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문학동네 시인선 61
임경섭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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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독으로 시작하는....

 

임경섭의 죄책감이 나왔다는 알림글을 보고 바로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을 해본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는다. 미출간정보조차 없다. 엉뚱한 책들이 쏟아진다.

검색에 검색을 다시 하고 다시 확인하고를 반복하다 깨닫는다. 임경업. 수치심.으로 찾고 있었다.

국사공부를 열심히 한것도 아니고, 딱히 임경업에 대한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닌데..익숙한 글자구조 혹은 어감의 탓이었을까. 나는 임경업을 자꾸 찾는다.

죄책감이라고 소리를 내어 읽어 놓고도 손가락은 수치심을 찾고 있다.

 

어쩌면 이 둘은 슬픔으로 가는 두 량(輛)짜리 기차일지도 모르겠다.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지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시기 비슷한 상황 속에서 여지없이 굉음을 내며 달려오는 기차 말이다. 죄책감의 앞얼굴을 보고 잠시 비켜 서 있다 돌아보면 수치심의 뒤통수를 보게 되는 것처럼 쏜살같이 지나가는 기차.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나 망설이며 건널목에 서 있는 서러운 존재여야 하겠다.

건너지도 돌아서지도 못하고 서성이다 잃어버린 것들을 헤아려보고 잃은 것들의 자리를 대체할 저 건너의 것이 낯설어 건널목 앞에서 죄책감과 마주서게 되는 그런 존재말이다.

비켜서지 않으면 부딪고 지나가겠다는 강렬한 달음질과 그 강렬함을 닮은 여운이 긴 바퀴소리..그 바퀴소리가 멀어져도, 들리지 않아도 오래도록 귓가에 덜컹덜컹 소리를 달고 지낸다.

그 소리를 잊을 때까지 결단코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똬리를 틀고 앉는 죄책감. 소리가 사라지는건 생각보다 길고 오래 걸리곤 한다. 어쩌면 영 사라지지 않아서 환청을 듣는 귀 조차 바퀴가 되어버리는지도 모른다.

 

#2. 죄책감이 흐른다.

죄책감..죄책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죄책감에 빠졌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죄책감은 어떤것인가 싶어졌다. 사전을 찾아보니 '명사: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책임을 느끼는 마음'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다.

정말 그게 전부일까? 책임을 느끼는 마음?

시집을 읽으며 죄책감은 상실 앞에서 발현되는 통곡이라고 생각했다. 절절한 죄책감은 죄를 고백할 대상이 곁에 없을 때, 속죄의 보장이 사라져버렸을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자책은 그렇게 죄책감으로 자라나 삶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무기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형과 누나와 아버지와 어머니와 애인과 그 외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자책과 상실로 꿈을 그려낸다. 무채색의 그림은 한없이 지루하고 흐릿하게 제 모습을 숨기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시인은 하나씩 집어내며 자신의 자책과 1:1로 대응시켜가며 완만한 곡선의 그래프를 만들어 낸다. 그 속에 무리하게 색채를 입히려 하지 않고 때론 눈물로 희석하거나 때론 더 검게 칠해 그 음영을 더 할 뿐이다. 처음 부터 색을 갖고 있지 않았던 관계이며 삶이었으니 말이다.

 

만약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누군가 이 고해를 들어줄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떨어지면서 사람들은 괴성을 질렀고

나는 애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런 상황에서 왜 이름을 불러? 애인이 물었고,

떨어질 때의 소름이

널 처음 만났을 때와 닮았다는

거짓말을 해버렸다

<애와 인/중에서>

거짓말. 애인이 옆에 있어서 둘러대는 거짓말.그말을 믿어줄거라 계산되어있던  그 애인은

 

꼭 자정이 넘어서야 애인은

잠도 안 자고

자라지도 않은 발톱을 깎았다

 

이만큼이 내 어제야

(...)

 

고백하자면 애인은

발톱 깎는 시늉에 바쁜 날이 잦긴 했었다.

(...)

<척, 한/중에서>

자라지도 않은 발톱을 잘라 문밖으로 던져버리며 어제 속에 버려지는 역할을 맡은 그를 같이 버려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을거다. 거짓말에 대한 응당한 불성실. 불안정한 사랑은 허투루 마지막을 듣는다..

 

어젯밤 애인은 내 목소리 위로

버들낫 같은 짧은 달을 박아놓고 갔다

목줄에 매인 주인과 개처럼

천천히 기다리자고 했다

긴긴 시간을 헐떡이면서

오래도록 헤어지자고 했다

서로에게 벗어나기 위해 잡아당기는 목줄 같은

질긴 것들만이 큰 소리를 뽑아낼 수 있다는 여자의 울음,

볼록 솟은 여자의 울림통 같은

(....)

 

여자가 울었다

소문처럼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고 울었다

내 입술은 아무런 질감을 가진 적 없다

나는 끝끝내 여자의 표정을 알지 못했다.

<무성한/중에서>

 

한바탕의 믿을 수 없는 말들 사이 날카롭게 박힌 진실들은 사랑의 표정을 끝끝내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 이별 또한 오랫동안 울었다.

착하기만 한 누이며 앓아 누운 어머니, 아버지의 독백..형의 무심함은 그렇게 시집 이쪽 저쪽 귀퉁이에 놓여있다.

마치 어느 곳을 보아도 네 자책을 키울 준비가 되어있어.라고 힘주어 말하듯이, 자책의 증거들을 나열해 놓은 목록의 마침표처럼..

