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됭의 마귀들림 - 근대 초 악마 사건과 타자의 형상들 문학동네 인문 라이브러리 6
미셸 드 세르토 지음, 이충민 옮김, 이성재 감수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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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다. '빙의'라던가  악마라는 말이 아닌 "마귀들림"이라니, 생경하게 다가오는 제목이다.

이 책의 맥락에서 악마 사건은 마녀 사건(혹은 마법사 사건)과 마귀들림 사건을 포괄하는 용어(p11)라고 미주가 달려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단순히 대규모 마귀들림 사건에 따른 구마의식에 대한 보고서일 것인가?

그 시작은 그렇게 보인다. 어느 날 갑자기 마귀들림이 시작된다. 그것도 대규모로, 그것도 수녀원에서. 이 엄청난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모든 권력들이 루됭으로 집결한다.

재판이 시작되고 모든 증거와 취조의 과정을 제출된, 혹은 발견된 문서들을 중심으로 사건의 진행을 보여준다.

 

초현실적인 심령의 문제 혹은 신앙의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역사"의 문제이며 "헤게모니 싸움" 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이미 권력을 갖고 있는 세력들에 의해 꾸며지고

감추어지며 대다수의 시민들에게 보여지는 연극처럼 말이다.

그들이 정말 마귀들림의 대상이었고, 실제로 마귀에 들려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귀의 언어와 체계를 흔들어 비로소 그들의 의도를 알아내고 구마의식을 통해 조종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다수 시민들의 언어와 체계를 흔들어, 그들을

지배하고 통치하기 위한 성동격서의 전술은 아니었을까? 요즘 말로 해서 '물타기' 같은..

 

# 2.

(성 앙투안의 유혹-환영은 세계에 관한 주체의 생산물인 동시에 세계에 관한 주체의 자각이라는 위험한 양면성으로 규정된다)

 

이상한 것들은 보통 우리 발밑에서 은밀히 돌아다니게 마련이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기만 하면 이들은 홍수라도 난 것처럼 곳곳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 사회를 위협하는 어떤 힘이 덮칠 기회를 노리며 웅크리고 있다가 사회의 긴장 상황을 틈타 잠입하는 것이다. (-) 그 힘은 울타리를 부수로 사회의 배수로를 범람하고 길을 뚫는다. 나중에 물이 빠지면 그 길 끝에는 다른 풍경, 다른 질서가 나타날 것이다.

이는 이질적 요소의 침입인가 아니면 어떤 과거의 반복인가?  (p9)

악마의 발현이라는 위기 상황은 한 문화의 균형이 깨졌음을 폭로하는 한변 그 변화 과정을 가속화하기도 한다.

 

'마귀들림'은 루됭을 다섯달동안 짓밟은 흑사병의 후속탄이었을지도 모른다. 수녀원에서 유령이 처음 '출현' 하는 것은 1632년 9월 말, 루됭에서 흑사병의 마지막 사례가 보고된 시점의 일이다.

집단적 마귀들림의 발현과, 신학과 과학과 왕권의 서로 다른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저마다의 치밀한 설전과 증거의 제시. 이 치열한 과정을 작가는 한 발 물러서서 하나씩 짚어가며 기술해낸다. 마치 잘 짜여진 연극을 관람하는 날카로운 관객처럼 말이다.

 

누가 누구에게 마귀들렸는지를 아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마귀들림에는 '진실한' 역사적 설명이 없다. (-) 마귀들림은 집단에서 개인으로, 악마에서 국가이성으로, 악마학에서 독실한 신앙으로 이동한다. 이 필수적 작업의 과정은 끝이 없다. (p383)

