인은 이해하지 못하는 전술과 전략.
요즘의 시들은 모호하다. 그래서 서윤후의 스무살은 야무지다. 당돌한 소년성이다.
<스무살>
세상에서 가장 빨리 끝나는 폭죽을 샀다.
작품해설을 한 이는 서윤후의 소년성에 주목한 듯 하다. 산전수전 다 겪은 아줌마의 내심을 드러내 보자면..어서 듬직한 사내가 되었으면 싶다.
소년이 살아내기에 세상은 아직 위험하다. 팔뚝에 힘줄이 펄떡이는 사내가 되어 친절하지 않은 시로 보게 되면 좋겠다.
비가 와서,
비 오던 어떤 날 순진무구한 얼굴로 "누나, 비도 오는데 떡볶이 먹으러 갈래요?" 하던 되바라졌던 동생 하나가 떠올라 서윤후를 읽었다.
뒷심이 있는 사내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혼자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