 

죄책감은 쉽게 피어나지 않는다. 조금씩 스멀스멀 피어오르다, 자책이라는 이름으로 별것도 아닌양 성장하다, 용서를 구할 대상이 상실되는 싯점에서 봄날 목련이 벙그듯이, 파도가 덮쳐오듯이 쏟아진 시너 통 위에 떨어진 담뱃불처럼 일순간 확장되어버리며 그 정체를 드러낸다. 거칠고 미처 손쓸 사이도 없이 일순간..

죄책감은 그렇게 발현된다.

 

죄책감이 시작되는 싯점에 나는 차라리 꿈을 꾸기로 한다. 내가 잃은 속죄의 기회인 엄마가 거기 있다. 꿈 속에서는 '있다' 그러니 꿈을 꾸어야 한다.

 

(...)

그러나 꿈이다

꿈은 더이상 졸립지 않다

꿈은 슬퍼도 슬퍼하지 않는다

꿈은 집이다

꿈은 내가 사는 집인데 우리집은 아니다

꿈은 경계를 구획하지 않아서 벽지를 바르지 않는다

꿈은 깨끗하지도 더럽지도 않다

꿈은 아프지 않다

꿈속에서 우리가 결코 싸우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꿈은 깨어난다

 

꿈에서 깨어나는 꿈을 꾼다.

<꿈이 꿈을 대신한다 /중에서>

 

꿈 속에서 경계가 모호한 꿈 속에서는 아프지도 슬프지도 않은것이다. 일순간 일어난 죄책감이 속죄의 대상을 찾는 꿈속에서 싸우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즉, 속죄를 해야할 것이 없다. 싸움도 다툼도 노여움도 용서 받을 것도 할 것도 없는 것이다. 꿈에서 깨어난다. 하지만 정말일까? 그 꿈은 정말이었을까?

 

 

 #3. 원죄에 대한 고백.

 

어쩌면 시인의 죄책감은 "사람"으로 태어난 순간 느껴야 하는 관계 속에서의 갈등과 상실과 엮임과 화해의 소용돌이를 한 발 벗어나 들여다 보고 하나씩 떼어내어 저마다의 자리에 재배치하는 것이었을지 모르겠다. 원래 있던 자리..

가난한 집일수록 깔끔하고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 우리 집이 그랬다.

무엇 하나 함부로 소비할 처지가 안되다보니 무엇이든 아껴써야했고,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단단히 단속해야했다.

나는 늘 제자리에 물건을 놓아두지 않는다고 혼나는게 일상이었지만, 좀체로 고쳐지지 않았다. 서랍 맨 앞에 자와 가위 그 뒤에 각도기, 각도기 위에 풀과 컴퍼스 그 옆에 반쯤 남은 연필들 그 뒤로 못쓰는 필통을 잘라 만든 볼펜깍지들과 더는 못쓸만큼 짧아진 연필의 잔해들이 놓여있었다. 풀을 쓰고 책상 위에 그냥 둔다. 엄마는 그러다 떨어져서 책상 밑으로라도 들어가버리면 꺼내기도 어렵고 그러면 또 사야하는데 물건 아까운줄 모른다고 지청구를 하셨다.

그래도 고집스런 나는 무엇이든 잃어버리기 좋은 자리에 던져두곤 했다. 그것이 없어지고 나야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그것이 지금 쓰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갖고 싶었다.

이사를 하던 날 옷장이 나간 자리에 서너개의 자와 뚜껑이 열려 반쯤 흘러버린 물풀과 뚜껑이 사라져 색이 다 날아가버린 싸인펜, 쓰다만 스케치북 들이 패잔병처럼 너절한 모습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책상을 들어내자 상황은 더 참혹했다. 친구에게 주어야했던 편지들이 갈갈이 찢겨진채 책상 뒷편에서 곰팡이와 뒤엉켜있었다.

 

시인은 원래 있던 자리가 불편하다. 제자리에 놓여있는 것들의 결핍과 마주하는 것도, 그것들의 자리를 인정하는 것도..

그것이 "나" 이기에 견뎌내야 하고 겪어야 하는 원죄의 시작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도 불편하다.

그래서 그는 자꾸만 자책한다. "나는 왜 (...)훼방 놓지 못할까 생각했다<우두커니/중에서> . 하지만 해결방도는 훼방이 아니다. 그저 그 죄책감을 끌어덮고 잠을 청하는 것 뿐..

"우리의 수업은 잠을 자는 것/ 계속해서 깨기 위해 계속해서 자는 것/ 오늘의 침묵은 거역의 방식<시뮬레이션1/중에서>"그렇게 그만의 방식을 찾아낸다.

 

#4. 그냥

그랬다.

노란 표지의 시집을 자꾸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시 한편 한편의 무게가 간단치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가슴 한켠에 쓱 들어와 앉는 시들..그리고 떠나지 않는다. 다음의 시가 또 들어와 앉았다.

그렇게 자꾸 쌓여가는 시들이 늘어갈수록 나는 호흡이 가빠진다. 떨구어내려해도 떨구어지지 않는 참담함 그 밑에서 음울한 색과 모양을 가진것이 떠올랐다

호기심조차 들지 않았다. 나는 호흡이 가쁘니까..

나의 호기심이 가 닿지 않아도, 그것은 조금씩 균열을 시작했고 추하고 가련한것이 불쑥 튀어나왔다.

나를 쏙 빼닮은 그것이 담담하게 자기 소개를 한다.

"안녕? 나는 너의 죄책감이야. 잘 지내보자"

노란 현기증이 일었다. 아무래도 판도라의 상자를 연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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