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오래된 명제 앞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내가 살아있다는 현재적 팩트가 이루고 있는 수없는 관계망..그 어마무시한 관계를, 내가 알거나 모를 수 있는 모든 관계를 모두 이해하지 못하지만 때론 그 관계 속에서 나의 좌표, 역할, 의무에 대한 부담을 떨칠 수 없다.

이런 애매한 부담과 책임감은 때때로 사회 밖의 어떤 좌표로 표류하고 싶다는 허무맹랑한 상상을 하게 되고, 그러다 스스로 타자가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어떤 집단에 소속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만큼의 간절함으로 밖으로 튕겨나가고 싶은 이율배반같은 ..

작용반작용의 물리적 법칙이 삶의 시공간에도 적용되는 것인가를 문득 묻게 한다.



















고등학교 무렵, 엄마에게 세계문학전집을 선물 받고, 그 단단한 표지에 반해 한동안 바라보다..헷세와 헤밍웨이보다 먼저 집어든 이방인과 변신..얄팍한 사유와 늦은 사춘기라는 시기적 특수성이 몰고 온 여파는 실로 상상이상이었다.

말없는 딸이 되고, 자신을 한없이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어린 기억이 남았다.

이방인이라는 단어가 주는 관념적 매력은 그 힘이 실로 컸다. 이방인으로 낙인 찍혀 밀려나는 것과, 스스로 틀에서 벗어나 이방인임을 자처하는 건 큰 차이가 있음에 분명하다.


이런 저런 책들을 넘겨보다..만나게 된 몇권의 책이 타자의 문제, 혹은 실존의 문제, 사회적 관계속에서의 문제에 대해 나름 깊은 고민을 하게 한다.

















타자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루됭의 마귀들림은 독특한 구성으로 흥미롭게 보았던 책이었다. 소외되기 소내되기 소내하기 역시 "소내"라는 발칙하지만 묵직한 개념과의 만남으로 신선했다. 난쏘공이야..두말 할 것도 없다. 이렇게 아프고 오래 잔상이 남는 책이 있을까..


최근 만나게 된 이방인의 사회학. 이방인이라는 말과 사회라는 말이 왠지 어울리지 않지만, 기대보다 충실한 것들과 마주하게 된다.


"이방인, 그는 현실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방인은 의심하는 자이며, 문제를 제기하고 질문하는 자이다. (...) 게다가 이방인은 질문을 하더라도 매우 곤란한 질문들만 골라서 하는 까탈스런 자들이다. 그들은 현실 속에서 안주하는 자들에겐 용납하기 어려운 매우 위험한 질문들을 가져오고 제기하는 자들이다. -이방인의 사회학"

멋지지 않은가. 

밀려난 고독한 존재로서의 이방인이 아니라, 새로운 계층으로서 지위를 확보하는 이방인이라니..


나는 이방인이지 않을까? 수없이 되물었던 물음에 어슴프레한 대답을 얻는다.

어쩌면..이방인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건 아닌가?

그렇다면..건강한 이방인으로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라는 당돌한 물음을 자신에게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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