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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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책..걸어 본다

 

'난다'의 걸어본다 시리즈 3.

썩 좋은 시리즈명을 가졌다. '걷다'도 아니고 '본다'도 아니고 '걸어 본다' 이 말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걷는 것 뿐 아니라 걷는 공간의 이야기와 시간을 끄집어 낸다는 의미일것이다.

늘 걷지만, 이야기가 되고 시선이 머물고 마음에 맺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음을 고백하게 만든다.

아주 소소한 것들이 주는 의미와 온몸으로 뿌려대는 이야기들을 귀담아 듣지 않고 눈여겨 보지 못하는 빡빡함에 대한 경고처럼 말이다.

산다는 건 어쩌면 이렇게 드러나있는 이야기들을 채집하는 것이 아닐까를 묻게 된다.

그래..사는게 아니라 '살아 본다'는 느낌으로..그렇게 지내도 나쁘지 않겠어.

용산의 이야기를 썼던 시리즈 첫편에서 나는 아버지와 어머지의 젊은 날들을 보았다. 경주편에서는 아직도 흐르고 있는 역사 속 사람들을 읽었다.

낯선 도시 뉴욕은 어떨까?

세상의 중심 뉴욕의 사적인 이야기는 어떤 빛깔일지 궁금해졌다. 사적일 수 있을까?

그 요동치는 거리에서 말이다.

언젠가 미국의 수도가 어디야? 라는 말에 아무 의심없이 '뉴욕'이라 했던 어이없는 일화가 생각났다. 뉴욕이란 그런 이미지였다.

세상의 심장부 같은...

 

걸어 본다. 걸어 보자.

박상미라는 사람이 만난 뉴욕을 걸어본다.

 

#2. 뉴욕..낯선.

뉴욕을 여행한 여행기는 꽤 나와있다.

뉴욕의 풍경과 풍물들, 그리고 거리와 경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낯선 이국의 이야기임을 충분히 말해주고 있다.

언젠간 가 보고 싶은 곳, 가게 되면 가는 곳, 뉴욕은 그런 곳이었다. 반드시 가보아야 할 곳이라기 보다는 어쩐지 겁이 나는 그런 곳. 평범하게 살아온 내 삶의 이력으로 내려봐도 좋을지에 대한 의문이 늘 드는 곳이었다. 그 곳에 도착하면 쭈뼛거리며 어색해할 것이 분명한 도시.

처음 서울 구경을 온 산골짝 아이의 휘둥그런 눈을 하고 입을 벌린 채 두리번 거리기 좋은 곳일 따름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 뉴욕은 가보지 않아도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조합해보는 그런 상상의 맛이 더 좋았다.

작가는 이런 생각을 접어도 좋다고 말하는 걸까?

소소한 일상들이 보여주는 풍경은 나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조용히 이야기한다. 거리의 풍경과 사람들과 거리가 주는 익숙한 정서들..

과연 뉴욕은 낯선 이방이 아니라 친근한 뚱보친구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단지 조금 큰것 뿐..그래서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감춘 그런 친구.

 

좁은 집으로 이사를 하며 모든 것들이 가까워지고 커져버렸다는 말에 슬며시 웃음이 지어졌다. 낯선 곳에서 오히려 친밀하게 그 속내까지 비쳐내는 내 것들의 모습이 얼마나 살가운가.

어릴 때, 엄마의 일이 잘못되어 좁디 좁은 집으로 이사를 하며 "우리 진짜 부자네. 살림이 이렇게나 많아."하던 생각이 났다.

버릴 수 없는 것들. 사실 남들이 보면 '저걸 왜 들고 다니지?'라고 할게 분명한 것들을 버리지 못했다. 그것은 사물이며 사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속속들이 배어있는 함께한 시간들을 버릴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들도 시간이 지나 그 의미의 한계지점을 지나 잃어버리고 말았다.

