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각의 여왕 - 제2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이유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1. 유품정리


살아있는 동안 남기는 찌꺼기 같은 흔적은 얼마나 될까?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해도 분명히 남겨지는 육체의 흔적과 삶의 흔적들..비물질적인 것 뿐 아니라 분명한 형상을 갖는 물질로 남는 것들을 정리한다. 살았던 죽은 이의 흔적은 어떻게든 남는다. 기억은 신화화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부패하기 시작하고 분절되며 분해된다. 아무도 손대지 않으려는 '현장'을 정리하는 것을 업으로 갖는다. 죽은 이의 흔적을 정리하는 이..책 소개에서 가장 분명하게 눈에 들어 온 부분이었다. 김중혁의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이 문득 떠올랐다. 디지털공간 혹은 텍스트화 되어있는 기록을 지우는 것과 물질적 흔적을 지우는 것..지운다는 것에서 비슷한 질감을 느낀것도 같다.

사람이 죽으면 영안실로 가고 장례식을 치르는 것으로 단순하게 도식화시켜 인지하고 있던 것의 틈새를 파고 든다. 영안실로 가기 전, 체액과 혈흔으로 얼룩진 현장의 모습. 살아있지 않은 사람과 살아있는 사람이 공존하는 유일한 순간. 죽는다는 건 어떤 도식이 아니라 현실이겠구나. 적당히 혹은 과하게 지저분하고 추하며 비위상하는 현장일 수 있겠구나 싶어졌다.


# 2. 해미


해미는 지창씨의 딸이다. 고물상집 딸.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이어지는 떠나지 못한 채 자리를 지키고 먹고사는 부녀의 공간.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이미 쓰임이 다하거나 기억에서 쫓겨난 물건들이 모이는 곳이다. 내가 아는 어떤 남자의 사랑하는 여자의 이름이 해미였다. 내가 그 남자를 알게 되었을 때 그는 40을 바라보는 사람이었고 해미는 여고생이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지독했고 남자는 이혼을 했다. 해미를 위해. 그래서였는지 내게 해미는 지독한 사랑을 하는 어린 여자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단지 사람의 이름뿐인데도 말이다. 마치 일회용밴드는 대일밴드라하고 굴삭기를 포크레인이라 하듯 해미는 지독한 이름으로 기억에 남았다.

살고 있지만 삶으로부터 자꾸 밀려나는 해미. 어수룩한 지창씨와 해미가 마주하는 더 어수룩해서 밀려나는 사람들. 그들에게 다가갈 수 밖에 없는, 그것을 업으로 삼을 수 밖에 없는 해미는 간절히 삶을 살아내고 싶었는지도 모를일이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걸, 아무리 아름답게 살아도 추한 몰골로 남을 수 밖에 없다는 비밀을 알아채버렸다해도 간절히 살아내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 3. 지창씨


허파에 바람이 들어가는 걸 조심해야했지만 어쩔 수 없이 들어찬 바람. 바람이 그득해지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죽어버릴건데 그래도 한 번 들어온 바람은 다시 빠져나가지 않을테니 그득히 담은 채 살아간다. 그이가 마지막 눈을 감고 나서야 그것이 바람이 아니라 물이었음이 밝혀지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일까? 허파에 뭔가가 들어왔다는 것, 숨통에 숨이 아닌 이물질이 들어앉았다는 것이 문제인것이다. 살아있음의 가장 근본이 되는 숨. 그것을 방해받는다는 것은 위협이다. 삶은 늘 그렇게 친절한 표정으로 위협을 가하곤 한다. 그런 위협이 가해지는 공간이 고물상이라는 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거기 모인 모든 것들이 생존을 위협받다 생을 마감하고 모여든 것들이 아닌가.

버려진 것들에서 새로움을 찾으려는 시도. 이트륨을 분리,합성하는 기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고물상에 버려진 것들이 그 뼈대가 되는..

이미 버려진 것들 속에서 소용가치가 있는 것을 재합성 해내는 기계를 만드는데 전념하는 지창씨. 애절하다. 버려진다는 것. 버림받았다는 것.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품은 어떤 것으로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헤겔의 양질전환같은 것이었을까? 비약이다.


