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가 끝난 뒤
함정임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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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

김소진의 기일에 함정임을 마저 읽었다.

너무 일찍 떠나보낸 김소진을 11월이면 김현식과 유재하를 기억하듯, 4월의 명치께에서 더듬게 된다.

김지원,김채원 자매의 글들이 같은 DNA에서 다르게 발현된 것들이라면, 김소진과 함정임의 글은 전혀 다른 DNA에서 만들어내는 변주이자 합주일 것이다.

 

소설 쓰기란 추모의 형식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세상 어느 한 곳 어느 하나

 

불러보고 싶은 이름들이 있다. -작가의 말

표지를 넘기고 제일 처음 만난 작가의 말이 저릿하게 다가앉는 이유가 이것이었을까?

 

기억의 고고학 - 내 멕시코 삼촌

저녁식사가 끝난 뒤

그는 내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떤 여름

오후의 기별

구두의 기원

밤의 관조

꽃 핀 언덕.

 

여덟개의 글들이 저마다 다른 색으로 다른 톤으로 걸어오는 대화가 인상적이다.

유난히도 "떠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던 작품들..떠나버리거나 떠나는 중이거나 떠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스민 볕이 산란하듯 조금씩 내려앉는다.

춘아 이모와 멕시코 삼촌, 빨간 아코디언을 두고 더듬는 기억과 존재의 의미, 떠난것에 대한 그리움은 화석처럼 남은 기억만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진행중인 있던 것들의 떠남.

서로 다른 추모의 방식으로 저녁 식탁을 만든 사람들, 내일이라고 말하지 않는 남자 무일, 가장 행복한 순간을 앞두고 떠난 남자의 자욱을 찾아 나선 그 길..

 

모든 이야기의 공간은 세계적이라 할 만큼 다양하다. 이렇게 많은 지역들을 순례하며 온몸으로 부딪고 숨쉬며 써낸 글들이라니..

 

상실과 추모.

두 단어로 설명이 될 수 있을까? 낯선 것들을 끌어들여 그 속에서 낯익은 상실을 찾아내게 하는 필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잃을 수는 있으나 잊을 수는 없는 이야기들이, 단호하게 잊었다고 선언하기 전까지 파고드는 그리움의 잔해를 헤쳐가는 이야기가 조용한 스펙타클이라는 모순적 상황을 끌어오게 한다. 결국 잊었다는 선언은 할 수 없다.

추모한다는 것은 그리움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더 이상의 상실이 아닌 건강한 변양태로 작용하게 된다.

발목을 꺾는 그리움이 기대어 쉴 어깨가 되어줄 수도 있다는..

 

기억을 지우고, 기록을 지우는 것으로 1차적 상실의 마침표를 찍지만(어떤 여름, 구두의 기원)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다시 재확인 되며 (기억의 고고학) 저마다의 방식으로 추모되어질 것이다.(저녁 식사가 끝난 뒤, 밤의 관조)

 

수없이 떠나고 또 떠나는 '노마드'의 삶을 살아내는 작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함정임의 소설은 어쩌면 세계와의 부단한 만남을 통해 우리에게 모든 것의 중심에 상실이 있다는 치명적인 진실을 알려주고 있는지 모른다. 그의 이야기가 펼쳐내는 노마드적 상상력은 그 자리에서 부동하는 상실의 흔적에 대항하는 삶의 몸짓이며 불가항력의 침묵을 파고드는 수다한 소리의 습격일 것이다. -p206 이소연의 해설 중

 

저항하지 않는 저항.

떠남으로써 지켜내는 추모의 형식을 존중하고 싶어진다.

김소진을 잃은 아쉬움을 함정임에게 비할까마는, 그의 부재가 아니었다면 훌륭한 이중주를 오래 들었겠구나 싶어진다.

 

책을 덮은 이후로도 자꾸만 입속에서 웅얼거리는..인디안 인형처럼..워워워워워~~

어느 낯선 지역 인디언들 사이, 원주민인양 끼어 앉아 이야기를 고를 그녀의 모습이 자연스레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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