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닥터 슬립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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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을 펼친다

 

<스티븐 킹의 대표작 샤이닝, 30여년만에 돌아온 매혹적인 후속작>

이 카피가 주는 힘은 생각보다 컸다. 스티븐 킹이라는 이름이 주는 기대감과 그 때 그 아이는 어찌된것인가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스티븐 킹의 닥터 슬립은 킹식 글쓰기의 본질이 훌륭하게 드러난 작품이며, 그의 여러 걸작에 드러난 장점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마거렛 에트우드

마거렛의 추천사는 요즘 말로 "닥치고 정독!"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킹식 글쓰기>라니..그의 장점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니..

 

두 권이라는 분량이 주는 압박감은 차후의 문제였다. 어쨌든 읽어내리기 시작한다.

오버룩 호텔에서 살아남은 어린 댄,그의 특별한 능력으로 호스피스 일을 하며 사람들을 평온하게 죽음의 세계로 인도한다.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은 댄. 그가 강력한 샤이닝을 가진 아브라와 샤이닝의 기력을 먹고 사는 초능력 집단 '트루낫'과 만나게 되는 것. 그들과의 목숨을 건 싸움. 아니 전쟁을 겪어내는 것이 주요한 이야기의 골자이다.

킹의 글은 괴기스러움과 잔혹함을 넘어서는 여유를 지니고 있다. 소름이 끼치는 대신 긴장을 하게 한다. 또한 때때로 어떻게 될것인가 집중하고 있던 순간, 누군가 내 생각을 읽어내는 건 아닐까? 주변을 둘러보게 한다.

어쩌면 따스하기까지한 스릴러 판타지. 썩 잘 구성되고 현란하며 집요한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긴 숨을 내쉰다. 멍하니 올려다본 천정에 엔딩 크레딧이 멋지게 올라가는 건 아닐까..싶을 만큼 오랜 잔상이 남기도 한다.

 

개인적 취향으로..좀비나, 벰파이어, 외계인이 나오는 글이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초능력자 포함해서..

완전히 신화적이거나 완전히 현실적이지 않으면 깔끔하게 감상이 수습되지 않는 성격과 내가 믿지 못하는 것들에 현혹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닥터슬립을 읽으면서는 몰입이 된것이다.

조이스 캐럴 오츠에 매혹되었던 때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소설에 매혹되는 원인이 무엇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치밀함이다.

최소한 내가 거부하는 현상이지만 그럴 수 있다고 치고, 어디 한 번 보자..라는 나의 건방진 자세를 보기 좋게 깨어내는 필력과 치밀함, 어느 하나 허술하지 않아 반격하거나 폄하할 수 없는 치밀함. 그것이 존재할 때, 나는 온전히 매료된다.

 

닥터 슬립은 그런 글이었다. 환상체험을 한 것 처럼말이다. "킹식의 글쓰기" "그의 장점이 모두 발휘된"이라는 추천사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이다.

 

후텁지근하고 끈적한 여름 날, 이렇게 해도 집중이 안되고 저렇게 해도 시원해지지 않을 때, 아무렇게나 누워 펼쳐보면 그대로 시간과 공간을 틀어쥔 채 타임슬립을 결험하게 되는 것이다. 과한가? 아니, 정말 그렇다.

 

 

# 2. 생각을 지켜라.

 

샤이닝을 고문하고 그들의 기력을 먹이로 삼는 트루 낫. True Knot. 왜 하필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를 생각했다. 진짜 매듭, 진짜 고리? 선과 악의 고리, 평온과 파멸의 고리, 그 사이에 어찌할 수 없는 알력의 매듭. 그것을 풀어내는 것이 삶의 전쟁이 되어지는 걸까? 그래서..그들을 트루 낫이라고 명명하게 된걸까?

언제나 부수적인 내용들에 집착하는 나의 독서법은 또다시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힌다.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고, 누군가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읽어낸다.

누군가 죽었고, 그를 잃고 아파하는 사람과 떠나지 못하는 사람을 누군가 보고 있다.

이것이 축복인지 저주인지..

이야기가 진행되어지면서 여러 드라마와 영화들이 겹쳐지기 시작했다.

고스트 위스퍼러, 리스너, 언더 더 돔, 그린 마일, 히치콕..

어쩌면 하나같이 내가 믿지 못했던 것들이다. 저럴 수는 없어. (히치 콕은 예외다. 그는 언제나 존경의 대상이므로..). 혹은 영화니까, 드라마니까, 라는 말로 치부해버렸던 것들이 자꾸 눈에 밟히는 것이다.

극작가로서 스티븐 킹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여튼 누군가 내 생각과 기억을 헤집고 있다는 사실, 혹은 내가 잊고 있던 기억까지 짚어낸다는 사실이 가능한 일이라면 이것처럼 섬뜩한 일도 없겠구나 싶어졌다.

때론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으면 좋겠어..하며 자신의 기억 제일 어두운 곳에 가장 은밀하게 숨겨두고 싶은 기억, 혹은 생각들이 있다. 그것을 내 허락도 없이, 아니 나 자신조차도 모르게 누군가 엿보고 있다는 건..무서운 일이다.

샤이닝은 과연 축복일까?

 

# 3.

아주 잘 짜여진 설계도이다. 따라서 가다보면 무엇을 만나든 체감도는 기대 이상일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뒹굴거리며 누워서 혹은 엎드려서 한숨에 후루룩 읽어냈다.

저녁부터 다시 저녁이 되는 시간까지.닥터슬립을 따라 긴 여행을 했다. 피비린내가 넘쳐나는 그 길이 인상적이었다.

자칫 질려버릴 것 같은 지점에 예기치 않게 나타난 유머코드 또한 훌륭했다. 거친 오프로드를 달리다 만나게 되는 안정적인 길처럼, 혹은 적당히 그늘이 지고 바람이 부는 길처럼 말이다.

 

(도와줄 수 있지. 부탁이야. 닥터. 도와줄 수 있지.)

그렇다 그는 도와줄 수 있었다. 그것이 그의 서약이자 그가 태어난 이유였다. (...)

 

(가지마)

'안 가." 댄이 말했다. "여기 있어. 당신이 잠들 때까지 여기 있을거야."

 이제 그는 두 손으로 칼리의 손을 맞잡았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잠들 때까지."

(p406)

 

하지만..누군가 꼭 읽어주었으면 하는 기억과 생각도 있다. 가끔은..

닥터 슬립처럼 내 손을 맞잡고 내 생각을 들어줄 그런 사람이..있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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