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배의 노래
김채원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1. 왜?

 

나는 왜 이 책을 읽고자 했을까? 낯선 작가도 아니고, 요즘 한껏 흥미롭게 보고 있는 신인 작가들도 아니고, 다작을 하거나 자주 보게 되는 작가도 아니었다.

다만, 그녀의 오래전 작품인 '겨울의 환', 핑크빛 표지가 강렬했던 '미친 사랑의 노래','달의 몰락' 정도의 책을 읽었던 기억만이 오래된 흉터처럼 남아있다.

흉터.

내 왼쪽 눈썹 옆에는 깊이 패인 자욱이 있다. 어렸던 어느 날, 엄마 손을 잡고 파리제과라는 유명짜했던 제과점에 빙수를 먹으러 갔었다.

이층에 자리를 잡은 순간, 높은 곳에 오른 어린아이는 한껏 흥분한다. 마치 하늘에라도 오른듯이 현실과 꿈을 분별하지 못하고  스스로 새라고 믿게 된다.

이건 순전히 '되고 싶은 건 뭐든 될 수 있어'라고 거짓 정보를 세뇌시킨 엄마의 잘못이겠지만, 나는 계단 위에 서서 비행을 시작했다.

두 팔을 펼치고 아래로..잠깐의 비행이 기억나고 둔탁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별 탈 없이 비행이 이루어졌다. 높은 제과점의 천정까지 날아오른 나는 케이크 위에도 앉아보고 단팥빵 위에도 앉아보고 폭신한 카스테라도 눌러보았다. 그러다 아득해지고 엄마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오기 시작할 때에야 비행은 멈추고 엄마 품에서 눈을 떴다.

한쪽 눈이 잘 안떠졌다. 그러나 파리제과를 날아다니던 느낌은 너무 생생했고, 그 상처에 손을 댈 때마다 오롯이 떠오르는 비행의 기억이 있다.

그것이 꿈이었든, 정신을 잃고 헤매던 무의식의 그림자였든 상관없다. 흉터가 품은 이야기이며 꿈이며 그 시간, 그 공간의 "나"를 존재하게 한다.

 

김채원의 작품은 흉터와 닮았다. 언제든 그 흉터를 짚어내면, 그 아픔의 현장으로 데리고 가 그 고통과 이야기를 고스란히 되돌려 주는 것이다.

잔인하게도..덤덤하고 까칠하기까지 한 어조로 말이다.

 어떤이는 김채원의 이런 글들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했다. 맹탕하고 팔자 늘어진 여자의 감상타령이라고 극단적인 폄하를 하기도 했다. 어쩌겠는가..그는 그렇게 읽혔고, 나는 이렇게 읽혔으니 다를 뿐이다.

 

맹탕하게 팔자 늘어진 여자의 감상이라고 생각이 가능한 건, 그녀의 화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심하게 한 발 물러선 듯 그려내는 풍경들, 세상과 자신 사이에 반투명 유리를 두고 들어가지도 외면하지도 않는 모호한 위치에 대한 오해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선뜻 들어서지도 못하고 밖으로 도망치지도 못하는 것이다.

 

"여자는 그 어디에서도 되도록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고자 한다. 풀잎에 붙은 여치나 귀뚜라미를 손으로 떼어내듯 누군가 자신을 삶에서 떼어내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여자 스스로 삶에서 떨어져나오는 것 같다"(p47. 등뒤의 세상)

 

나, 혹은 여자로 지칭되는 사람들은 위태롭다. 만나게 되는 시간과 공간이 모두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조심스러운 두려움이 터질 때를 기다리는 마그마처럼 위험하고 낮게 흐른다.

긴장감..모든 문장이 품은 긴장이다. 삶의 자락을 느슨하게 쥐고 희롱하는 것이 아닌 팽팽한 긴장이 불러오는 조심스러움이며 자유와 평온에 대한 간절한 바람인 것이다.

이런 것이 어쩌면 낭창한 감상놀음처럼 비쳐질 수도 있겠구나..


김채원의 글은, 상처이며 흉터이다. 그것이 외부에 의해 만들어 진 흉터일 수도, 감당하기 버거운 고통을 견디기 위한 자해일수도 있겠지만, 그 흉터를 만질때마다 오롯이 살아오는 삶의 기억이며 시간인 것이다. 또한 단호한 자기 생에 대한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광야에 나가 서는 것.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것. 무엇이 어찌되든 그냥 그를 사랑하는 것.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

커다래지자. 아주 커지자.

저기에 작게 머물러 있던 나를 이렇게 끌어올리는 것은 순전히 그의 힘이다.

공부도 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처럼 나도 시간을 금싸라기로 여기고 싶다.

(p154. 물의 희롱-무와의 입맞춤)"



#2. 태생적 소설.