# 4. 도시 그리고 이야기.


도시는 점점 더 정글화되어간다. 약육강식은 기본 원리가 되었고 살아남음의 개념이 전염병처럼 창궐해있다. 살아남음의 개념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 맞추어 적절히 구분되어있고 더 올라오지 못하는 한계선이 그어져있다. 침몰하는 순간에도 더는 올라오면 안되는 선. 그 선을 넘어선 안된다는 암묵이 자리하고 있다. 침몰하지 않아도 가장 높은 곳에서 안전한 이들과 더는 올라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이들. 그것을 정의라하고 그것을 분배라하고 그것을 생활이라 한다.

도시에서 밀려난 사람들, 그들이 처음부터 밀려난 것은 아니었다. 때론 시작이었고 중심이었으나 소용이 끝난 폐기물이 되는 건 그들의 의지는 아니었다. 도시 속에 정글처럼, 섬처럼, 모든 죽은 것들의 묘지처럼 덩그러니 남겨진 고물상. 그곳을 드나드는 이들도 그곳에서 사는 이들도 위로의 꽃다발이나 때때로 삶이 내어준다는 아름다운 선물따위는 더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삶. 온 몸으로 부딪는, 결과를 알면서도 부서질때까지 부딪고 받아내는 삶들이 치명적인 균열과 상처를 갖고 살아내고 있다. 아직은 더 살아도 좋다고, 아직은 더 살만하다고, 아직은 묻지 말라고...

조금은 나른했다.

이렇게 치열한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나른해도 될까? 의심했다.

결국 인정하기로 한다. 방정식을 풀기 위해선 문장의 길이나 복선에 휘말리지 말고 의도를 보아야 한다. 내가 구해야할 것과 조건, 조건을 분해해서 얻게 되는 단서, 이 모든것을 준비해놓아야 한다. 문제가 길면 길수록, 단서는 많아진다. 대부분 문장이 길어지면 포기하거나 의도를 놓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구해야할지 놓치 않고 끌고 가는 것. 조건을 분해해서 단서를 찾아내는 것. 구해놓은 식과 풀이가 맞는지 점검하고 풀어낸 답을 믿어야 풀린다.

작가는 수학과를 나왔다고 했다. 그 후 문예창작을 다시 공부했다고..삶과 죽음의 일반적인 규칙들을 변형시켜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해법을 내놓은 것은 분명하다. 미지수에 집중하기보다 문제와 과정 속에서 미지수의 의미와 그것을 풀도록 도와주는 다른 수식기호와 체계에 집중했다. 의도치 않았겠지만..

소각의 여왕.

소각하여 흔적을 없애는 존재가 아니라 소각하며 살았던 이를 끄집어내는 제사장은 아니었을까

산다는 것이 얼마나 깔끔하지 못한 일인지 묻는것도 같았다.


#5. 책 속에서


"왜 태어났는지 왜 사는지 왜 죽는지 아니?"

열심히 책을 읽는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

'아니 몰라'

'모르는게 당연해. 태어나고 죽는 데는 이유가 없거든'

해미는 냉소적 비웃음이라고 생각했다.자기가 세상에 보내는 냉소와 조롱과 야유. 그것이 실은 위로의 말이라는 걸 해미는 그 순간 깨달았다. 죽고 사는 데 아무런 이유가 없다....해미는 손에서 힘을 빼고 물러섰다. 괜찮아. 이유가 없다잖아. (p62)



"고통과 죽음은 다르다. 죽을만큼 병들어서, 죽을만큼 피를 흘려서 인간이 죽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다른 곳에서 온다. 훨씬 다른 차원의 일이다. (....)


죽음은 당연하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안 된다. 여러명의 의지가 하나의 죽음을 이끌어낸다. 누군가의 의지와 누군가의 동의와 누군가의 암묵. (p63)


그런 사람들이 있다. 한쪽밖에는 보이지가 않아서 한쪽으로밖에 갈 수 없는 사람들. 죽음이 아니면 달리 편안해지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엄마가 결국 자신이 꿈꾸던 세상으로 갔을 때 해미는 기뻤다. 진심으로 그녀를 생각하면 기뻐할 일있다. 그런데 눈물이 났다. 지창씨는 해미에게 소리내 울지 못하게 했다.

 "죽어서도 청각은 열려 있대. " (p206)


#.

결국 살아낼 것이고 분해되기 위해 조금씩 단순하고 단촐해질 것이다. 삶에 고정된 시선이 삶과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으로 조금씩 경도되는 과정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끝끝내 청각은 살아있어서 화르륵화르륵 불타는 소리만 남고 아무도 울지않는 현장을 듣게 되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