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군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군대는 농민의 군대입니다. 여러분과 같이 오줌통도 지고 김도 매고 씨도 뿌리겠습니다.˝ 151945년 12월 전국농민조합총연맹 결성식에서 약산이 한 말이다. 김원봉은 민중 속으로 들어가고자 했다. 그들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 싶었다.

 성종은 유교 정치 실현을 위해 여동생들을 모질게 대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그 성현의 가르침에 따라 집안부터 손본 것이다. 그러나 헌애왕후는 유교 정치의 억압과 구속을 독하게 버텨냈다. 고려 창업자 왕건의 손녀답게!!

서희의 담판으로 거란군을 물리친 성종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통치 체제를 정비하고 사회 질서를 다잡는 일도 중요하지만, 고려의진정한 힘은 고구려의 후예라는 정체성에서 나온다는 점이었다. 이는국난을 극복하면서 국가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인식이었다. 중국식 유교 정치에 치우쳐 있던 성종은 이후 헌애왕후와 화해하고 패서 호족들을 예우했다. 또 송나라와 국교를 단절하고 서희의 강동 6주 개척에 힘을 실어줬다.

왕건은 지역마다 군림하는 호족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본관과 성씨를 배정하고 나라의 근간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고을별로 힘 있는 일족들이 성씨를받고 향리가 되었다. 성씨의 기준은 아버지의 핏줄이었다. 이제 이 땅에서 행세하려면 부계 혈연관계로 결집한 가문‘이라는 게 필요했다. 

 세상에 순수한 혈통은 없다.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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