 역사의 형태로 보면 이는 사실이다. 마귀들림의 시대는 죽은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역사 서술의 구마의식은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인식론적, 사회적 규준들의 불확실성과 그러한 규준들을 확립할 필요성 때문에 루됭에서 가동된 메커니즘은 오늘날에도 다른 '마법사들'을 상대로 찾아볼 수 있다. 여전히 어떤 그룹은 마법사들을 축출함으로써 자신을 규정하고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특정 시기에 결부된, 즉 종교적 규준에서 정치적 규준으로, 우주론적 , 천상적 인간관에서 인간의 시선에 의해 분류되는 자연물들의 과학적 체제로 이행하는 시기에 결부된 루됭의 마귀들림 사건은 (-) 옛날의 악마 사건과는 달라도 그에 못지않게 우려스러운 타자의 새로운 사회적 형상들이 떠오르자마자 제기되는 문제를 향해 길을 열어준다.(p384)

 

# 3.

참 방대한 자료의 시기적 나열이라고 보아도 좋다. 진행 방향에 따라, 진행 순서에 따라 수집된 자료들을 배치하고 그 연관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루됭의 마귀들림이 일어난 시기의 유럽의 정치,사회적 불안정성과, 신학,과학,왕권의 서열다툼의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런 자료의 나열이 무슨 흥미가 있으며 어떤 몰입도를 가질 수 있을까 싶지만, 이 책은 진짜 마귀들린것이 분명하다. 그 촘촘한 사이사이의 긴장감 마저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게 보여지는 것이다.

루됭의 높은 곳에서 항공뷰로 내려다 보고 , 로드 뷰로 사방을 돌아가며 보듯이 말이다.

과거 교회가 갖고 있던 권력을 수호하려 하다보니, 구마의식은 점점 더 스펙타클 해지며 연극화가 강해진다. 이 연극화는 어떤 중단의 산물이고 상실의 부인의 증후이다. 권력의 재현은 권력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 - 혹은 이미 잃었다는 불안-을 드러내다 보니 더욱 극적이 된다.

그들의 언어와 체계의 혼란을 새로운 언어와 체계로 대체해 나가는 과정이므로 더욱 치밀하고 절박할 수 밖에 없진 않았을까?

 

# 4.

 

어떤 세력이 정치 사회적으로 주도권을 쥐고자 한다면 전략적으로 기존의 판을 깨고 새로 판을 짜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전의 판은 자신들의 언어로 말해지고 읽혀지는 것이 아니므로 자신들의 언어를 알리고 체계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크고 확실한 판을 짜야만 한다. 쉽게 말해 난장을 쳐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판은 자신들이 뛰어들어가 주연이 되는 판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조력자의 모습으로 정당성만을 획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권력의 지팡이를 들어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연극은 배우들이 해야한다. 배우가 사회적 파급력이나, 궁금증을 유발하는 다수의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는 신분이라면 더더욱 좋은 일이다. 그런 이들을 섭외해야 한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서 한번에 상황을 제압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파급력을 갖는 것은 없을테니 말이다.

 

우리도 이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아직도 마귀들림은 진행중이다.

우리는 어쩜 이데올로기라는 마귀들림을 겪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단되어진 상황에서 저들의 언어로 대답하지 않는다고 "마귀들림"판정을 내리고  혹독한 구마의식을 거치며 자신을 놓아버리도록, 자신의 언어를 잊어버리도록 하는 것은 아닌지..

구분짓고 나누며 자신의 언어를 앞세워 타인의 언어를 종속시키고 그로부터 주도권을 빼앗는 것은 아닌지..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아타(我他)의 역관계가 힘의 논리로만 풀리는 것이 아니란걸 알텐데도, 지금 판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은 요란하기만 하지 어떤 해결책도 내어주지 못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사회.

어쩜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마귀는 광폭한 매카시즘이 아닐까?

스스로 구마사이자 마귀들린자를 1인2역 하려는 상황 속에서 타자에 대한 배려는 없다. 그저 순순히 저들의 언어에 익숙해지라고만 한다.

 

#5,

참 재미있는 책인데..어찌 정리해야할 지 모르겠다.

너무 방대해서..

카톨릭이나 중세에 대한 이해가 많으면 좀 더 수월하고 깊게 읽힐 것도 같다. 대천사와 마귀의 급을 비교하는 부분도 재미있던데..

 

여튼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다. 이런 책은 좀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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