한동안 잃어버린것이 안타까워 속을 끓였다. 그것을 잃어버리게 되기까지 퇴색되어지는 의미를 눈치채지도 못할만큼 무신경해지고 있었던 거다.

이제는 그것을 잃었다는 사실조차 잊혀져가고 있는데..

문득 그렇게 잊혀져버린 작은 라디오를 생각했다. 어느 순간 내 손바닥만큼 작아져버린 라디오였지만, 처음 그 라디오를 선물받을 때 두손으로 겨우 받쳐들곤 했었지.

전파를 잘 못 잡아 지직거리는 것조차 개의치 않던 시간도 있었지.

사소한 것들이 일러주는 의미와 사소한 기억을 더듬는 것이 꽤나 흥미로웠다.

그곳이 꼭 뉴욕이 아니어도 좋았다.

 

작가의 일기처럼 쓰여진 짧은 이야기들 속에서 만나는 그림과, 음악과, 책과, 사람들..

읽어치우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오래도록 마음을 쓰다듬는 책을 끼고 있는 작가의 모습은 따스했다.

애틋함.

낯선 곳에서 홀로 지내는 탓이라고 일축하기에는 그 마음 씀이 너그럽다.

그렇기에 이 소소한 일상과 사소한 것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일 수 있었겠지.

사진과 그림들..흥미로운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낼 수 있는 곳. 뉴욕은 매력적이다. 그제서야 그곳이 뉴욕이라는 사실을 체감한다.

뉴욕인 것이다.

삶과 사람이 서로의 닮은 눈빛을 확인해가는 곳. 다양한 사람달의 눈빛을 확인하고 그것을 기억하는 거리를 걷는 것은 얼마나 경이롭고 아름다운가.

낯설다는 것이 주는 평온함은 또 얼마나 유혹적인가.

 

"아무리 조그만 '미친 짓'이라도 자신의 일부를 건 모험을 할 수 있을 때 이런 일이 가능하다. 모험이란 결국 자신의 뭔가를 기꺼이 버릴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닌가.(p225)"

 

모험을 하고 싶어진다. 그곳이 어디든..뉴욕이면 더 좋을..

 

#3.일기

 

작가의 삶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글들이다. 매일 일기처럼 써내려간 글 속에서 어떤 다짐 같은 것들을 읽는다.

잘 살아내겠다는 다짐이라기보다 잘 스며들겠다는 다짐 같은 것, 자신이 놓치고 있던 것들을 야무지게 주워담는 손길 같은 것들을 본다.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면 짐을 싸고 계획을 세우고 뭔가 분주하게 해야할 것들이 많다.

여행이 아닌 산책을 한다면 간단히 입고 운동화 끈을 살짝 조여묶으면 된다.

뉴욕의 거리 어디쯤을 걷고 싶어진다. 흰 운동화를 신고 천천히 바람같은 시간을 손가락 사이로 느끼며 오래된 빌딩 벽에 피어난 이끼까지 찬찬히 눈으로 읽으며 말이다.

그렇게 걷는 길 위에서 재즈를 들을 수도 있고, 앤디 워홀의 그림을 만날 수도 있고 오랜 기억 저편에 저물어버린 영화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낯선 책방에서 먼지를 덮어쓴 고전을 꺼내볼 수도 있겠다.

이국의 언어들이 어울려 커다란 파장으로 '삶'을 변주하는 현장을 목격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삶은 이어지고 그렇게 삶은 살아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시련이라는 것도 사실은 삶의 부속일테니까 말이다. 날카로운 부속들이 사실은 가장 아름다운 포인트가 되기도 하지 않는가.

건담의 창처럼 말이다.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낮은 울림을 끊임없이 불어넣는 팀파니 같은 글을 만난다.

사적이지만 사소하지 않고 소소하지만 가치없지 않는..

걸어보고 싶은 뉴욕의 어느 거리를 만난다.

 

걸어 본다.

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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