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최초로 광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한 인물이다. "뜻이높으 광자는 진취적이고 절조가 굳센 견자는 해서는 안 될 일을하지 않는다" 라고 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견해인가! 오경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광은 줄곧 형용사로 쓰이다가 공자에 이르러비로소 광 뒤에 ‘자 자가 보태진 것이다. 이때부터 응집력이 커진 ‘광자‘란 말은 중국 문화의 가치지향성을 나타내는 특수명사가 되었으니 이 얼마나 혁신적인 변화인가! 

광자는더 이상 공자의 광견사상을 근간으로 삼지 않았다. 불교와 도교사상 중에서 특히 자연을 숭상하는 도가와 도교의 관념이 어느덧 위진 지식인에게 개체적 생명의 자유로운 확장이라는 이상을심어주었다. 그들은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아의 방임을 추구 하다가 마침내 나체 노출증 내지는 노출광에 빠져든다.

 보사는 ‘남이 절대 빼앗을 수 없는 타고난 재능‘ 즉 ‘지성적 오만을 갖추고 있었다. 광으로 말하자면 지성적 광과 이성적 광에 속한다. 위잉스 선생이신유가의 심리구조에 대해 논할 때, 일찍이 서양의 ‘지성性적 오만이란 말을 인용하여 신유가의 ‘양지良知적 오만을 대비시킨 바있다. 대체로 왕필에게 ‘남이 절대 빼앗을 수 없는 재능이 있다고 한 것은 분명 ‘이성적 오만과 연계되므로 더더욱 지성적 오만에 부합된다.

 왕사탁의 『회옹을병일기海翁乙丙日記』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지금 생각하면 왕필과 하안의 죄는 걸 주의 배가 넘고, 석가와 노자의 죄는 10배가 넘으며, 주돈이週敦硬, 이정二程(정호程·정이程碩), 주희朱熹, 장재張載의 죄는 100배가 넘는다. 이치에 가까울수록 더 쓸모가 없다. 헛된 미담으로 혹세무민하니 걸 주의 난이 겨우 수십 년이었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첸중수는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사람의 전반적인 욕망과사사로운 욕망은 자신을 죽이고 남을 죽일 수 있으니, 이를 체계적인 법도로 널리 퍼뜨려 천리와 공리로 삼고 온 세상의 준칙으로 삼아 백 대에 모범으로 드리우면 천하의 후손들을 죽일 수있다." 4 다시 말하면, 노자와 장자는 누군가를 살인한 적이 없고, 송대의 주돈이, 정이, 주희, 장재 역시 누군가를 살인한 적이없다. 그런데 문제는 통기統紀에 있다. 만약 통기‘를 넓게 해석하여 일가의 학설을 ‘천리‘ 내지 ‘공리‘로 삼고 온 세상의 준칙으로삼아 백 대에 모범으로 드리우게 되면 천하의 후손들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참으로 대단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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