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말 그대로 역병이 창궐하여 나라꼴이 난리도 아니었다. 경제를 살리자고, 중동으로 떠나라는 신탁을 전한 여인은 머쓱했으리라. 그래서 손만 잘 씻으면 되는 중동감기라고 말했다.

두려움에 떨며 이웃지간에도 경계와 염려가 뒤섞인 묘한 감정으로 지내야했다. 누군가 기침만해도 눈꼬리가 저절로 올라갔으니까.

겨우 수습이 되고 그 와중에도 자신에게 이익이 될만한 것들만 챙기는 꼼꼼함과 언제나 들키고 마는 언론플레이를 시작했다.

 

여전히 세월호는 깜깜하게 묻지도 따지지도 못했고 온 힘을 다해 그들의 입을 막으려했다. 주변인들을 압박했고, 거짓정보를 흘렸고, 추종세력들을 동원해 조롱하고 멸시했다.

 

역사를 국정화한다고 했다. 패배주의적 역사관이 문제라고, 역사학자 90퍼센트가 좌파이며 김일성 주체사상을 배운다고 호도하며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게 난리를 쳤다. 사람들이 반대했다. 역사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시민들이 나섰고, 역사학자들이 나섰고, 선생님들이 나섰고 급기야 아이들까지 나섰다. 그들은 꼭꼭 숨어서 국정교과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쉬운 해고가 가능한 노동법 개혁도 시작되었다. 농민들의 쌀값이 바닥을 쳤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대로는 안된다고 나서자 차벽을 쌓았고, 물대포를 쏘았다. 사방에서 터져나오는 다양한 요구와 분노들은 함성이었고 아우성이었다.

말하지 말라. 나서지 말라. 혼난다. 아마 이 세가지의 행동지침이 저들에게 있었나보다. 한 노인이 쓰러졌다. 아무도 사과하지도 않았고 그를 구조하던 이가 넘어지면서 무릎으로 친것 같다는 말도 안되는 말을 국회의원이란 자가 했다.

아직도 노인은 깨어나지 않았다.

 

일이 많았고 사건이 많았다. 많은 사건만큼 그 녀의 외국행도 많았다.

많은 이들이 결정적일때 자살을 했고, 내쳐졌으며, 마녀사냥을 당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외국에서 국위선양(?) 중이었다. 외교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분주히 움직였다.

지랄도 하면 는다고 그토록 열심히 타국의 대표들과 만나고 협상을 해봤으니 그 바닥의 생리를 알거라 생각했다.

미련한 짐작이었다.

 

2015년을 겨우 사흘 앞두고 한일협상이 타결되었다.

위안부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설레발을 친다. 자화자찬은 이어지고, 큰 성과를 내었다고 자축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피해자도 모르게 진행된 협상이라니..돈 몇푼에 팔아버린 자존심이라니.

겨우 96억에 해결될만한 사건이었나? 어제 내내 뉴스 상위권에 있던 어떤 기업인의 개인 재산이 조단위를 넘어간다고 하던데..수십년을 악몽같은 삶을 살아낸 할머니들께 그것도 사과의 표시도 아닌 꼴랑 96억으로 퉁치자고 받아온 협정을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가.

 

어이가 없었다.아니 아직도 어이는 없다.

어쩌면 좋지? 이런 상처들을 어떻게 해야할까? 육두문자를 연달아 쏟아내봐도 좀체로 분이 풀리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소리지르며 울어젖혀도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어떤 이들은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는 알렉시스 드 토크빌의 말을 빌어다 적당히 얼버무리며 이따위 정부를 갖게 된 것이 국민의 탓인듯 호도한다.

 

근대화와 민주화가 함께 이루어지지 못한, 먹고사니즘이 승리한 시대적배경에서 근대화에 방점을 찍었던 결과이다. 먹고 살만 해지자 저당잡혔던 민주주의가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먹고 살만했던 살림 살이는 동력을 상실하고 같이 죽어가고 있다.

어째서 변화가 없으며 변혁의 힘이 만들어지지 않는지..짐작은 되지만 그게 다가 아닐거라 애써 위로한다.

 

책을 하나 꺼내든다.

 

   그냥 읽어야겠다. 그 마지막의 모습이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어떤 느낌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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