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공중 곡예
다이 시지에 지음, 이충민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 1. 왜 하필 공중곡예일까?

 

프랑스어로 쓴 중국인의 글을 한글로 번역한 매우 오묘한 글이다. 작가는 프랑스인들이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고 했고, 번역가는 최대한 동양적인 정서를 넣으려고 숨죽였다고 한다. 글의 탄생부터가 녹록치 않다.

어릴 때 서커스를 보러 간 적이 있다. 동춘서커스처럼 커다란 천막 안에서 하는 제대로 된 서커스는 아니고, 아마 유랑극단이거나 사이비 약장수들의 공연이었을게다. 다행스럽게도 규모가 작은 서커스에서 공중 곡예사가 곡예를 펼치는 걸 볼 수 있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그네를 타다 홀연 날아올라 공중제비를 넘고 다른쪽 그네에 매달린 남자와 손목을 엇갈려 잡는 묘기는 어린 눈에도 모골이 송연해질만큼 조마조마한 곡예였던 것이다. 몸에 딱 붙는 얇은 타이즈와 얄궂은 장신구를 이리저리 붙인 여자 곡예사는 가난한 선녀였을거라고 어린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돈을 벌러 서커스단에 있는걸꺼라고 말이다. 내 손을 끌고 굳이 서커스를 보러갔던 사촌오빠도 공중곡예 이야기를 했다.

여자 곡예사의 몸매와 아슬아슬했던 옷차림과 농염한 눈빛을 친구들과 방에 모여앉아 손짓 발짓 하며 떠들어댔다.

 

공중 곡예란, 그렇게 꿈이며 환상이며 또한 농염한 것이었다. 화려하며 궁색한 것이기도 했으며, 갈채를 받지만 수모를 감내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을 <공자의 공중 곡예>라고 한걸까? 어쨌든 참 그럴싸한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2. 탱탱볼처럼 어디로 튈지 모를 이야기

 

명나라 황제 정덕제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가 주인공이라는 말이다. 황제의 이야기.

죽음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을 가졌던 황제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대역 네명과 늘 동행한다. 나루토의 분신술 같은 효과를 기대한걸까?

걸음걸이며 말투, 얼굴에 마마자국까지 똑같은 다섯명 중 진짜 황제를 구분해내기란 불가능했다. 그들을 구분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좋아하는 음료였다. 환관들은 이들을 이렇게 칭한다.

 

 물을 즐기는 황제는 유유수종(類類水宗)

 차를 즐기는 황제는 유유다종(類類茶宗)

 술을 즐기는 황제는 유유주종(類類酒宗)

 유유를 즐기는 황제는 유유유종(類類乳宗)

 꿀을 즐기는 황제는 유유밀종(類類蜜宗)

 

이들을 유유오종(類類五宗)이라 부르는 것이다.

어디를 가도 같이 움직이는 이들 속에 진짜 황제가 있다. 아편을 하고 색을 밝히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황제가 말이다.

늘 그렇듯 불길한 징조는 하늘에서부터 온다. 별빛이 달라지거나 흐릿해짐으로 변고가 시작되고, 화를 피하기 위해 황제는 은밀히 제를 지내러 떠난다.

물론 닮은꼴 넷과 함께.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감히 상상도 안되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길 위에서, 혹은 여정에 만나게 되는 상황과 사건들이 주는 매력은 호기심에서부터 출발한다. 무엇을 만나고 무슨 일을 겪을것이며 어떤 음모가 있을까, 하는 것들..

게다가 이건 온갖 권모술수가 나온다고 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황제의 이야기지 않은가.

황제가 겪게 되는 이야기는 유희이다.

그래서 놀랍고 그래서 엄청나고 그래서 신선하다. 날것처럼 펼쳐지는 적나라한 이야기는 책을 읽는 내내 미묘한 웃음을 흘리게 하고, 저 혼자 붉어지는 얼굴을 통해 얼마나 노골적이고 질펀한지를 증명한다.

그래서 황제는 어떻게 되는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되는가?

글쎄..

 

 

#3. 가짜와 진짜 사이.

 

   프롤로그

 

 

  어느 날 황제가 복관(卜官)에게 물었다.

 "내 닮은꼴 대역들이 내 생각마저 따라 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마침내 내가 마음의 평안을 얻겠는가?"

 복관이 대답했다.

 "폐하, 그렇지 않사옵니다. 그날이 오면 폐하는 그 대역들의 대역이 될 것이옵니다."

 

(p13)

 

순간적으로, 남녀노소가 모려들어 해변에 무방비로 누워 있는 고래를 해체하는 장면이 눈앞을 스친것이다.

 그 일시적인 영상은 즉시 사라졌다. ( .....)

 '그 고래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내 대역인가, 아니면 나 자신인가?'

 

(p241)

 

자신과 똑같이 생긴 가짜들 사이에서 죽음의 공포를 피하고, 가짜들이 자신의 흉내를 내는 것을 보며 진짜로서의 우월감으로 그들을 조롱하던 그는, 15장에 이르러 <가짜 닮은꼴 대역>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워지기 시작한다.

진짜 황제 = 가짜 닮은꼴 대역 것이다.

굳이 황제폐하라고 칭하지 않고 '가짜 닮은꼴 대역'이라 하는 것은 무슨 연유였을까?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의 구분이 필요했던 것일까? 진짜 같은 가짜와 가짜여도 상관없는 진짜 중에 좀 더 가치있는 것은 무엇이었으며 그 가치는 어떻게 주어지는 것인지 자신에게 묻게 되는 것이다.

 

주위로부터 소외될까 두려워 자신과 닮은 사람들을 찾아 그 무리에서 안정을 찾으며 그 속에서도 조금 더 닮은 사람, 조금 더 진짜 같은것을 탐닉하며 조금이라도 다른것을 발견하면 비웃음과 조롱을 던지고 '우리'이기를 거부하는 것. 어쩐지 황제의 유유오종을 닮은것도 같다.

"나"라는 유일무이한 것이 "나"로서 살아내고 "나"로서 평가받는 것은 몹시도 두렵고 떨리는 일이지만, 비슷한 것 속에 숨고 싶지는 않다.

 

#4. 비밀

 

번역을 하신 이충민님은 옮긴이의 말을 통해서 온갖 사료들과 자료들이 나열되어 신빙성으로 중무장한 이 내용들이 사실은 소설적 장치였으며 그 어떤 하나도 진짜는 아니었다고 한다. 텍스트 속의 텍스트..라고 표현하신 부분에서 정말 유쾌하게 웃었다.

소설을 다 읽고 "이제야 다 읽었네 "하고 거드름을 피우는 독자에게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는 마지막 장치. 화룡점정이었다.

또한 이 소설에는 아주 유명한 작품의 패러디, 아니 패러디를 넘어 표절에 가까운 희롱도 별것 아니라는 듯 쓰여진다.

현실계와 비현실, 사실과 허구, 진담과 농담.

이 모든것이 어우러져 정신을 쏙 빼놓는다. 그렇게 웃다 고민하다를 반복하다 탈진한 내게 책은 묻는다.

 

"넌 진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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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3 11: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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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13 15: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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