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것들 - 슬프도록 아름다운 독의 진화
정준호.박성웅 외 지음, EBS 미디어 기획 / Mid(엠아이디) / 2015년 5월
평점 :
품절


#1. 독

 

아주 어릴 때, 아버지와 그리스신화를 읽으며 반해버린 캐릭터가 있었다. 메두사와 아테나.

강인한 아테나는 터무니없게도 여군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했던 근원이되기도 했다. 둘 중 나를 더 흥분케 했던 건 메두사였다.

긴 머리를 한 나는 수시로 엄마에게 머리를 땋아달라고 졸랐고..기껏 땋아놓은 머리를 얼마 지나지 않아 풀어헤치고 꼬불꼬불해진 머리카락을 번쩍 들고 "메두~사"라고 소리지르며 뛰어다니곤 했다. 그 때부터였을까? 뱀을 좋아했다.

애완용 뱀을 키우겠다는 내 말에 식구들은 기겁을 했고, 결사반대를 깨지 못한 나는 매일처럼 애완용 뱀을 파는 가게앞을 서성이며 그 자태(?)에 매혹되곤 했다.

여자애가 뱀을 좋아한다니 엄마의 걱정은 깊어갔다. 하긴 설치류도 매우 귀여워했다.

사람들에게 뱀은 비호감 생물체 상위권에 들어있을게 분명하다. 어째서일까?

오랜 시간동안 뱀은 부정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거나 악의 화신이거나 하는 식으로 치부되어왔다. 아마 이런 이야기들의 시작엔 뱀에게 희생된 사람들이 있었을게다.

뱀의 독에 당(?)한 사람들..주의를 주고 싶었던 것이 점점 다양하게 덧붙여지며 뱀을 비호감생명체로 만들고 만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독'은 왜 생긴걸까?

뱀만 가지고 있는 건 아닌데 유독 뱀에게만 가혹한 건 왜인지..

 

독이란것의 분명한 정체를 알 때도 되었다.

두려워할 것만은 아닌게 우리 생활 속에 독은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지, 벌의 독을 이용한 침술도 있고, 복어의 독을 이용한 그 유명한 보톡스 주사도 있지 않은가.

독이 약이 되기도 한다는 건 상식처럼 자리잡아 가고 있다. 얼마나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명약이 되기도 하는 독.

그 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책은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독을 이야기한다.

인공독과 자연독. 말 그대로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독과 자연에서 만들어지는 생물독으로 구분된다. 생물중에서 동물과 식물과 미생물의 독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생물독이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유전독성과 혈액독, 면역독, 신경독으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독의 계보와 형태에 대하여 다양한 생물군을 예로 들어 살피는 과정이 흥미롭다.

 

#2. 왜?

그렇다면 독을 갖는 생물들은 어쩌다가 독을 품게 되었을까?

이 이유를 생존에서 찾는다.

 

"생물 독에는 크게 세가지 용도가 있다. 첫째는 먹이나 자원을 얻기 위해서, 즉 공격을 위해서다. 둘째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셋째는 다른 개체와의 경쟁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서다.(p73)"

 

짐작할 수 있는 이유들이다. 쉽게는 먹이를 얻기 위해 마취 혹은 신경독을 주입하는 형태, 적들이 근접하지 못하게 하는 방어적 형태, 다른 개체와의 경쟁에서 앞서나가기 위해서가 조금 독특하긴하다. 어쨌든 다양한 환경과 사용용도, 그리고 개체의 수만큼 독의 종류와 사용법도 다양하다.

서로 같은 종일지라도 서로 다른 독을 합성해낸다.

쉬운 예로 뱀에 물렸을 때, 물은 뱀을 잡아가던가(아..쉽지 않은일이다), 사진을 찍어서 가면 훨씬 해독을 쉽게 할 수 있다고 들었다. 독의 성분을 확인할 수 있으니 치료가 빠르게 이루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같은 뱀이지만 다른 독을 품는 것이다.

 같은 물이라도 소가 먹으면 젖이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고 하는 말이 있다. 어떤 의미인지 알 것이다.

이 말에는 뱀의 독을 부정적으로 대하는 의미 또한 품고 있다. 하지만, 소가 서로 다른 성분의 젖을 만들진 않는다. 그렇게 보았을 때, 뱀의 독은 얼마나 정교하며 창조적이며 구체적인가.

독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독은 아니라는 것. 생존에 필요한, 즉 주로 먹이가 되는 것에게 치명적인 독이거나, 자신을 먹이로 하는 것들에 대한 독이거나, 자신의 영역을 지켜내고자 하는 독이거나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신사적이지 않은가?

사실, 은행나무의 열매인 은행에도 독이 있다고 한다. 냄새가 나는 것은 알고 있지만 독이 있다는 것은 잘 알지 못했다.

킹코톡신이라는 독이 있어서 많이 섭취했을 때 간질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벌레가 잘 생기지 않고 나름 탄탄한 방어체계를 갖춘 은행나무 였지만, 인간은 그 신경독을 제거하는 방법을 체득하고 열매를 먹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주도면밀함이라니..

 

일반적으로 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포악하고 폭력적이기 때문에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갖게 되는 기제에 다름 아닌 것이다.

또한 독을 합성하기까지, 물을 마시면 독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온 신경과 근육을 활용해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 어쩌면 독을 지녔다는 건, 더이상의 방어가 불가능한 약한 존재가 갖는 마지막 방어기제 같은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3. 인간과 독.

 

인간의 역사 속에서 독으로 사람을 치유했다는 기록을 종종 볼 수 있다. 적절한 양으로 적절하게 투여되면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 독이다. 결국 독과 약은 같은 성분에 다름아니다.

독성학이 점점 발달함에 따라 우리가 모르던 독의 정체들이 밝혀지고 있고, 그것을 활용할 수도 있게 된다는 건 어쩌면 자연에 더 많은 빚을 지게 된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동물, 혹은 식물의 마지막 방어기제까지 뺏어다 쓰는 탐욕스런 인간이 되는 것..

사실, 독이라는 것은 매력적이다. 수세기를 걸쳐오며 고대의 신화같은 이야기나 소설 속에서 독은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독살이 소재로 쓰이는 글들은 얼마나 흥미진진한가..그 비밀을 풀어가는 탐정들의 비상한 이야기. 그렇게 알아지는 새로운 독의 정체.

 

또한 잔혹한 가스독의 이야기는 나치의 유태인학살 같은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었다. 독을 가장 참담하게 사용하는 종은 인간이 아닐까 싶은..

베트남전의 고엽제나 우리나라 농촌에서도 부작용이 심했던 제초제들..​

인간은 레저용 독도 만들어냈다. 레저용 독이라고 하니 조금 낯설다. 술, 담배, 마약같은 것을 통칭한다고 했다.

사실, 자연에서 만들어진 독들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분해되지 않는 독들이 더 치명적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줄곧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4.

독은 생명의 진화과정에서 발전되어진 하나의 기제일 뿐이다.

퍼즐을 맞출 때, 오목하게 들어간 부족한 부분에 맞추어지는 볼록한 장치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오해를 하게 되고 심지어 혐오감마저 감추지 못하게 되었으니, 독을 품은 생명들은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렇게 오랜 세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만들어 놓은 독조차도 인간은 약으로도 쓰고, 심지어 그것에서 배워 무기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따져보면 인간은 독한 것들보다 상위존재임이 분명하다.

독은..매혹적이다.

독은..생존의 조건이다.

독은..제대로 讀해야 한다.

책의 사진들이 너무 이쁘다..사진들만 계속 넘겨보게 된다.

​반갑숑~반갑숑~~

 화났숑~화났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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