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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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제법 분다. 손끝이 시려워지고 아이도 아니면서 잼잼을 한다. 부족하지만 애쓰는 피들이 손끝까지 어서 달려가길 바라는 바람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몇번인가 쥐었다 편 손바닥에 분주하게 그어진 선들을 무심히 바라보다 가장 진하고 깊은 선을 따라 옹색한 집들을 배치하고 뿌옇게 흐려지는 사람들을 배치해보니 어릴 적 살던 동네의 골목을 닮았다. 손바닥에 운명이 있다더니 운명은 모르겠고 살아 온 내력쯤은 읽히기도 하겠다고 미심쩍은 수긍을 해 본다.

 

미로처럼 좁은 골목과 골목을 지나 제일 높고 깊은 곳에 있던 우리 집. 아니 우리 방. 인류를 구원할 성물이 숨겨진 곳도 아닌데 주소조차 분명치 않아 우체부는 알음알음으로 편지를 전해주고 전해줄 때마다 22-3번지는 없다니까 자꾸 22-3번지로 편지가 오네. 라고 혼잣말을 했다.

자주 이사를 했고 이사를 할 때마다 살림은 줄고 가난은 커지는 이상한 현상이 반복되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어린 내가 그것을 이해하긴 어려웠다. 이사를 할 때마다 커지는 머리 덕분에 나날이 어떤 수치심 같은 것이 들기도 했고 책의 저자처럼 소공녀의 환상을 품기도 했다. 어째서 내 이름은 유리나 수아 같은 것이 아닐까를 생각했고, 다리밑에서 주워왔다는 이야기가 사실이길 바랬으며 빚쟁이들은 어디로 숨어도 찾아오는 초능력자라는 믿음이 커져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은 뿌리를 내렸고 단단히 고정되어 절망을 빨아들이며 자랐다. 식물에게 있다는 물관과 체관, 그 사이 어디쯤 절망관이 분명히 있을거다. 교묘하고 음습하게 숨어 절망을 빨아들이고 있을거라고 확신했다. 혼자 있는 시간은 길었고 긴 시간은 늘 어두웠다. 좁고 어두운 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읽는 것'이 전부였다. 아버지의 책을 뜻도 모르고 읽었고 동화책을 표지가 떨어질 때까지 읽었고 엉성하게 도배 된 벽지 사이로 드러난 때 지난 신문들을 읽었다. 글자들의 유일한 장난감이었고 읽을 것들이 친구였던 컴컴하고 조용한 유년은 지금도 컴컴하게 웅크리고 책을 읽는 습관으로 자주 드러나곤 한다.

비슷한 시기를 건너 온 이야기인지 책을 읽는다는 생각보다 자꾸 유년의 어느 싯점으로 이동하는 느낌이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눈 내리는 어느 날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나는 문득 눈 내리던 어느 기억에 사로잡혔다.

연탄은 한 장이 남았고 지붕은 낡은 집. 눈이 쏟아지던 그 날 엄마는 주인집에서 사다리를 빌려와 몽당 빗자루를 들고 지붕을 자꾸 쓸었다. 혹시라도 내려앉을까, 지붕이 무너지거나 부서지면 당장 갈 곳도 없는 우리는 큰일이 아닐 수 없었으니까.

한 장 남은 연탄이라도 때려면 아궁이에 벽에 습기가 들지 않아야 한다며 엄마는 손이 빨개지도록 장갑 하나 없이 무시로 나가 지붕을 쓸었다. 내가 할께. 엄마를 대신 해 사다리를 올라가 지붕을 쓸다 돌아 본 동네. 하얗게 뒤덮인 동네는 평온했다. 아무도 밖에 다니지 않았고 살풋살풋 내리는 눈은 조용히 동네를 덮었다. 이렇게 예쁜 설움을 견딜 수 없었을까. 나는 울었던 것 같다. 귀찮아 죽겠어. 눈 따위. 괜히 몽당 빗자루를 집어던지고 사다리를 내려왔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눈 내리는 날의 지붕을 사력을 다해 쓸고 있는 엄마도 나도 가여웠다. 눈이 내리는 건 귀찮아.

연탄에 불을 붙이고 아궁이를 단단히 점검하고 눅눅해진 연탄가스가 새지는 않을까 방 가장자리를 강아지처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던 눈 오는 날.

