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조동범>

 

당신은 갑자기 지금을 기록하고 싶어진다. 지금은 저물녘

의 황혼이고 해변이며, 역전에는 아름다운 소녀들의 처녀들

이 서성인다. 거리는 비현실적이고 소녀들의 젖가슴은 충분

히 부풀어 오른다.  그래, 당신은 지금을 오래도록 기록하고

싶어진다. 지금은 탐미의 순간이고, 그렇게 지금은


  시작된다. 당신은 역전의 광장에서,  바람에 흩어지는 월

요일 오후의 찬송을 바라보고 있다.  성도들의 음역이 한 옥

타브 올라갈 때마다 더러운 한 떼의 비둘기는 날아오른다.

오늘 밤은 아무것도 예비할 수 없고, 소녀들의 가랑이진 저

녁으로부터 불온한 소문은 비롯된다. 그리하여, 당신은 갑

자기 지금을 기록하고 싶어진다


  아름다운 소녀들의 처녀들이 눈을 감았다 뜰 때, 오래전

에 잊힌 폭설이 침묵을 거듭할 때, 소녀들이 서성이는 아름

다운 저녁은 군더더기 없이 저물기 시작한다. 그것은 지금

이고, 매혹적인 담배 연기와 함께 오래전에 실종된 아이들

의 전단지만이 역전 광장을 홀로 서성인다. 지금은 저물녘

의 황혼이고 해변이며, 역전에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소

녀들의 처녀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지금이고, 누군가는 열차를 향해 투신을 거듭한

다. 편의점을 나온 회사원이 소녀들을 지나칠 때, 교복 치마

아래로 드러난 맨살은 눈부시게 오늘 밤을 탐문하다.  당신

은 지금을 기록하고 싶어진다. 그것은 소녀인가 해변인가

아니면 황혼의 해안선인가. 지금 막 승강장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열차는 멈추지 못한다.


  승무원의 눈동자는 무엇을 맞닥뜨리며 경악을 거듭하는

가. 황혼이며 해변이며, 아름다운 소녀들의 젖가슴은 이윽

고 오늘 밤에 당도하는가. 당신은 갑자기 지금을 기록하고

싶어진다. 지금은 저묵녘의 황혼이고 해변이며, 그리하여

소녀들은 집으로 영원히 돌아가지 못한다.


(시집. 금욕적인 사창가. 중에서)


 

어쩌면 이 시는 이 시집을 들여다 보는 열쇠일지도 모른다. 해질녘, 저물녘의 시간들과 떠나지도 돌아오지도 못하는, 아니 떠나지도 머물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참담한 서성거림이 빼곡히 들어찬 시집은 그래서 금욕적이다. 연작시 대륙횡단 특급 다섯편과 행성횡단 특급 다섯편을 낳게 되는 사정의 순간일지도 몰랐다.

오전 11시를 거쳐 오후 3시를 형식적으로 건너 시인이 머무는 시간은 늦은 낮인 이른 저녁무렵이다. 경계의 시간 경계의 공간에서 오히려 적나라해지는 욕망과 상실을 보인다. 이렇게 쓰니 뭔가 시를 읽은 티를 내는 것만 같다. 하지만 아니다. 단지 오늘이 월요일이고 "지금을 기록하고 싶어진"것 뿐이다.

사창가라는 말에 떠올렸던 588이며 미아리 텍사스, 화양리, 동두천을 떠올렸다. 지금은 전설처럼 남은 그곳..갈보들과 양공주들이 머물던 자리는 늘 비릿했다.

정욕의 냄새라고 믿었던 그것이 사실은 죽은 자의 몸에서 흐르는 체액의 냄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살았지만, 살아있음을 확인 받지 못한 사람들..그 가운데 혹여 살아있다고 아우성치는 존재가 있다 할지라도 환영 취급을 받아야했던 사람들의 인정되지 않은 냄새였을지도 모른다.

월요일이다.

누군가에게는 시작인 그 날이 누군가에게는 일주일간 벌렸던 몸을 닫고 탈출을 꿈꾸는 날일 수도 있었을거다.

떠나기 위해 수없이 서성이던 역전 광장은 언제나 실종된 어린 시간들로 넘쳐날 뿐 아무도 개찰구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철로에 투신하지 않으면 건너지 못할 역전 저편의 세상. 떠돌다 들어왔건, 태생부터 사창가의 한구석의 지표가 되었든 어차피 우리는 무수히 몸을 파는 삶을 살아낸다.

내 몸은 이익을 창출하는 생산수단이며 착취하기 좋은 밭이다.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않은 몸은 비릿하게 역전에 눕는다. 열차가 파도처럼 빠져나가는 해변에 엎드린 사체다. 지금은 세일기간은 아니지만 언제나 나는 세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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