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여름의 장맛비처럼 비가 쏟아졌다.

칠판에 판서를 하며 점점 뻐근해지는 어깨덕에 쉬이 그치지 않을 비임을 직감했다.

한밤중 퇴근길에 옆지기는 노벰버레인을 크게 틀어준다.

마치 10월30일에 듣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 같은 느낌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방치되어 있던 씨디더미를 뒤져 제프 벡을 꺼내고 너바나를 꺼내고 짐모리슨의 도어즈를 꺼내고 그렇게 한참을 뒤적여 열서너개의 씨디를 꺼냈다.

내친김에 잉베이의 데쟈부 엘피도 르네상스도 레인보우도..

 

그런 때가 있었다.

온전히 음악을 듣는 것에 몰두했던..

뮤지션의 계보를 따지고 음악의 갈래를 세분하여 조잘거릴 줄은 몰랐으나 그저 좋았던것이다.

마치 지금 닥치는대로 읽어대는 것처럼말이다. 누구에게 말할 일도 없고 오로지 나의 유토피아의 다양한 변양태였을 뿐이었다.
아이들 태교를 할 때도 야즈버드와 레드제플린 메탈리카 할로윈같은 걸 들었다.

산모가 행복한걸 들으라는 명의(?)의 조언이 든든했다.

 모짤트에게는 미안하지만..

 

밤새 비가내렸고 밤새 음악을 들었다.

스물 몇살의 혹은 열여덟이나 아홉 즈음에 사는게 심드렁해서 잔뜩 화가난 뜨거운 여자애가 살아왔다.

신경질적이고 여전히 골난 어조로 물었다.

"어때? 살아보니 살만해? 더 좋은 뭔가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살아보겠다며? 살아봐도 별거없지?"

싱긋이 웃음이 났다.
살아보니 별거 있드라..너는 말해줘도 모를거야. 고집불통이니까.

 

그래서..배순탁의 책을 꺼내들었다.
먼 시간과 음악은 잘 숨어있다가 부비트랩처럼 느닷없이 튀어나와 발목을 잡는다.

상처도 고통도 없는 아련한 기억과 소소한 웃음이 지어지는 썩 괜찮은 부비트랩


하루 이틀쯤은 이 덫에 잡혀있어도 괜찮겠다.

 

첫이야기가..신해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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