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 1.

알츠하이머..내 머릿속의 지우개..손예진..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앓게 되는 연쇄 살인범의 이야기다. 표면적으로는 ..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그때까지 나를 추동한 힘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살인의 충동,변태성욕

따위가 아니었다. 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 희생자를 묻을 때마다 나는 되뇌이곤 했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거야.

내가 살인을 멈춘 것은 바로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라는 말로 시작된다.

살인이라는 것이 <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으로도 가능하다는 것.

얼마나 매력적인 가정이란 말인가. 복수도, 치정도, 재물도 아닌 한 사람의 판타지를 만족시켜 주는 살인이라니..

사실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 살인하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소재가 아니던가? 익숙할 법도 하다. 대략 몇가지의 사건들과 메멘토 같은 영화를 접목시켜 가이드라인을 미리 정해보기도 한다.

익숙하기에 더 호기심이 동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익숙한 그림에 눈이 가듯 말이다. 결국 다른 그림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그럼 그렇지' 하게 되는 .. 익숙한 것에서 시작하는 반전이 흥미로운 까닭이다.

낯선 것에서 일어나는 낯선 반전은 밍숭맹숭하다. '아..이게 반전인거야?' 하는 맹추같은 소릴 해야하니 말이다.

 

 

#2.

좋아하던 드리마의 한 장면.

사건의 단서를 얻기 위해 연쇄살인범과 거래를 한다. 그가 필요한 대답을 회피하자 수사관은 그가 전리품인 사체의 사진이 담긴 앨범을 불태우려 한다. 어떤 회유도 통하지 않던 그는 앨범에 붙은 불을 보고 경악하며 소리친다. "원하는게 뭔가? 제발 앨범만은.."

협상의 우위를 점한 수사관은 필요한 정보를 얻어내고 그에게 앨범을 돌려준다? 아니 돌려주지 않는다. 그럴듯한 말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고 그의 판타지를 빼앗은 채 돌려보낸다. 차라리 죽이는게 낫다. 그의 자랑이며 행복을 빼앗겨버렸으니 말이다.

 

어쨌든 늙고 기억을 잃어가는 연쇄살인범.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과 인물과 환경들의 끝없는 충돌과 오해 사이에서 그는 어느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된다.

그와 나. 모두 어느것이 진실인지 어느 부분에서 마음을 놓아야 할지를 놓치게 된다.

아무리 열심히 틀어쥐어도 자꾸만 어긋나는 그의 기억처럼 어느 순간부터 나는 삐걱거리게 된다.

이 사람은 알츠하이머 환자다.

그의 말을 믿어선 안된다.

하지만, 그는 얼마나 치밀한가.

결국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그의 이야기를 믿게 되는 것이다.

 

 

#3.

언젠가 [소년 탐정 김전일] 이라는 만화를 빌려서 본 적이 있다. 너덜해지고 지저분한 책, 그래도 빌려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더러워도 뭐..정말 참을 수 없는 건 시작부분의 말풍선 속에 누군가 무례하게 적어둔 "얘가 범인" 이라는 스포일러.

"아~씨!"

하지만 어쩌겠는가 읽어가는 수 밖에. 읽는 내내 나는 A가 범인이라고 했던 그 암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모든 증거와 정황은 A를 가르키고 있었고, 그가 범인이 아닐 이유가 없었다.

A를 범인이라고 결론내리며 나는 스포일러를 감행한 그 신원미상의 무례한을 한없이 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범인은 B였다.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 그 신원미상의 무례한의 말풍선은 다시 등장한다.

"B가 범인이라는 단서를 찾긴했어?"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다시 처음부터 읽는다. B는 느닷없이 나타난다.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이었고 그의 알리바이는 허술하기 짝이없다. A는 모함일 수 있는 장치들이 있었다. 다 놓친것이다.

왜? A가 범인이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나는 그 신원미상의 무례한 덕분에 정말 흥미진진한 김전일을 읽었다.

이런 것은 아니었을까?

김병수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이다!

이것이 스포일러일까? 반전의 장치일까?

 

#4.

대다수가 빨리 읽혀지는 책이라 했다.

나의 독서습관 탓이겠지만..나는 빨리 읽혀지지 않았다. 행간에 배치된 내용이 무얼까? 갸웃거리다 사념들에 치여 책장을 덮곤했다. 그의 문체는 힘차고 거침없다.

이렇게 직선적으로 내리꽂히는 강렬함을 마지막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그의 내공이며 실력이다. 필력이라 해야하나?

그래서 버거웠다. 어느 지점에서 숨을 돌려야 할지 알 수 없었던것처럼 말이다.

단숨에 읽고 나면 반드시 호흡곤란이 올게 분명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사람과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거라는 것이 내내 든 생각이다.

이건 '시간'의 이야기다. 또한 '존재의 의미'에 대한 고찰이다.

그래서 쉬이 읽히지 않고 자꾸만 무언가 목구멍에 턱턱 막히는 것이다.

뼈를 다 발라내지 않고 급하게 우물거려 삼키는 갈치조림처럼 자꾸 목에 걸린다.

 

#5.

기억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우리는 다분히 기억에 의지하고 살아낸다. 그 기억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조작되어진 기억이라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기억은 늘 긍정적이다. "나는 참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있다"는 귀결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적당한 타협과 재배치를 통해서 ..

물론 아프고 시린 기억들도 존재하긴 한다. 어둡고 악한 것들..그건 단지 해바라기의 그림자의 역할일 뿐이다. 적극적으로 그것을 드러내진 않으니 말이다. 그 또한 몇가지의 그럴듯한 변명을 덧입혀 [좋은 사람]이 되기위한 밑거름 쯤으로 미화되기도 한다.

기억을 믿는가?

자신의 기억이 정확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아니 최소한 객관적이기는 한건가?

 

묻고, 묻고, 또 물어본다. 자신없는 대답들이 서둘러 준비된다.

제법 진정성이 있었노라 변명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6

처음부터 모두 있었거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다.

 

기억에 기댄 채 사라지는 것인가? 기억에 기대어 살아지는 것인가?

 

묻는다. 내게.

묻는다. 네게.

 

#7

무엇을 말하건 새어나가게 될 비밀.

나는 차라리 함구한다. 다만 읽어보라고, 읽되 천천히 숨은그림 찾기를 하듯 읽어보라고 귀뜸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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