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의 궤적
리베카 로언호스 지음, 황소연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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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을 무렵 라디오에서 바그다드 카페의 ost 인 calling you 가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책을 읽고 난 후의 매캐한 바람의 냄새와 서걱이는 모래가 입 속을 구르는 느낌이었다.

인간의 욕심이 독점을 낳고 재앙을 불러온 후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 출몰하는 괴물과 괴물사냥꾼으로 자란 여자와 여자의 주변인물들이 관계를 맺고 풀어나가는 이야기라고 하면 좋을까? 인디언들의 문화와 언어, 그리고 그들의 정신세계, 그들의 뿌리가 되어주며 때론 해결의 지혜가 되기도 하는 인디언 신화들이 구석구석 포진된 이야기이다.

어쩌면 너무 많은 영화나 이야기들을 접했던 탓일까? 이야기는 인디언이라는 정체성을 이야기하지만 자꾸 매드맥스나 그와 비슷했던 대재앙 이후 인간의 삶과 그것을 극복해가는 영웅들의 이야기들과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뒷부분에 나오는 모지의 이미지에서는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하트여왕이 그려지기도 했다.

나는 어쩌면 더 독특한 이야기나 흐름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1.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특별한 태생과 성장배경때문인지 ( 아메리카 원주민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이후 백인 가정에 입양되어 자랐다는) 이질감 없이 서술되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디테일이 살아있다 라고 이야기한다는 건 이런걸까? 싶은 생생한 묘사는 화약냄새와 피비린내를 이내 불러왔고 생고기를 씹는, 정확히는 사람의 팔뚝이나 목을 물어뜯는다는 건 이런 질감일까? 싶은 감각의 자극을 이어간다.

새로 시작한 일들로 집중력은 수시로 흩어짐에도 불구하고 책 한권을 붙들고 후루룩 읽어낼 수 있었다는 건 흔히 이야기하는 가독성이 좋다.라는 반증일 것이다.

섬세한 묘사와 개연성이 납득되는 만남과 복선은 영리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2. 누구를 믿을 것인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믿어야 한다면, 아니 믿게 된다면 그만큼 위험한 도박은 없을 것이다. 매기가 카이를 믿기 시작하는 순간, 위험은 한 발 더 다가와 있게 된것이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사랑 혹은 우정이라 불리우는 것을 믿기 시작하는 것은 큰 용기다. 자신을 믿을 수 없을 때 믿고 싶어지는 누군가. 의심이 되기도 하지만 믿고 싶다는 갈망이 생기게 되는 건 지쳤다는 의미이다. 클랜 파워가 저주인지 축복인지 알 수 없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선 차라리 불행속에 주저앉고 싶어지기도 한다는 데 공감이 되기도 했다. 읽는 내내 매기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녀의 선택은 그녀의 몫일 뿐이지만..

불사신인 네이즈가니. 그녀의 사랑이자 증오의 대상. 내내 그가 궁금했다.

서사로는 선뜻 그려지지 않는 그. 잘 읽어내지 못한 탓인지 나는 아직도 네이즈가니를 잘 모르겠다.

 

3. 선과 악의 구분은..

주술사에 의해 재창조된 괴물들이 살아남은 인간들을 공격하고 그 괴물을 처단하는 역할을 하는 괴물사냥꾼 네이즈가니와 매기. 괴물을 사냥하며 극도의 잔혹함을 보이지만 그것이 정말 악을 응징하는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거슬러 올라가 그 악의 발생의 빌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면 그 악의 근원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또 소위 응징이라고 하는 것에 사사로운 적개심이 보태지지는 않는가에 대한 의문. 괴물을 사냥하면서 점점 복잡해지는 심리는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의심은 아닐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절대적이라는 것은 없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렇다면 상대적이라는 건 과연 용인될 수 있는 적절한 변명이 될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 선과 악을 구분짓는 것은 누구의 몫인가. 그 판단을 하게 된 주체는 과연 믿을 수 있는가. 아니 그 판단에 책임을 질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4. 호불호가 충분히 갈릴

그런 이야기다. 잘 읽힌다는 건 휘발되기 쉽다는 소리이기도 하다(내 경우엔) 속도감과 감각에 이끌려 읽게 되는 글은 어느 순간 꿈처럼 묘연해지곤 한다.

더 많은 인디언 신화들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을까? 라는 아쉬움. 신화를 좋아하는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야만적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다른 것들에 대한 소모(희생)으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다." 라고 했던 니체의 말이 떠올랐다.

 

네이즈가니의 표식인 천둥검에 찔린 상처를 갖게 된 매기.

천둥의 궤적이라는 제목은 네이즈가니로부터 촉발된 이야기가 그가 남긴 상처로 마무리 되는 까닭이었을까?

객관적으로 재미있는 책이다. 여러가지 생각들이 밀려들 공간이 많다.

큰 물과 같은 재앙은 아니지만 세계적인 재앙이 창궐하고 있는 때, 잠깐이라도 살아있다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클랜 파워가 용솟음치며 나이프를 손에 쥐고 화살처럼 괴물의 숨통을 끊어내는 간접경험을 즐기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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