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그 날은 문득 그 꿈을 꾼다.
문득 그 날은 어떤 그 꿈을 꾸기도 했다.
노란 유채꽃이 지천인 어느 섬.. 노란 유채꽃이 피기 전 여린 섬모처럼 꼬물거리던 그 뿌리가 먼저 빨아들였던 비릿한 피의 맛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
햇살보다 날카롭게 파고들던 총성과 비명을 낙인처럼 아직도 간직하고 있을까?
날이 찼다.
겨울 냄새가 잔뜩 배인 날이다. 하긴 동짓달이다. 동짓날도 머지 않았고..핏빛 팥죽을 쑤어먹는 그 날. 생각은 끝을 모르고 달리고 나는 가만히 책장을 더듬었다. 손끝에 닿은 책 하나. 한라산.
서사는 어떻게 직조되는지..역사는 어떻게 드러나는지..우리는 무엇을 보아야하는지..
학살의 현장은 진실이 드러나는 그 날까지 수습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심란했던 지난 밤의 꿈은 또 다시 반복되려는 학살을 감지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제 이익을 위해, 제 무리의 안녕을 위해 국민을 볼모로 잡고, 혹은 그 국민을 외면할 수 있는 사람들..벼랑 끝으로 자꾸만 밀어댄다. 그 곳에서 나라를 잃은 삼천궁녀처럼 후둑후둑 국민들이 떨어져 내린대도 그들은 자신의 손으로 민 것이 아니라며..잘 버티지 왜 떨어지냐고 의지가 부족하다고..혹은 어쩔 수 없었다고..
아직도 선홍빛 누명이 벗겨지지 않은 이야기를 폐병쟁이 노인네처럼 읽는다.
하나를 읽고 심호흡을 하고..가쁜 숨을 몰아쉬며 아직 남은 눈물을 훔치며 읽는다.
감상적이다.
분노를 일으켜 세워 다부지게 행동할 용기도 자질도 없는..그저 감상일 뿐이다.
내친김에 하나 더 더듬어 뽑아본다.
제주도 말로 풀어내려 작가는 고심했겠다.
시가 산문이 되고 그 사건의 조서가 된다.
4월이 되면 제주에 가자. 3월의 끄트머리에서 눈물을 닦고..설운 기억들이 켜켜이 쌓인 가난한 집 아이의 바지처럼 온통 기워지고 터지고 헤진 역사 속으로 걸어가자.
문설주에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의 사자가 넘어갔다. 모든 장자의 목숨을 앗아간 그 밤.
붉은 피를 바른 그 집들을 죽음이 넘어갔다.
우리의 문설주엔..얼마나 더 많은 피를 발라야 할까.
문득 한라산을 떠올렸다.
시린 겨울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