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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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들의 도서관.
박물관도 아니고 "도서관"이다. 이 얼마나 획기적이란 말인가?
소리를 빌릴 수 있다는 것.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모여 있다는 것. 그럴듯하게 악보를 뛰어다니는 소리들이 아니라 본래의 소리들이 모여 있는 도.서.관.
정말 멋진 곳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매우 유쾌하다. 그래서 화가 났다.
"나는 왜 이토록 유쾌하지 못했는가!" 하면서 말이다.
 
 
여덟개의 이야기가 기차처럼 줄줄 연결되어 있는 이 책은 내내 즐겁다.
책의 마지막에 들어있는 일러스트라고 해야하나? 쨌든 삽화일 이것에 "악귀들의 도서관"이라고 적은 의도된 것이 분명한 오타에 폭소가 나왔다. 저 표정은 또 무어란 말인가.
 
 
                   <악기들의 도서관을 읽기 위한 매뉴얼>
 
1.이 책을 읽는 동안은 빈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끼고 읽기를 권합니다.
귀를 모두 막고 책을 읽다보면 책 속의 소리들이 들릴 것입니다. 책장을 넘기기에 적당한 타이밍과 리듬을 느끼게 될 것이고, 귀를 막았을 때 보이는 소리의 흐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엇박자D의 무성영화처럼 그저 철로가 이어지다 끊어지다 하는 장면의 연속만으로도 우리는 환청같은 기차소리를 듣게 되는 소리체험(?)을 하게 될테니까 말입니다.
 
2. 악기 도서관에 회원으로 꼭 가입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소리는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 시타르의 현 하나를 조용히 뜯었을 때 나는 소리래요(p135)"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될테니까요.
꼭 시타르의 소리를 빌려보시길 바랍니다.
 
3.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려고는 하지 마십시오.
책을 읽다보면 "오오~~ 이거 좋은데?"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려고는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새로운 것은 어디에도 없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누군가, 의 영향을 받은 또 누군가, 의 영향을 받은 누군가, 가 그 수많은 밑그림 위에다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그 누군가의 그림은 또다른 사람의 밑그림이 된다"(p105)는 말에 동감하거든요.
소리도 마찬가지에요. 새로운 소리란 없을겁니다. 우리가 귀기울여 듣지 못한 소리들이 <발견>되어지는 것 뿐일겁니다. 호주머니 속에 오래 묵은 먼지도 재채기를 하더라구요. 진짜냐구요? 눈감고 들어보세요.
 
4. 이 책은 책장에 꽂아두지 마세요.
엇박자 D의 노래처럼 다른 책들이 서서히 박자를 잃고 음정을 잃어버릴 수 있을테니까요.
 
5. 이 책을 읽고 따라하고 싶은 것들이 많겠지만 그러지 마세요.
책을 읽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리듬을 타고 비트박스를 하고 흥얼거리기도 할것이고 다리를 덜덜 떨게 될지도 모릅니다. 신나거든요.
게다가 매번 떨어지는 면접을 보는 두 친구의 유쾌한 반전도 간절히 따라해보고 싶어질겁니다. 유쾌하거든요.
 어딘가에서 멋진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풀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쿨하거든요.
하지만 그러지 마세요.
그건 남의 소리를 빌리는 것일테니까요.
적어도 이 책을 읽었다면 자신의 소리를 만들고 그 샘플을 악기들의 도서관에 기증할 정도는 해야되지 않겠습니까?
 
6. 자신의 소리를 찾았을 때 예쁘게 올려놓을 "사랑" 하나쯤 준비해두시길 바랍니다.
자신의 소리를 같이 들어줄 친구, 자신의 소리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줄 사랑, 그런 친구와 사랑과 사람으로 우리들의 삶은 멋진 소리들로 가득 들어찰 것입니다.
불협화음처럼 보여도 제각각의 진정성이 드러나는 소리는 아름답습니다.
<사람>이라는 커다란 테마 안에서 기분 좋게 합주될 것 이니까요.
 
 
개관 :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때
폐관 : 600개의 비닐레코드의 선택이 끝날 때
 
 
* 주의 : 음주가무를 지향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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