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을 점점 잃어가다 이제는 전혀 보이지 않게 된 작가 조승리의 세상을 읽는 법. 작가가 감각하는 세상은 직관의 결과보다 풍성하고 입체적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건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남긴다. 그 순간을 기록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기록을 넘어서는 건 '감각'의 힘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을 온전히 온 몸 구석구석에 새겨두면 내 감각 하나가 사라진대도 그 감각은 고스란히 남을거니까. 작가의 일상과 여행을 담은 글이다. 전작(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이 워낙 화제였어서 사실 조금 김이 빠지긴 했다. 뭐랄까..김동식 작가에 대한 초반 화제성이 너무나 대단했던 것처럼. 누구든 그럴거다. 반감기의 기간이 얼마나 긴가의 문제일 뿐이다. 그래도 작가의 '보이지 않아 보이는' 것은 다채롭고 따끈하다. 우리나라에서 장애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거절 당하는 일'이라고 인터뷰했던 내용도 생각났다매립되는 동물들을 보았던 기억은 너무나 선명했고 구체적이었다.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읽어대던 책들, 그 마음도 짚어진다. 최근 읽었던 베토벤을 읽다에서도 결핍과 그 결핍 건너의 이야기들이 빼곡하다. 어쩌면 작가는 어머니의 호쾌함과 당당함, 부지런한 책임감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도 같다. 어쩌면 작가는 이 더러운 세상 굳이 봐서 눈 고생시키지 말고 보이는 것 뒤의 의미와 삶의 근거를 감각하라는 축복을 받은것일지도..우리나라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절박하다. 마사지숍에서 마사지를 하는,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하고 당연시여겨지는 일을 하며 글을 쓰고 세상을 읽는다. 나는 못한다...마음 한 켠이 무너질 때 멍하게 읽기 좋다. 읽다보면 시선이 돌아오고 감각이 깨어난다. 좋다.[ 학살은 붉은 생채기처럼 부르튼 흔적을 남기고 종결됐다. 산 자의 긴 그림자가 도망치듯 일제히 빠져나갔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방금 만들어진 거대한 무덤으로 천천히 향했다. 단단하게 다져진 흙더미 위로 중장비의 바퀴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밭에서는 석유냄새가 강하게 났다. 그 냄새 사이로 숨어 있었던 듯 돼지 분뇨 냄새가 산발적으로 새어 나왔다. 가을 바람이 잠자리 떼처럼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나는 생목숨이 묻힌 둔덕으로 걸어 올라가 바닥에 손을 대보았다. 차가울 거라 생각했는데 손바닥 밑에서 미열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흙바닥에 한쪽 귀를 댔다. 땅속에서는 죽어가는 비명 대신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책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