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버드나무가 고리짝도 되고, 활도 된다는 것을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만달이는 그걸 바꾸려고 하고 있었다.
버들가지처럼 어깨가 흔들렸다. 메생이를 만들겠다던 사내의손은 이룰 수 없는 것이어서 안타까웠으나 활을 깎고 있는 사내의 손은 너무 뜨거워서 곧 사라질 것만 같았다.

세상의 소리를 빨아들이며 팔월의 검은 눈이 내렸다. 어미의 등가죽 위로 내리던 눈이 나도 덮어줄까? 검은눈은 한 송이 한 송이가 제자리를 찾아 재가 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바다의 그리메가 재가 되어 날리고 있었다. 나는 눈이 돌아오는 몸도 되지 못하고 살아, 너의 집도 되지 못 하고 살아, 잿덩이가 된 집을 바라보았다. 

 굉장했지. 저 하늘에서 심술궂은 노인네가 세상을 향해 지팡이를 꽂는 거야. 까부랑 번쩍. 씨부랑 번쩍, 우르릉 쾅쿵하늘이 무너지면 높은 곳에 우뚝 솟은 곳부터 먼저 쳐야지남산 꼭대기에 지진에도 안 무너지게 설계했다는 십층으로쌓은 집들 말이야. 우리를 데려가주세요 하고 남모르게 기부하는 가늘고 선한 사람들이 사는 하얀 집들. 그런 곳이나 치시지. 하늘에 계신 양반은 우리 편이 아닌 게 분명했어.

 할머니의 손은 내 눈이 아니라 머리에 얹어졌다. 처음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할머니는 내 눈을 깊게 들여다보았다. 나도 할머니의 눈을 바라보았다. 할머니의 눈은 살얼음이 녹은 것처럼 물기로 가득 차 있었다. 밤섬이나 풀등이라는단어는 할머니를 오래전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바람과 물때를 알아야 사람이 된다고 했던 할아버지처럼 눈물을 흘려야 사람이 된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아빠는 표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일부러 나를 어깨에 올려놓은 것 같았다. 얼음에 베인 차고 슬픈 목소리는 내게도 스며들어 배꼽 근처에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 웅덩이는 자꾸만커지고 깊어져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꺽꺽 소리 내어 울고 싶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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