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가 이석을 흉내 내서 다시 물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건 이석이 고안한 농담이었다. 웃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리를 두고 싶을 때 주로썼다.
이석은 언제나 의사에 대해 혹평했다. "그중에서 내가 제일 믿을 수 없는 건 희망을가지라는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의사만큼 악랄한 인간은 없어. 희망으로 병이 낫나. 절망에 빠진 사람한테 돈이나 계속 쏟아부으란 얘기지. 잘 들어둬. 그런 인간한테 속으면 안 돼." 」
"하지만 그보다 더 못 믿을 건 포기하라는 의사야. 그렇게 말하는 의사는 무능한 거야. 사람이수학이야? 포기하게……. 무능한 의사보다는 악랄한 의사가 나아. 안 그래?"
그런데 말이야. 나는 그게그렇게 좋더라고, 세상에 내가 단숨에 볼 수 없는 게 있다는 거 말이야. 아무리 봐도 훤히 다 보이지 않고 한눈에 죄다 알 수 없다는 게 정말 좋았어. 면송리하고는 너무 달랐거든. 거긴 너무 뻔했지. 동네 사람들 입속의 금니 개수까지 알고 지 냈어. 시시하잖아. 그런데 배는 그렇지 않은 거야!
세계는 애초 구球나 정육면체처럼 정확하고완벽한 형상이 아니라 오히려 트램펄린 같은 것이었다. 똑바로 서면 균형을 잃는 곳, 균형을 유지하려면 비틀거리거나 한쪽 발을 구부리고 팔을뻗어야 하는 곳, 뒤뚱거려야만 가까스로 설 수 있는 곳 말이다. 그런 세계이므로 균형을 잃은 태도를 오히려 균형 잡힌 태도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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