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문학동네 시인선 38
오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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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요즘 호흡이 딸리나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얇디 얇은 시집 하나 읽어내는 데 이렇게 숨이 가쁜것일까?

아니면, 읽을 책을 선택함에 있어서, 계획없이 마구잡이로 읽어대는 습관때문인지도 모를일이다.

 

가끔, 이런 사람들이 있다.

-술 좀 하세요?

그럴때 아주 요상한 대답을 하는 이가 있다.

-아..전 술 못해요. 그냥 그 분위기가 좋아서, 술 마시고 서로 이야기하는게 좋아서 끝까지 따라가긴해요.

이 무슨 민폐 찜쪄먹는 소리란 말인가? 나는 이런 사람이 정말 싫다. 서로 느끼는 흥의 농도가 조금씩은 다를 수 있지만, 색은 맞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나는 자꾸만 취해서 총천연색의 흥이 나오고 있는데, 그래서 이색인지 저색인지 구분도 안되고 있는데, 저는 마주 앉아 또렷이 색을 구분하고 있으니 말이다. 취하는 것도 예의일게다. 특히나 분위기가 무르익을때는..

분위기란 어떤것일까? 어떤 분위기를 말하는 것일까? 시작은 그랬다.

 

나는 <오 은> 이라는 사람이 쏟아놓은 퍼즐을 주워 담고 이리 저리 맞춰도 보곤 한다.

가장 자리부터 맞추어 보는것이 퍼즐 맞추기의 정석. 근데 이 사람 무척이나 주도면밀하다. 퍼즐의 모양이 고정체가 아닌 유동체다. 어디에 놓든 저마다 필요한 모양으로 들어앉아 있다.

-여긴가?

-네, 여기 맞아요~

-아닌데? 여긴가?

-여기도 맞아요.

-어떻게 그래? 여기면 여기고 저기면 저기지?

-아, 꼭 그래야 하나요? 여기도 되고 저기도 되고 ..

이런 식이다. 문제는 이런것이 짜증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체크메이트 상황인데도 슬슬 웃음이 나오며 묘책이 있겠지? 어디지? 어디야? 하고 찾게 되는 것이다. 이런..

 

책 하나를 읽는데 국어 사전을 옆에 끼고 읽어야 한다는것, 내가 알고 있는 한 단어 한 의미의 저열한 의미조합으로는 도저히 풀어내지 못한다는 것, 블록버스터 버금가는 다양한 '말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 . 마치 사방에 활자가 붙어 있는 디스코 팡팡을 타는 기분이다. 시작~하는 순간 여기 저기서 떨어져 내리는 유동성 활자 퍼즐을 머리 산발한 채 숨 헐떡이며 그러나 신나고 재밌게 들어올려보고 던져보고 하는 놀이같은 책읽기 말이다.

<작은홍띠점박이푸른부전나비-이 이름을 다 제대로 부르려면 오래 들여다 봐야겠다. 이름 부르는 동안 날아가지 않기..>

 

"인과율", "부조리"  "Ratman" 등은 많이 인용되기도 하는 듯 하다.

나는 그의 <베이스>에 꽂혔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읽어 본다.

 

[ 베이스 ] -- 오 은

 

나는 던진다.

너는 때린다.

 

출발이 불안하다

 

나는 재빨리 줍는다.

그리고 던진다.

너는 약빨리 달린다.

그리고 미끄러진다.

 

너는 살아남고

당분간 우리는 거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중략., 미안하게도 길다..)

 

우리는 불안하고

우리 사이에 그가 끼어들 자리는 충분하다.

 

담장과 손잡고

나를 좌절시키는 법을 알고 있다

 

너는 나를 지나치며 휘파람을 분다 나중에

은밀한 곳에서 그와 진한 포옹을 나눌지도 모른다

 

환호성이 소음으로 변하고 있다.

아무래도 오늘밤 집에 가는 길엔 조심해야겠다.

 

그런데 너는 대체 며칠만에 집에 들어왔는가

나는 등 돌려 널 맞이할 준비가 아직 안 돼 있는데

 

(한 번 더 중략)

 

언제든 갈라설 준비가 되어 있다는 듯이

 

우리는 속으로 아웃을 크게 외치며

서로를 잠시 노려본다.

 

수년간 쌓아왔던

우리의 토대가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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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위기는 뭔가?  baseball을 끌어들여 서로간의 base가 허물어지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는가?

기초 base.  여기까지 이해하고 혹시나 해서 뒤적여 본다. 이런..base는 비도덕적인, 야비한의 의미 또한 가지고 있다. 이럴 줄 알았다. 그래야 좀 더 처절한 맛도 나고 좀 더 이해도 되고 하지 않겠는가.

 

내내 이 사람은 천재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적절한 언어의 조합과 분해 배치, 그게 의미일 때도, 끊어읽기 일때도, 리듬일때도 제각각 다르다. 천재가 아니라면 타고난 놀이꾼이다.

 

물론. 읽다보니 어느 순간 익숙해져서 <이것은 파이프다> 에선 나름 추리를 해보기도 했다.

"이것은 참이다" 라고 읽는 순간, 참? 명제인가? 그렇담 가정과 결론, 증명의 과정이 나오겠군, 가정? If? 설마? 아냐 가능해. 이건 If가 나올 타이밍이야. 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발랄하지만 가볍지 않고, 유쾌하지만 천박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까지 하려면 얼마나 쓰고 다듬고 던지고 받고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괜스리 '나는 이만큼 고뇌했소~' 대놓고 무게땅 잡는 것에 비하면 백만배는 맘에 든다. 문제는, 독자가 너무 괴롭다는거다.

대충 이해하고 넘어가기엔 독자의 자존심이란 것도 있는거다. 이렇게라도 핑계가 될만한 것을 걸어두지 않으면 안될것 같다. 왜냐하면 언젠가 꼭 다시 읽을게 분명하니까 말이다. 빠른 시간안은 아닐것이다. 저 오렌지색이 노랗게 되기 전엔 다시 보겠지.

 

 

오렌지색 책, 그 안에 쌓인 활자들이 은하수처럼 와르륵 쏟아져 내리는것 같아. 하지만 일부러 받아두진 않을생각이다. 어차피 제멋대로 일건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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