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규는 귀연이를 사랑했다. 귀연이는 승규가 아니라 나를 사랑했다. 그리고 나는 귀연이가 아니라,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거리에 떨어져 있는 사람을 사랑했다. 승규와 귀연이와 나는 모두 열두 살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열두 살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다. 나는 나의 연인에 비하면 너무나 작고 너무나 무력하고 너무나 한심하고 너무나 가난하고 너무나 추하고 너무나 더럽고……… 벌레 같았다.
"난 널 사랑해, 하지만 넌 날 사랑하지 않아. 넌 누굴 사랑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입을 열었다. 아니, 입을 연 것은 내가아니었다. 내 마음속에 너무나 오랫동안 짓눌려 있던 사랑과 두꺼비가 마침내 최초로 제 목소리를 찾아내어 대답하고 있었다. 그놈은귀연이 엄마, 라고 말하지 않았다. 당골네, 라고 말했다. 내 마음속에서 작은 별이 출렁이듯 크게 반짝거렸다. 뭐? 너 미쳤어? 승규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는 귀연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백 살이나 천 살쯤 된 사람처럼 말했다. 우린 왜 늘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걸까? 승규가 시무룩하게말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했다. 귀연이가 다시 말했다. 어째서 우리는 늘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소망하는 걸까? 승규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중얼거렸다. 순서대로 한다면 귀연이 엄마는 날 사랑해야 하는 건데….
사람이 살기 위해 만들어진 동네가 아니라 망가지지 위해, 서서히 죽어가기 위해, 산다는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세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곳인지를 입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네였다
그녀를 통해 나는 한 가지 중대한 사실, 즉 이 세상이 오직 저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 희게 빛나는나의 연인이, 그녀를 향해 내 가슴에 타오르는 이 별이 어찌 저주일수 있단 말인가. 그 깨우침으로 나는, 나의 삶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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