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의 자화상
전성태 지음 / 창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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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제작


보통 단편선이나 소설집을 읽게 되면 표제작부터 읽는 습관이 있다. 표제작을 읽는다는 건 그 소설집의 내부로 들어가기 위한 사전탐사 같은 것이었다.

대부분의 소설집은 이런 사전탐사에 쉽게 응해주었고 책을 다 읽을 때까지 하나의 지표처럼 자리를 지키곤 했다. 표제작이 파랑이면 다른 글들은 푸르스름하거나 검푸르거나 투명한 파랑이거나 하는 식으로 달을 중심으로 퍼져있는 달무리처럼 하나의 풍경으로 수렴되곤 했다.

모든 소설집이 그런 친절한 구성은 아니지만, 표제작은 그렇게 나침반을 돌려보듯 처음의 읽기를 끌어주는 힘을 가졌다.

두번의 자화상.

표제작이 없다. 아무리 찾아도 두번의 자화상이라는 작품을 찾을 수가 없다.

어떤 일을 할 때 습관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것만, 이 작품은 그 습관마저 놓아야 읽어낼 수 있다니..조금 의아했다.

결국, 처음의 작품부터 읽어간다.

치매에 걸린 노인의 이야기가 그 처음을 열어준다.

나이가 제법 들어버린 나는 홀어머니를 늘 걱정하는게 일이다. 그 첫작품에서 마주한 치매노인 이야기가 나와 무관한 이야기였다면 뜨끔대는 콧등을 느끼지 못했을것이다.

힘겹게 첫 작품을 읽어낸다.

다음 작품과 그 다음 작품들..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저마다의 사연과 삶의 풍파들을 겪어내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열두 개의 작품들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과 사건들과 사연들이 언제쯤 내가 보았던, 겪었던, 생각했던 것들이다.

이미 알고 겪은 이야기가 무어 그리 감정을 흔들 수 있을까마는..그랬던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흔들림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

어쩌면..

애써 모른척 했던 것들이었다고 고백하게 하려는 의도는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했으니 말이다.


표제작도 찾지 못하고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어느 곳을 디뎌도 만나게 될 "서로 다른 같음"을 알아채게 하려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2. 두 번, 또는 두번.


두 번의 자화상이 아니라 두번의 자화상이다. 띄어쓰기를 틀린 것이 아니라면 무슨 까닭일까 싶어졌다.

한 번과 한번의 차이와 같은 것일까? 그렇다면 '두번'은 어떤 기회를 품고 있는 것일게다.

어떤 기회일까? 작가의 펜은 끝이 가늘고 뾰족한 세필이겠다 싶었다. 미세한 떨림까지 그려내는 예리하고 진하지 않지만 그래서 선명한..

살짝 건조하지만 체온과 맞는, 격정적인 감정의 기복은 느껴지지 않지만 그 울림이 오래가는 조근조근한 책들을 좋아한다.

그런 취향 때문이었을지 모르겠지만, 두번의 자화상은 낮은 소리로 살짝 건조하게 읽는 이의 의중을 계속 확인하곤 한다.

이런 사람이 있어..이런 아이가 있어..이런 일이 있었어..들어봤어?

모든 작품들의 서두에 작가가 묻는 것만 같다.

한 작품을 읽고 나서 작가의 물음에 대답하게 된다.

들어본 것 같아. 사실 나를 닮았어.


작가가 그동안 여러 곳에 실었던 작품들이 모였고, 그 발표 순서대로 배치한 것도 아니지만 마지막 작가의 말에 쓰인대로 "인생에 단 한편은 없으며 어쩌면 겸손한 실패로 점철되는 게 문학인생이 아닐까.."라는 말이 두 번, 혹은 두번의 의혹을 풀어주고 있는 것만 같다.

인생은 수많은 단편들이 이어나가는 옵니버스 장편일게다.

그 가운데 하나, 둘의 헤아림은 의미를 잃는다. 되돌아 다시 마주보는 자신의 얼굴, 그것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에 대한 단호한 물음이 아니었을까?


#3. 오랜 후유증.

 

책을 꽤 오래 들고 다녔다.

나름 책을 빨리 읽어내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한 번씩 느닷없이 발목이 꺽이는 책들이 있다.

넙죽 받아 입에 물었는데 잘 마른 황률이었던 것 처럼..오래 입속에 굴리며 불려서 잘근잘근 씹어야 삼킬 수 있듯이 말이다.

짧은 글들이기에 덥석 읽기 시작했지만, 행간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유사 경험들과 유사 인물들에 대한 생각에 잠겨 속칭 진도를 뺄 수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 마주하고 싶지 않는 것들이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었다.

인정하고 마주하기엔 이미 용기 없음이 드러나버린 비겁함. 타협하며 살아내는 동안 뒷전으로 밀려난 것들이 이렇게 많았구나를 되새기게 한다.

조금 더 체온을 유지해도 좋았을 껄..

조금 더 눈길을 주었어야 했는데..

조금 더 오래 품고 있어볼 껄.

책은 "네 모습을 봐! 부끄럽지?" 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여길 봐, 이 상처 기억해? 그랬었어, 또 다치지 마"라고 다독이는 것 같다.


전성태의 필력은 뱃사공의 팔뚝에서 나오는 힘과는 다르다. 옆에 앉아 박자를 맞춰 숨을 쉬어주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나약하다는 것이 아니라, 세심하고 인간답다.

책을 읽고 나서 뭐라 정리해야할지 사실 막막한 것도 그 이유이다.

그저..고개를 끄덕이는 것 밖에 달리 할 수 있는 행위가 없었기 때문이다.


산다는 건, 어느 시점에서 자신의 얼굴을 마주봐야 한다는 외마디 비명같은 글을 겨우 읽어낸다.

자신의 삶의 길을, 스스로 그려내는 자화상.

제 얼굴을 마주보는 것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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