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딘가에 숨어 있는, 아니 숨어 있을지도 모를, 없는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랑이나 우정을,
혹은 그것을 대신할 무엇인가를 찾으려 애썼다. 취한 말들은 하면할수록 닳아버렸다. 진심을 말하고자 술을 마셨지만, 술을 마시자진심은 사라져버렸다. 누군가 억울하다 해도 내 것을 내던지며 싸울 것도 아니면서, 누군가 배고프다 해도 내 것을 내주며 도울 것도 아니면서, 우리는 잠시 의기투합하여 생을 긍정해 보려 했고,
센티멘털리즘이 뿌려진 달달한 위로를 맛보려 했다. 네 말대로 우리는 그냥 그렇게 견디고 있었다. 취해서 눈밭에 쓰러진 노새처럼, 뭘 견뎌야 하는지도 왜 견뎌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2016))
물리학과는 거리가 먼 전혀 엉뚱한 생각이지만, 지진을리큐느 순간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된 느낌이었다. 거리에 나가 눈앞에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자 비로소 내가 죽지 않고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살아 있었다. 하지만 거리로떠쳐나갔을 때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면 나는 정말로 살아 있다.
고 느낄 수 있었을까? 이성복 시인의 시구를 빌리자면, "당신이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지 않았을까. 그저 존재할 가능성에 불과한 나를 정말로 존재하게 만드는 조건은 무엇일까.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나와 함께 이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사람들이 아닐까. 세상은 나를 존재하게하는 그들과 그들을 존재하게 하는 나로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닐까. (2015) -