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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꽝 ㅣ 문학동네 시인선 75
김연숙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평점 :
중학교때 내 절친의 이름은 미녀였다. 부모가 얼마나 이뻐했으면 미녀라 이름지었을까 싶었다. 위로 네명의 언니가 있고 아래로 두살 터울 남동생이 있었다.
고입원서를 쓰는 날 친구의 원서를 넘겨다 본 나는 잠깐 움찔했다. 꼬리미자에 계집녀.내 시선을 알아챈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언니들 이름에 비하면 감사한 이름이야. 라고..장순.돌남.말남.끝남..
내 친구까지 다섯번의 꽝을 만난 부모의 여섯째 사랑은 유별났고 여자형제 중 막내였던 친구의 입성은 늘 초라했다. 그래도 그 아인 "미녀"였다. 눈부신 꽝이었던거다.
눈부신 꽝을 읽는다.
시를 읽으며 행간의 의미며 형식이며 사조..혹은 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전문가의 몫이고 그저 시에 의탁해 이입해 본다.
딸로 태어나 여자애로 자라 어미가 되고 할미가 된 시간들이 자박자박 걸어오는 복판을 읽는다.
<나의 가슴 바닥은 지상에서 가장 낮은 곳>이어서 <온갖 이야기 흘러들지만 출구는 없>다. 이야기는..삶의 더께는 짖눌려 잊혀지거나 잊고 싶지만 <아무도 내게 와서 자살할 순 없다네>.적잖은 시인의 나이를 헤아려보면 이런 여유,혹은 삶을 마주보는 너그러운 시선을 갖기까지 참 많은 의문과 반문이 일었을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 먼길 걸어 내게로 오게>라고 당차고 따숩게 초대한다.
그녀의 시..사해를 읽으며 내 가슴의 수위를 확인해 본다.
이런, 발목까지밖에 안되네? 이러니 맨날 넘치고 흘리고 지저분하지..이긍..꽝이네.
그나저나..내 친구 미녀는 어찌 살고 있을까?
<사해>
나의 가슴 바닥은
지상에서 가장 낮은 곳
온갖 이야기 흘러들지만 출구는 없어
기다려야 하네, 시간의 투명한 감옥이네
나의 가슴 깊숙이
잠입(潛入)할 순 없다네
밀어내고 밀어내는 내 손결한 표면장력 위에
가만히 등 기대어 누워보게나
둥둥 아기처럼 안아주겠네
아무도 내게 와서
자살할 순 없다네
메마른 태양볕에 졸이고 졸여
유황 짙은 한 사발 약이 되었네
어루만져 씻어주려네 지친 그대여
그대 몸 감싸주는 약이 되리니
모든 이야기들 땅속으로 스며들어
조용조용 흘러드는 가슴 바닥.
사막의 눈동자로 빛나고 있네
푸른 불꽃 어른거리는 고밀도의 보석 한 알
고요히 눈을 뜨고 기다리네
그대, 먼길 걸어 내게로 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