김채원 일가(?)의 놀라운 계보. 모든 가족이 문단에 나서는 독보적인 가족사가 유명하다.

부모님과 언니인 김지원. 창작이 이 가족의 유산인 것인지 대를 이어 감내해야하는 천형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김채원은 소설로 잉태되어 태어나게 되고 운명을 받아들인 소설의  현신(現身)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모든 문장들이 갖는 힘은 느슨한듯 단호하다.

햇살이 따사로운 어느 봄 날, 새들이 노래하고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 사이를 걸으며 모든 감각들을 풀어두는 글은 아니다. 오히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손가락 어디쯤을 베인 게 아닐까 의심하며 살피게 되는 자상같은 글들이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감상이거나 느낌일 뿐이다. 처음부터 김채원의 색을 차갑고 시린 세룰리언 블루로 정해두고 읽어내거나, 세룰리언 블루로 채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책을 들고 읽기 시작하는 순간, 작가의 의도를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는 건 순전히 독자의 몫이며 그 취향이 색과 온도를 결정하는 것이니 말이다.

객관적으로 문학적 가치와 유관성, 혹은 장단점을 짚어내고 작가의 세계관을 파헤치는 평론가적 시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딱히 흠이 될 것도 없는 일이다.

내 것이 되는 것. 그 과정의 첫 시작은, 내 시력에 맞추는 것이다. 모든 책이 제각각 요구하는 시력을 갖지 못한 비극일지도 모르지만...


김채원의 글을 읽을 때, 여지 없이 동반되는 한 사람. 김지원.


"언니 김지원의 2주기와 때를 같이하여 나오게 된 이 책은 내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어딘가에 바친다는 느낌이 이런 것인가 하고 새삼 깨닫는다.-작가의 말"

작년 이맘때, 김지원 소설 선집이 나왔었다. 도서정가제라는 것이 시행되기 전이라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염가에 나온 선집.

김지원의 글을 모아서 볼 수 있다는 것과, 너무 염가에 나와버린 책들이 안타깝기도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유족의 바람이 낮은 가격 책정에 작용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이 가족의 심장은 문장이라는 핏줄로 서로 연결되어져 있나보다 생각했다.

어느 한 심장이 잠시 멈추었어도 다른 심장들이 그 심장의 몫까지 뛰어주며 끝까지 그 존재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눈물겹게 느껴진 것이다.


"모든 것을 배제하고 오로지 봄의 집만을 쓸 수 없을까.

 그러나 그 집 식구들이 자연히 끼어듦을 어쩔 수 없다. 그 집과 식구들은 따로 떼어지지 않는 한덩어리임을 간파한다. 어느 것이 집의 부분이고 어느 것이 식구들의 부분인지 분간되지 않는다. (p265 -쪽배의 노래)"

닮은 듯 다른 김채원과 김지원의 글이 쪽배의 노래 속에서 자꾸 비춰진다. 이 가족은 이렇게 삶의 방식을 부여 받았나보다.



#3.


쪽배의 노래. 여덟개의 단편을 읽는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간에 읽은 것이 다행이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에 읽었다면, 겨울이 지난 뒤 봄이 올 것이라는 것을 믿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문장이 살아있다는 느낌. 모든 문장이 처음부터 그렇게 쓰여져야만 한다는 신탁을 받은 결과물인것처럼 누워있는 페이지를 넘기는 것은 무거운 돌덩이를 넘기는 것만큼 어려웠다.

힘겹게 넘긴 페이지 뒤에서 만나게 되는 또 다른 무게.

그렇게 힘들다면 읽지 않으면 되지 않아? 문제는 그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다음 이야기..그 다음 이야기를 끝없이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제 이야기를 주절주절 꺼내게 한다.

"있잖아요. 제가 어릴 때였어요. 뭐 아주 어린 건 아니고 지금보다 어릴 때요. 그 때, 나는 사랑을 하고 있었나봐요.." 하고 말이다.

긴 편지를 쓰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제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 그대로 상처 속으로 들어가 한없이 울먹이며 위로를 바라는 모습이 아닌, 상처를 어루만지며 살아야겠다고, 이 상처를 품고 자유로워져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감상놀음이 아니라..감상의 본질을 마주하며 처음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아주 단정한 방법으로 말이다.

한참 뛰어놀고 콩죽같은 땀을 흘리며 들어온 아이의 얼굴을 닦아주던 엄마의 새하얀 수건처럼 말이다. 햇살 냄새가 그득하지만 부드럽지는 않았던, 조금은 까칠해서 오히려 개운하고 말끔해졌던 엄마의 흰수건처럼 말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살아도 좋을, 아니 좀 더 자유롭게 살아도 괜찮을 처방전 하나와 만났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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