혹시를 몰라 머리맡에 동치미 한 대접을 두고 잠이 들던 눈 오는 날.

아무 일 없이 밤이 지나고 눈이 그치고 우풍이 심했던 방에서 살얼음이 끼어버린 동치미를 반찬 삼아 먹던 옹색한 아침.

참 귀찮은 눈이었어.

 

작가가 건너온 시간 틈에 나의 시간들이 자꾸 끼어드는 통에 온전히 읽기 힘든 책이었다.

결국 살아내고 포기하지 않고 무던히 밀고 온 시간이 성장이라는 것을 보여냈고, 소소한 즐거움을 목표를, 의지를 품고 키워왔다는 것을 발견한다. 부족하고 부족해서 뭐가 부족한건지 조차 모르고 살아 온 시간은 그래서 의미있다.

누가 시켜서 가난했던 것도 아니고 삶을 시작하는 싯점이 거기였던 것 뿐이다.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멀리 갔으면 좋았을까? 결승점이란 것이 정해진 것도 아닌데 ...

[인생에는 원래 그런 순간이 있는 법이다. 아주 사소한 진지함으로 태산 같은 막막함을 훌쩍 뛰어넘는 순간-첫번째 골목, 참 괜찮은 눈이 온다. 중에서..p59]

이 구절에 밑줄을 그었다. 작가가 생각하는 순간과 내가 생각하는 순간은 조금 다를테지만 그런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문장이다.

그렇게 각자의 막막함을 뛰어넘어 숨가쁘지만 기꺼이 살아온 지금은 내리는 눈을 조금 여유롭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책을 읽다보니 어느 순간 꾀가 났다.

앞 부분은 '니나 내나' 비슷하게 읽히고 마무리에 가서 읽히는 작가의 이야기.

그러다보니 뒷부분을 먼저 읽고 앞의 이야기를 읽기도 한다.

아이스크림 맨 밑에 초콜릿이 있는 걸 아는 약아빠진 아이의 행동처럼 말이다. 아이스크림 포장을 모두 벗겨 좋아하는 초콜릿을 먼제 베어먹고 거꾸로 아이스크림을 빨아먹는 것처럼 읽어본다. 맛있고 재밌는 그래서 유쾌한 아이스크림먹기 처럼 조금 다른 시선으로 읽어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

 

손바닥 안에 그어진 선들 사이에 그리운 얼굴과 풍경들이 조금씩 사라진다. 골목은 희미하게 지워지고 사람들의 목소리는 잦이든다. 가난이 세상의 형식인 줄 알았던 아이는 자라 제 이름이 유리나 수아가 아닌 것에 감사하기도 하고 다리 밑에서 나를 주워오느라 고생했을 엄마를 생각하기도 한다. 하필이면 왜 나를 주워왔어? 좀 착한 아이를 주워오지..라고 어리광같은 감사를 전하기도 한다.

참 귀찮은 눈이었지만 이만큼 살아내고 보니 꿈처럼 하얀 세상을 만드는 줄 알았던 눈이 가난한 동네 골목을 진창길로 만들고 말았다는 사실을, 제 앞에 놓인 눈은 스스로 치우지 않으면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참 괜찮은 눈이었음을 고백하게 한다.

 

딸랑딸랑 종소리와 갓 떠낸 따끈한 두부와 선지를 어깨에 메고 두부 사려~ 선지 있어요~ 하던 묵직하고 여운이 긴 새벽의 소리가 어쩐지 그리운 날이다.

아직 눈이 오려면 멀었지만..

올 해의 눈이 내릴 때 '참 괜찮네' 라고 말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거리에서 생존을 두고 싸우는 사람들이 승리해서 집으로 돌아간다면, 올 해의 눈은 썩 괜찮은 눈이라고 기억되겠지만. 가난과 불공평과 불안을 품고 자라는 세대는 더는 없었으면 하는 동화같은 마음도 품는다.

그래서 아직은..참 귀찮은 눈일 것 같은 내 골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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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2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타샤 2019-11-22 12:01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2019-11-22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타샤 2019-11-22 12:07   좋아요 0 | URL
네..^^

2019-11-22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