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우울증 - 죽을 만큼 힘든데 난 오늘도 웃고 있었다
훙페이윈 지음, 강초아 옮김 / 더퀘스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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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많은 것을 말해주는 책이다. 제목만으로 어느 정도의 수긍과 동의가 이루어진다는 건 양면성을 갖는다. 그만큼 공감할 준비가 된 독자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과 수많은 미디어의 정보와 넓고 얕은 지식들을 기반으로 속칭 '뻔 한'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 대신 미리 형광처리 된 밑줄을 그어 놓은 편집은 내 경우는 달갑지 않았다. 독자들의 처지나 취향이나 시각에 따라 밑줄은 다르게 그어질 수 있을테니 말이다. 조금 성가셨다.


미소우울증을 정의하길 '우울증 문제가 있으나 이를 성공적으로 감추고 있는 사람의 심리'라고 한다.

사회와 가정과 자신이 속한 모든 공동체에서 원하는 모습. 우리는 그런 모습을 '보편적'이라고 배우며 살았다. 배려와 감사가 넘치는..아주 어릴 때 형제끼리 싸워도 엄마는 상황이야 어찌되었든 둘의 손을 꼭 잡고 마주 쥐어주며 언니한테 잘못했다고 해. 동생한테 미안하다고 해. 사이좋게 지내자 악수 하고. 사랑해 안아줘야지. 를 주문했다. 내 안에 나의 주장과 요구 그리고 화해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납득 없이 내가 아닌 상대에게 너그럽고 친절해야 한다고 우격다짐으로 배워왔던 것이다.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고 개천에서 용은 더이상 나오지 못하고 한 번 쯤 실패할 수도 없는 시간을 사는 사람들에게 '안정'과 평안'은 화두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적 기반.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 좋지 않은 직장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가능성을 제시해야 살아남는 직장에서 기꺼이 해내야 하는 역할은 힘겹기만 하다. 

하지만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은 없다. 세상은 '나'를 제외하고 화려하고 신나게 돌아가고 있다. 여유로운 삶, 즐거운 삶, 그런 삶의 표정들이 온갖 매체 속에서 보여진다. 나의 서러움과 불안함이 세상에게 들켜서는 안된다는 강박은 방어기제처럼 저절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럴리가 없어.' '그렇게 밝은 사람이?' '함께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

떠난 이는 누구에게도 우울증을 들키지 않았다. 애도하는 이들은 떠난 이의 우울을 들으며 자신의 우울이 아직 들키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이제 너무나 흔하게 말해지는 우울, 마음의 감기라고 친근한 표현도 있는 우울. 하지만 자신의 우울만큼은 들켜서는 안된다.


가르치는 아이 중에 '해피 바이러스'라고 불리웠던 아이가 있다. 아버지와 자매가 산다. 어머니는 아이가 꼬마였을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고 아이는 저보다 더 어린 동생과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버지를 돌보며 자랐다.

아이는 늘 웃었고 아이의 가방엔 늘 과자며 젤리가 그득했다.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러 가도 1/n 보다 조금 더 내는 아량도 보였고 수업시간에도 열심이었다. 학급 임원도 했고 댄스동아리도 했고 한국사연구동아리도 했고 캘리그라피를 배워 엽서를 만들기도 했고 쿠키를 구워오기도 했다. 매 순간 열심인 아이가 신기했다. 사춘기도 없나? 저 아이 정말 대단해. 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그 아이를 좋아했다. 늘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었고, 나 역시 칭찬을 이어갔다. 어느 날 그 아이가 종일토록 엎드려 울기 전까지 말이다. 아이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렸다. 힘들었던 거다. 아무리 괜찮다고 다짐을 해도 더이상은 감출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어떻게 다 잘하고 사니? 여태까지 잘 해왔는데 그것만으로도 대단해' '때때로 울어, 울어야 사람이지 울어봐야 우는 사람 마음도 헤아릴 줄 알게 되는거지' '다 잘하려고 하지만 젤 잘하는 거 하나만 잘 해도 돼.' 따위의 말을 늘어놓았고 안정을 찾기 까지 1년도 넘게 걸렸던 것 같다. 아버지와 상담을 다녔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나의 옆지기는 공황장애 3년차이다. 딸아이의 친구는 항우울제를 먹고 있다고 했다.

우울은 더이상 특정 계층이나 특정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코로나 시국이 길어지며 자포자기의 심정들도 늘어가고 있다. 

책에서는 행복을 부르는 열가지 생각을 말한다.

사실 모두가 알고 있는 우울증 처방을 말해보라고 하고 하나씩 적으면 이 열가지 방법을 다 적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당연하기도 하고 별것 아닌 것 같기도 한 방법. 

하지만 잘 안된다. 그만큼 우리는 우울과 가까이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으며 뚱딴지 같은 생각을 했다. 

우울이 바이러스로 전염되지 않아서 다행이야. 호흡기 정도야 참아줄 수 있는데 우울이 창궐하면 방도가 없을텐데? 

마스크에 스마일을 그리고 다닐까?


오랫동안 웃는 법을 잊은 것 같다. 소소한 행복. 너무나 소소해서 있었는지도 모를 만족과 어려운 현실에 우리는 조금씩 미소우울증을 앓고 있는지도 모를일이다. 어쩌면 미소우울증을 앓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지도 모를일이다.

나는 약한 사람입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그래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라고 요구할 수 있다면..

당신도 내게 기대시겠습니까? 라고 제안할 수 있다면..

우울증은 조금 더 쉽게 걷혀질 수 있을까? 를 생각한다.

" 우울증을 증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이런 노력이 전부 사후에 이뤄진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사람들은 선택적으로 증거를 수집한다. 예를 들면 자살한 사람의 가까운 친구를 만나서 그가 우울증을 앓았던 흔적을 찾아보려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달라질 것이 있을까?" - P28

"세상 사람들은 미소를 ‘힘들지 않다‘, ‘나는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다‘, ‘걱정할 일은 하나도 없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미소를 전부 이렇게 이해하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과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더 안타까운 사실이 있다. 미소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마음 속 고통을 완벽하게 감추지 못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불행한 표정을 들켰을 때, 연약함과 우울함이 밖으로 드러났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슬퍼한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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